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한국어 교실]대만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 이유, 부모와의 갈등
9월 18일 월요일, 개강이다.
개강 날이 되면 학생들은 선생을 찾으러 다니기 바쁘다.
최소 수강생은 15명, 최대 수강생은 50명이다.
수강생이 50명이 되면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수강 신청을 할 수 없다. 그래도 그 수업이 꼭 듣고 싶다면,
방법은 딱, 하나.
선생님을 찾아라!
교수자가 동의를 한다는 서명을 하면, 그 학생은 원하는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그리하여 학생은 교실로, 사무실로, 연구실로 동분서주 선생님을 찾아 나선다. 이번 주는 수강 신청 취소, 정정 기간이다. 선생과 학생의 의도하지 않은 숨바꼭질이 벌어지는 한 주가 될 것이다. 한국어수업은 매 학기 거의 모두 “만석”이라 나를 찾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이전 글: "대만 대학교의 한국어 교육" 참고]
대만의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한국어 능력 또한 높아지고 있다. 나는 그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어제, 한 신입생이 나를 찾아왔다.
한국어능력시험 초급 성적표를 들고 왔다. 고등학생 때부터 혼자 한국어를 공부했고, 한국어능력시험도 봤으니 중급반에 자기를 넣어달라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시험 자격증이나 어디서 한국어를 배웠다는 증명서를 제출하는 학생은 그나마 행정적인 처리가 수월하다.
또 다른 신입생이 나를 찾아왔다.
자기가 한국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 동안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말했다. 이 학생의 한국어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심지어 어릴 때부터 집에서는 부모와 한국어를 쓰고, 학교에서는 현지 언어를 써 온 교포 느낌이 났다. 이 학생의 경우, 한국어를 잘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문서가 없기에 초급반부터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
한국어 능력을 이미 어느 수준까지 갖추고 온 대학 신입생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기쁜 소식이기도 하고, 걱정이 되는 소식이기도 하다.
아직 대만 한국어교육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문제는 “부모님의 지지”이다.
많은 학생들이 내게 와서 한국어를 더 지속적으로,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다고 얘기한다.
그러다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부모님이 반대하세요.
대부분의 학생들이 1990년대 중후 반 태생이라는 사실을 감안했을 때, 그들의 부모님들은 1990년대에 청년기를 보냈다. 한국이 대만과 국교를 단절한시기는 1992년이다. 그 이후 대만과 한국의 사이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지금 학생들의 부모님은 성년이 된 이후부터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키울 기회가 없기도 했고, 스스로 찾지도 않았다. 반면에, 1980년대, 1990년대 출생한 이들은 2000년을 전후 대만에도 한류 붐이 불기 시작하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그것이 한국어 학습으로 이어졌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한국어 학습 목표는 “오빠들”이 아닌 “자신의 미래”였다.
아직은 학생이라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과정에 부모님의 정신적, 물질적 지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러한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이 많다.
부모의 입장에서,
“우리 애가 외국어도 잘하고 참 기특하네.”
정도의 선에서는 한국어 공부하는 제 아이들의 엉덩이를 토닥여 줄 수 있지만,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하면 많은 부모들은 이렇게 말한단다.
“한국어는 취미로만 해.”
나는 이 사실 혹은 현실이 참 안타깝다.
능력 있는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할까?
적어도 한국어는
그들에게 결코 하찮은 존재가 아니라는 점,
그들의 꿈에 아주 큰 부분이라는 사실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2년 전, 신입생이 한국어능력시험 중급(4급) 성적표를 보이며 나를 찾아왔다. 말하기, 읽기, 듣기, 쓰기, 네 영역의 능력과 인성까지 모두 고르고 바르게 성장한 학생이었다. 한국어 수업을 들으며 공부의 양을 더 늘렸고, 그 다음 해에는 내 조교로 일하며 나와 대화할 일이 더 많아졌다. 그러면서 이 학생의 고민을 접하게 됐다. 이 학생의 고민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길이 필요했고, 그 자리로 “말하기 대회”를 찾았다. 열심히 준비한 끝에, 작년 카오슝 말하기 대회에서는 대상을, 타이베이 말하기 대회에서는 금상을 받았고, 부상으로 한국 유학 장학금을 받았다. 이 학생은 현재 한국에서 유학 중이다.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표현한 끝에 얻어낸 귀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이러한 학생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과정을 보고 있으니, 보다 진지하게 한국어 학습을 지속하려는 그 열정을 지켜주고 싶고, 그 마음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그리하여 학생의 목소리를 여기에서 한 번 더 알리려고 한다.
<2016년 카오슝 말하기 대회(대학부) 대상 수상작 - 나는 우리 가족의 자랑입니다. >
저는 올림픽만 보면 긴장이 됩니다.
한국과 대만이 시합이라도 하면 어쩌나, 그래서 경기를 보는 내내 아버지가 화를 내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우리 아버지는 경기만 보면 유독 한국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아버지와 살아왔지만, 다행히도 저는 한국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그렇게 신나게 한국어를 하고 있을 때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야, 영어나 해”
하지만 적어도 제 한국어 공부를 막지는 않으셨어요.
대학에 들어와 한국에 대한 관심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습니다.
마침, 같은 과에 한국 학생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레 친해졌습니다. 그 친구는중국어를 잘하지만, 왠지 저만 보면 한국어로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아, 하루종일 중국어만 썼더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아. 근데 너랑 한국어로 얘기하니까 살 것 같다.”
라고 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한국어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번 휴일에 친구와 함께 저희 집에 갔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중국어로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는 중국어로 저와 우리 부모님과 함께 대화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학생, 왜 계속 중국어만 해?우리 딸이 한국어를 얼마나 잘하는데, 우리 딸이 한국어 잘하는 거, 몰라?”
그 말을 듣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가, 친구에게 제 한국어 실력을 자랑하실 줄 몰랐거든요.
그 이후 친구와 저는 평소처럼 한국어로 얘기했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도 못 알아들으시면서도 제가 한국어로 대화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시며 웃고 계신 거예요.
아버지가 아직도 한국을 안 좋아하시는지, 아니면 한국을 좋아하게됐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버지는한국 사람과 한국어를 하는 당신의 딸을 자랑스러워하신다는 거예요.
저는 그 순간 결심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그리고 우리 가족의 자랑이 되고 싶다고요.
이 자리에 서 있는 이 순간, 아니 앞으로 제가 한국어를 더잘 하는 모습은, 분명 우리 가족의 자랑이 될 것입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타이베이 말하기 대회(대학부) 금상 수상작 - 미래로 가는 길>
안녕하십니까? 저는 주동이라고 합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 고민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어를 좋아해서 갔냐고요?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한국어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갈만한 학교가 많지 않아 성적에 맞춰 들어간 거예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혼자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이상하게도 한국 노래도 드라마도 아닌 한국어 자체에 많이 끌렸습니다.
노래 가사나 드라마 대사를 적어가며 공부했죠.
그러면서 한국인을 직접 만나 대화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커졌습니다.그러나 대만 남부의 작은 소도시에 사는 소녀에게는 그런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드디어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국인과 함께 어울렸던 그 첫 만남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너무 감동적이었냐고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한국 친구와 저는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친구는 식사 자리에서 술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본 장면처럼 그 친구는 술을 빠른 속도로 먹기 시작했어요. 나는 그 친구를 말리고 싶었지요. 그때, 한국 소설에서 읽었던 문구가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죠.
“그렇게 처마시다가 골로 가”
그 이후, 저는 한동안 그 친구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적절한 한국어를 쓰지못해 친구의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배운 한국어는,
“어, 외국인치고 잘하네~”, 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었지만, 한국인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누기에는 여전히 많이 부족했습니다. 더 진지하게 배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용기 내어 말씀 드렸습니다.
“한국어를 전공하고 싶어요.”
솔직하게 제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부모님은 무슨 폭탄선언이라도 들으신 양, 기겁을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한국어는 배워서 어디다 써먹냐? 네가 전공하고, 졸업하면 뭐 먹고 살려고 그래?”
그날부터 저를 원망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한국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정도는 부모님께서 흐뭇해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제가 앞으로 한국어에 올인하겠다고 하니 부모님은 제 마음을 전혀 이해를 못 하시는 거예요.
저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대만의 소도시에서 자라, 한국인을 만날 기회도 없었던 제가 이렇게 한국어를 배워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는데 곁에서 함께 기뻐해 주고, 응원해 주는 어른이 제게는 없습니다. 한국어로 장래를 꿈꾸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저에게 절망적인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머지않아 한국과 대만 양국에서 꼭 필요한 일꾼이 될 자신이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제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여러분들로부터 응원의 메시지를 받고자 이곳에 온 것입니다.
여러분, 제게 힘을 주세요.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