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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Feb 23. 2018

영미, 영미, 나도 영미

[대만 생활]내 이름을 부릅니다

영미, 영미

나도 영미다.

 

내 이름이 자주 불리니 문득 깜짝 놀라기도 한다. 한국에 있었다면 더 많이 움찔하며 의식했을지 모른다. 언제인가부터 나는 이름이 많이 불리지 않았으니 어색하기도 할 것이다. 학교에서는 조 선생이고, 학교 밖에서는 **엄마, 가 되고, 우리 아파트 단지로 들어오면 “502호”가 됐다.  


영미, 영미 

여자 컬링 작전명 영미 

안경 선배가 영미를 부르는 어조에 맞춰 영미는 속도 조절을 하며 스위핑을 한다. 사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처음 컬링 경기를 보았을 때, 눈을 떼지 못했다. 얼음 위에서 빗자루질을 하는 형상인데 그것이 스포츠 경기라니 보고도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무지로 인한 “의아해함”마저 컬링 선수들에게 미안해진다. 그렇게 컬링에 무지했던 영미는 안경 선배가 영미를 부르면 무의식적으로 몸을 움찔하는 영미가 됐다. 그때까지만해도 알지 못했다. 컬링과 영미와 비질 간의 상관관계를. 

그러나 영미와 비질 간의 상관관계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게 있어 왔다.  




영미야, 

고등학교 일학년 때 선생님들은 유독 영미를 많이 불렀다. 그런데 매번 내가 아니었다. 우리 반에는 영미가 두 명 있었다. 

하나는 반장 영미, 다른 하나는 나. 

이상하게도 자리를 바꿔도 반장 영미는 항상 내 앞 자리에 앉았다. 키가 컸던 나는 뒷문 옆이나 쓰레기통 앞이나 문짝이 고장 난 청소도구함 바로 앞에 자리했다.  


영미야 

선생님들이 영미를 부르면 내가 아닌 걸 알면서도 매번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선생님들은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저기 뒤에 문 닫아”라고 하면 “저기 뒤”는 영미 뒤의 영미였고, “오늘이 3일이니까 53번(그 당시 선생님들은 날짜에 따라 번호를 부르며 뭔가를 자꾸 시켰다)”이라 하면 또 영미 뒤의 영미가 일어났다.  


신생 고등학교에 입학한 우리들은 교복을 입지 않았는데, 학교에서는 2학기 동복부터 교복을 입기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몇 벌의 교복이 학교로 왔고, 예쁘고 날씬하고 착하고 공부 잘하고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영미는 교복 모델이 되어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왔다. 우리는 영미가 입은 교복을 입고 싶어하지 않았지만, 교복을 입은 영미는 참 예뻤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너 일어나.” 

선생님은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를 치며 말했다.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가 앉고 있던 의자를 교탁 앞으로 끌고 나갔다. 그 위로 영미가 올라갔다. 영미는 그렇게 우리 학교 교복 모델이 되었다. 선생님은 모델을 가리키며 교복에 대해 설명을 하다가 갑자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주번 누구야?” 

교복 입은 예쁜 영미를 보고 멍하게 있는데 옆 친구가 나를 쿡, 찔렀다. “주번, 너잖아”, 나는 그제서야 손을 슬며시 들었다. 


“교실 앞이 왜 이렇게 지저분해? 앞에 와서 좀 쓸어 봐.” 

나는 문짝이 덜렁거리는 청소도구함에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꺼냈다. 그리고 앞에 나가 비질을 시작했다. 한 영미는 의자 위에 올라가 교복 모델이 되고, 다른 영미는 예쁜 영미 주변에서 비질을 했다. 우리 둘은 그렇게 한 동안 교실 앞에서 다른 모습으로 서 있었다. 무엇보다도 영미는 영미로 불렸고, 나는 주번으로 불렸다는 사실을 조금은 서운해했던 것도 같다.  




영미, 영미 

대만 사람들은 나를 영미라고 부른다. 나를 ** 엄마나 402호라고 부르지 않는다. 동료 간에도 직책과 상관없이 가까워지면 서로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나는 학교 학술처장급 선생을 부를 때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그도 나를 영미라 부른다. 친한 선생과도 서로 이름을 부르고, 직원도 나에게, 나도 직원에게 이름을 부른다. 나는 여기서 영미 혹은 잉메이(‘英美’의 중국어식 발음)로 불린다. 내게도 서로 이름을 부를 정도로 가까워진 친구들이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은 나를 “영미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대만 사람들은 나를 조 선생, 조영미 선생보다 영미 선생으로 부른다. 여기서는 성을 뺀 이름과 호칭으로 상대를 부르는 일이 일반적이다. 나는 그 말이 아주 친근하게 들린다. 이름만 부르면 왠지 더 상대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 


한 학생이 교내 <한국어 체험 활동>에서 써 준 내 이름, 영미


영미, 영미 

나는 수업 첫날 학생들에게 각자의 이름표를 만들라고 한다. A4 종이를 세로로 세 번 접은 뒤 종이의 위 아래를 만나게 하면 멋진 삼각뿔 이름표가 된다. 많은 학생들은 자기의 이름을 한국식, 한국어로 적는다. 외래어 표기법에 의하면 이름이나 지명은 그 지방에서 불리는 발음으로 표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만 총통은 “차이잉원(蔡英文)”이다. 한국어 음가로 “채영문”이라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은 한국어 음가를 그대로 쓴다. 코코나 릴리 같은 영어 이름처럼 한국어 이름을 짓는다고 생각한다. 자기 이름을 한국어로 모르는 학생들은 내가 한 자 한 자 모두 사전에서 찾아준다.  


나는 출석을 못 부른다. 

출석부를 보고 학생들의 이름을 못 읽는 까막눈 선생이기 때문이다.  

매 시간 각 반의 반장이 나와 글자를 못 읽는 선생 대신 학생들의 출석을 부른다. 나는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 해 너무 미안하다. 그래서 이름표를 만들게 하고, 학생들의 이름을 수업 시간 도중에 불러 준다. 선생님에게 이름이 불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들 간에도 서로 이름을 부르게 한다. “어이” 혹은 “통슈에” (同學, 반 친구를 부르는 말) 대신 꼭 이름을 부르게 한다. 누구에게나 이름은 소중하다. 

학생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선생님이고 싶다. 


다음주 월요일이면 개강이다. 또 어떤 이름의 학생들이 우리 반에 올지 궁금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 이름이 많이 불렸으면 좋겠다. 

영미, 영미 

요즘 내 이름이 많이 불려 기분이 좋다.  

나도 영미니까.  

무엇보다도, 

영미를 부르는 영미 친구와 영미와 땀 흘려 뛰는 영미 동생과 영미 동생 친구 모두 응원하며, 영미를 응원하는 우리 대한민국, 제 이름이 다정하게 불리기를 기다리며 어딘가에서 혼자 있을 또 다른 영미들도 모두 응원합니다! 



* 대문 사진 출처: 

http://www.ilyoseoul.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259


* 전국의 영미들에게: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600&key=20180221.99099008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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