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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Apr 19. 2017

수고했어, 오늘도

[중국어 능력과 대만 생활]모국어 영향을 받은 외국어 사용

수업을 마치고 칠판을 지우고 있었다.

한 여학생이 내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쌤, 수고해요.”


나는 하마터면 그녀에게 머리를 조아릴 뻔했다.

첫 직장에서 함께 했던 부장님이 떠올라서였다.




벚꽃이 흩날리던 어느 토요일, 사무실 대이동이 있었다. 청소와 이사를 한 번에 해야 하는 날이었는데, 나는 하던 대로 책상을 번쩍 들어올려 옮겼고, 나의 괴력을 목격한 주변의 사원, 대리, 과장님, 게다가 찌그러진 쓰레기통을 만지작거리던 부장님까지 줄줄이 내 이름을 불러 주었다. 그들이 나를 다정하게 부르는 일은 흔치 않았고, 회사에서 일 잘한다는 말을 들은 건 그날이 처음이기도 했으므로, 신이 나서 그들을 도왔다.


청소가 다 끝난 뒤엔 이미 해가 졌고, 우리는 벚꽃을 보러 가지도, 집에 돌아가지 못 한 채 회식 자리에 참석해야 했다. 삼겹살을 구우며, 소주를 들이켜며 다들 애썼다며 서로의 노력을 칭찬해 주었다.

특히 그날 부로 “힘쎈여자 조사원”이 된 나는, 입사 이래 최대 관심을 받게 되었다.

급기야 부장님께서 친히 내게 맥주 한 잔을 권하며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조 사원, 수고했어.”

나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부장님도 수고했어요.”


아차, 싶었다.

잘 보이고 싶어서 예쁘게 말한다는 것이, 부장님의 말을 따라해 버린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부장님 곁을 지키는 찌그러진 쓰레기통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었고(그건 평소와 다르지 않았고),

퇴사하는 그날까지 “책상 잘 드는 애”로만 남았다.

 



"수고해요"

중국어로 辛苦了[신쿠러]이다.  

힘든 일을 해낸 뒤 상대에게 건네는 말인데, 누구에게나 쓸 수 있다.

그러니까 열 살 아이가 선생님, 아줌마, 아저씨,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다 써도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

부장님의 총애가 한 순간에 사라진 것도 그 놈의 “수고했어요” 때문이었으니.


나는 한국말만 하는 한국 선생이라 학생들도 내게 어떻게든 한국말로 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갖게 되었는데, 외국어 능력 향상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참으로 긍정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들이 마구잡이로 하는 말을 죄다 감당해야 한다는 교사의 심리적 부담이 수반된다.

수고해요, 수고했어요, 학생들은 나에게 수시로 이 말을 하는데, 그때마다 부장님이 떠오르고, 그 아이들이 모두 직장 상사가 되어 버린 듯한 악몽에 시달린다(나에게는 직장 상사 트라우마가 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내게 하는 말에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수업에 늦은 한 남학생이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내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미안해


혹은

이 말도 있지.



중국어로 “嗯[응]”은 ‘yes’의 의미로 누구에게나 쓸 수 있다. 하필 이 중국어는 한국어랑 똑같이 들려(물론 그런 말이 한두 가지는 아니다. ‘민주주의’나 ‘공산당’도 중국어와 한국어가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내가 민주주의나 공산당이라는 말 때문에 섣불리 흥분할 일이 아직은 없다) 학생들의 대답이 내게는 죄다 반말로 들리는 것이다.


가장 놀랄 때는 바로 이 말을 들었을 때다.

뭐?


앞으로 나오세요, 뭐? 125쪽 보세요, 뭐? 다음주에 시험이 있어요, 뭐?

못 알아들으면 그냥 이렇게 묻는다.

“뭐?”


중국어로 “什麽?[사마]”.

이 또한 선생님이나 시부모님께 누구에게나 쓸 수 있으며, 뱉어내고도 뒷감당이 필요 없는 말이기도 하다.




외국어 발화 시에는 모국어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학습자 언어권별로 발음이나 억양에 차이가 나듯이, 발화 내용과 태도에도 학습자들의 언어, 문화권별로 차이가 두드러진다. 영어권 화자의 “천만에요”, 혹은“유감이네요”, 일본어 학습자의 “미안합니다”, 중국어권 학습자의 “수고해요”, 는 한국어에서 대부분 자연스럽지 않은 맥락에서 사용하게 된다.


그것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미국 고속도로에서 신호 위반으로 걸린 한 한국인 운전자가 미국 경찰에게 했다는, “Please look at me once!”(한 번만 봐 주세요)와 같은 말도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영어로 콩글리시가 있듯이, 외국어로 대화를 하다 보면 언어권별로 맥락에 맞지 않는 언어를 쓰게 되는 것이다.


경어법이 없는 중국어를 쓰다가 한국어로 말하게 되면, 자칫 예의 없는 말처럼 들리는 말이 있다.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습관의 일부다.

외국어 발화는 오른손잡이가 왼손을 쓰는 것 이상으로 의식을 해야 한다.

의식을 하지 않으면 습관대로 뱉는 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중국어를 쓰는 학생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대만에 오기 전까지는 중국어로 띵호아, 라는 말조차 누구와 나눠 본 적이 없다. 중국어의 특징을, 학생들이 나를 놀라게 한 한국어를 통해 배우고 있는 중이다.

중국어로는 괜찮고, 한국어로는 안 되는 그 말은 분명 존재하고,

학생들에게는 그 차이를 분명히 알려 줄 필요성을 점점 절감하고 있다.

외국어교육과 문화교육의 상관성을 언급하며 거창한 이론에 접근하지 않더라도

같이 대화하는 상대에 맞춰 그들의 언어 습관을 함께 배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되도 않는 중국어로 낑낑대고 있는 나 또한 얼마나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가!)



마음을 이렇게 착하게 다잡긴 하지만,

그래도 난 한국인이다.

학생들의 말에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이렇게 주문을 건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여기는 한국이 아니다

.......


나,

수고했어, 오늘도.


한국어든, 중국어든, 탄자니아어든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듣고 힘들어하는 당신도,


수고했어, 오늘도.


https://www.youtube.com/watch?v=lcbkCcCwd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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