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미 Dec 28. 2016

외국어 능력자들 1

한국어를 가르치며, 중국어를 배우며

“엉덩이 조심해!”  

날카로운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한 남성의 눈길은 나를 향해 있었고, 나는 어느샌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나의 엉덩이를 향해 눈을 돌리고 말았다.     

미국에서 온 앤디는 한국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며 제법 한국어를 잘 쓰던 앤디가 오랜만에 만난 내게 건넨 말은, “엉덩이를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사실, 앤디가 내게 하려던 말은 이것이었다.  

“웅덩이 조심해! 물 튀길라.”    





가: 족발을 좋아해요?  

나: 네, 저는 제 족발을 아주 좋아해요.  

가: 그래요? 여기는 족발이 유명해요.  

나: 내 족발은 아주 착하고 저를 아주 많이 도와주는 걸요.  

가: ......  


타이완 친구가 중국어로 내게 족발을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좋아한다고 했고, ‘착한 내 족발’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당황해 하긴 했지만, 이내 족발을 주문했고, 나는 돼지가 크게 그려진 족발집 봉투를 받아들 때까지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 친구에게 내가 말하려던 의도를 더듬거린 뒤, 뭐가 잘못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족발(猪脚[zhūjiǎo])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조교(助敎[zhùjiào])를 좋아한다고 답한 것이다.     




대만에 살며 중국어를 일상생활에서 쓴 지 일 년이 조금 넘은 나 또한 입만 열었다 하면, 틀린 말을 해대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틀린 발음과 성조”보다 “입을 열고 소리내어 말했다”는 것이다. 내가 입을 열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면, ‘족발’과 ‘조교’의 발음과 성조가 어떻게 다른지, 대만 남부 핀동(屛東) 지역이 족발로 유명한 곳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내가 만난 ‘뛰어난 한국어 학습자’들이 이미 보여준 ‘외국어’를 대하는 태도이기도 했다.     


엉덩이와 웅덩이를 구분하지 못했던 앤디는 한국어 전문가이다.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고 상대와 함께 웃을 수 있었던 앤디는


“머리가 못 돌아(머리가 안 돌아가)”

“족 같은 말이네(주옥 같은 말이네)”


같은 말들을 쏟아냈다. 아마 최근에도 그의 실수 연발의 한국어는 진행 중일 것이다. 그래도 앤디는 나와 영어로 대화하려고 하지 않고 끝까지 한국어로만 말했다.     


모든 학생들이 앤디 같지는 않다. 틀려도 일단 말하고 보는,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사실, 한국어 능력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말을 잘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말하기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말할 기회를 스스로 찾지 못했거나 말할 기회를 스스로 접었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외국어 학습자들도 그러할지 모른다. 실력에 비해 좀처럼 말을 하려고 들지 않아 자신의 외국어 실력을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자만 알고 있는 말은 말이 아니다.   



외국어학습의 목적은 지식 축적이 아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려고 배우는 것이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으면 제대로 못 배워.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마음 가짐은 언제나 그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