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미 Jun 18. 2017

알고보면 쓸데있는 귀찮은 동네사람

[중국어 능력과 대만 생활]외국어 학습 과정에서 만나는 좌절, 극복


라디오를 틀었다.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국 방송에서 한국 노래를 듣는 일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었다. 디제이는 중국어로 한국 음악을 소개하고, 그 음악이 끝나고 나면 또 그 노래를 흥얼거린다. 그가 읊은 노래 가사는 한국어도 중국어도 아닌 듯했지만 그 어설픈 흥얼거림이 중국어로도 한국어로도 들렸다.

 

대만인들이 쓰는 말에 내 감성을 덧붙이면,

나의 중국어는 때론 흥얼거림으로, 때론 칭얼거림으로 들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늘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영수증이나 광고지, 그나마 반가운 소식지를 제외하고 이곳에서 우편으로 편지를 받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나는 오늘 정말 편지를 받았다.

“존경하는 조영미 여사”로 시작하는 편지였다.

내용은 이러했다.

귀하의 피가, 혹은 피를 내준 귀하의 마음이 큰 도움이 되었다는 일명“땡큐 카드”였다. 



나는 이곳에서 지난 2년 간 다섯 차례 헌혈을 했다. 온 지 5개월쯤 되었을 때, 한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학교 공지사항에 뜬 다른 중요한 정보(예를 들면, 성적처리는 며칠까지 하세요. 언제부터 언제까지 복사실은 문을 닫습니다, 등등)는 읽지도 아니, 읽을 수도 없었는데 유독 한 공지가 눈에 들어왔다.

헌혈차가 학교 후문에 주차되어 있고, 이틀 간 헌혈할 분을 모시니 와서 귀하의 귀한 피를 나누어 주십사, 한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똑바로 이해한 공지가 하필 “현혈자 모심”이었을 뿐이었다. 아마 후문에서 중고물품 판매를 한다는 공고가 났고, 그것을 제일 먼저이해했다면 중고물건을 사러 갔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헌혈차를 방문한 계기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커서였을 것이다. 


처음 헌혈을 한 순간에도, 다섯 차례 헌혈을 한 현재까지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상대에게 정확히 전달해, 완전히 해결한 적이 별로 없다고 느.껴.왔.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할 때의 자괴감은 생각보다 컸다.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정확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언어 실력은 언어 능력 이외에도 상대의 태도 혹은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영향을 받게 마련이다. 그러니 나의 말은 말 같이 않은 말이되어, 흥얼거림 혹은 칭얼거림으로 들릴 수밖에…


나의 흥얼거림은 이러했다.

“아, 역시 대만 음식은 맛있네요.”

“날씨가 더운 걸 빼고는 괜찮습니다.”

“대만 사람은 참 친절하군요.”

“학생들은 순합니다.”

“중국어 공부는 재미있네요.”


나의 칭얼거림은 이러했다.

“이게 왜 또 안 되지?”

“못 알아듣겠는데요.”

“달라도 너무 다르네.”

“나한테 무슨 의도로 그런 거죠?”

“저는 이게 문제라고 생각하는데요.”


흥얼거림에도 칭얼거림에도 구체적인 근거가 뒷받침 되었다면 좀 더 건설적인 제안이나 상황 설명이 효율적으로 되었을 것이다. 효율적인 전달이란, 대만 사람들의 관계에서 내가 오로지 나 자신으로 정확히 보여졌으면, 하는 바람인 것이다. 아주 기본적인 일이 여기서는 간단하지가 않았다. 두뇌 회로가 엉키기 시작했다. 한국어와 중국어, 이성과 감성, 논리와 비논리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었다. 흥얼거림도 칭얼거림도 아닌,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은 오직 나 스스로가 선택한 일을 꾸준히 찾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부족한 언어 실력에 구애 받지 않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나의 존재 자체를 반겨주는 상대를 만나고

그 상대는

나의 말에 “뭐가 문제냐”고 따지지도 않고 

내 질문을 회피하지도 않고, 그에 성실히 답해 주며

그러한 관계를 통해

아, 나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구나,

나는 여기서 귀찮은 외국인이 아니구나, 를

느낄 수 있는 “대화 상황”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한 공간이 내게는 “헌혈차”였다.



헌혈을 하기 전에는 설문조사를 한다. 설문조사에서 나는 “임신했어요?”에 “그렇다”고 체크했다. 설문지를 설명해 준 봉사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 빚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 누구도 난데없이 심각해지는 일은 없었다. 둘 다 웃고 말았다. 어찌되었든 나는 지극히 건강했고, 임신도 안 했고, 잠도 잘 잤고, 물도 많이 마셨고, 밥도 많이 먹고 왔기에 헌혈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헌혈차에서 나를 맞이한 사람들은 내게, 여기 조금 더 있다가 가라고 했고,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느냐고 물었고, 과자랑 주스를몇 개 더 챙겨가라고 했고, 다음에 또 오라고 했고, 움직일 때 어지러울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고, 문제가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나를 챙겨주는 말은 어찌나 그리도 잘 들리던지.


헌혈차에서 내내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피를 더 오래, 더 많이, 더 자주 뽑았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그들이 건네는 따뜻한 말을 더 많이 들을지도 모를 거라고



                                                                                                                     

출처: daum 영화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알쓸신잡) 3회에서 유시민 작가가 국회의원 시절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국회의원끼리 서로를 칭할 때, “존경하는 ** 의원님”으로 시작하는데, 그말이 참 이상한 것이, 서로가 서로를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 알지만, 그래도 서로를 “존경하는 **의원님”으로 불러주지 않는다면 상당히 기분이 나빠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어떤 일을 벌이든 간에 자신을 "꽤 쓸데있는 나랏일을 하는 귀한 존재"로 불리고 싶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은 어느 상황에 처하든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을까?  


의료재단법인대만헌혈기금회장님은 조영미 여사를 진심으로 존경한 나머지 그녀를 “존경하는 조영미 여사”로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나를 존경하든 안 하든 상관은 없었다. 그렇지만 헌혈차를 찾아갔을 때, “당신은당연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시대로 따라하세요.”라는 태도를 취한다면 상당히 기분이 나쁠 것이다. 비록 헌혈이 건강한 자들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당연한 일을 하지만 

당연하지 않게 봐 주며

나의 선택에 감사해하며

내가 그곳에 도착하면            

“쟤 또야?”라는 귀찮은 외국인 보듯 하지 않고

“또 와주셨네요”라고 반기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며

나도 좀 쓸만하지? 라고

생색을 내 보고 싶은 것이다.

그 생색내기는

나도 알고 보면 쓸모 있는 동네 사람입니다

라는 소심한 외침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벚꽃을 보았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