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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Jun 06. 2020

엄마는 커서 뭐가 될 거야?

[이럴 땐 이런 책]강원국의 글쓰기

엄마는 커서 뭐가 될 거야?
나, 이미 다 컸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더, 더, 더 크면 뭐가 될 거냐고.


아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십여 년 전의 일일 것이다. “엄마는 맨날 컴퓨터만 봐. 나랑 안 놀아줘.”라고 불평하던 아이가 난데없이 날더러 묻고 있었다. 커서 뭐가 될 거냐고. 

글쎄, 난 뭐가 되려나. 뭐가 되려고 컴퓨터나 보고 앉았을까.

뭔가 열심히 하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었지만 내가 뭘 해낼 수 있을지 의심에 가득차 있을 시기이기도 했다. 나는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아이는 나를 채근하듯 물었다. 엄마는 나중에 커서 뭐 되고 싶냐고.

작가.

얼른 대답해 줘야지, 라는 마음에 툭, 튀어나오긴 했으나 이건 오랫동안 지켜온 ‘마음의 소리’였을지도 몰랐다. 얼마 후, 아이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파란색 색종이에 이렇게 써 주었다.


엄마는 작가가 아니지만 곧 작가가 될 거예요.


나는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엄마에게 커서 뭐가 될 거냐고 묻던 아이는 며칠 전 스무 살 생일을 맞았다. 

그리고 나는 작가가 되었을까?




엄마는 아이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가는 동안 엄마는 아이처럼 속도감 있게 커가지 못하는 것이다.

엄마의 나이가 그렇고, 하는 일이 그런데, 당연한 일을 당연해하는 순간 서글퍼지며 현타가 밀려 온다. 아이의 성장을 보며 뿌듯해하지만 정작 자라지 못한, 아니 오히려 아이를 키우기 그 전보다 더 아무것도 아닌 나를 보면 무기력함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그러다가 그냥 나는 나로 살았다고, 내가 나인 것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커서 뭐가 될 거예요?"

이 질문의 답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뭐가 되든 안 되든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성장해야 한다고. 가만히 있으면 성장이 멈추는 게 아니다. 더 퇴보되고 쪼그라든다. 외국 유학생들이 방학을 끝내고 오면 간단한 말도 한국어로 빨리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고향에 돌아가 한두 달 동안 한국말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면 당연한 결과이다. 외국어를 배우다가 배우지 않으며, 글을 쓰다가 쓰지 않으며, 운동을 하다가 하지 않으며 서서히 터득해간 이치는 이렇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뒷걸음질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현상유지도 못하기에 오늘도 의식적으로 성장을 위해 애쓴다. 오래 전 아이의 질문을 기억하면서…

“엄마는 나중에 커서 뭐가 될 거야?”
그래,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지.

작가.


(20) 굳이 큰 꿈이 아니어도 된다. 글 쓸 때마다 작은 목표를 하나씩 정해보자. 창피만 면하면 된다. 분량을 채우기만 하자, 마감 내에 쓰기만 하자, 독자가 이해 못하는 글만 쓰지 말자. 이런 목표를 갖고 쓰면 성공한다, 작은 성공이다. 이런 성공이 모여 자신감을 만든다.


나는 작가일 수도 아닐 수도, 작가가 될 수도 못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읽고 써야 한다. 하루 하루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와 브런치 글쓰기는 나를 잘 키워주고 있다.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여준 것이 그의 말대로 성공이라면, 지금 여기서 글을 쓰고 있는 우리 모두는 성공한 셈이다.


<강원국의 글쓰기>

글쓰기 방법에 대해 알아가고 싶어 이 책을 읽었는데 예상과 달리 이 책을 읽고는 나의 개인적 성장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역시 글쓰기는 나의 성장을 이끈다.


(126)  글은 전염성이 강하다. 옆자리에 있는 동료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자기도 모르게 따라 하듯 우리는 좋은 글에 쉽게 감염된다. 


나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도 알려 주고 싶어진다.

이미 다 커버린 우리도 잘 커가기 위해 글을 써야 하고,

내가 나를 키우는 데에는 타인의 검열도 허락도 필요하지 않고,

삶에서 목표는 크고 작든 꾸준히 갖고 있어야 할 거라고.


이런 생각에,

나는 오늘도 이렇게 별 볼일 없는 글을 또 한 편 썼다. 

자신 있게! 

글쓰기는 자신감이 절반이라기에...


오늘의 밑줄 그은 문장은 이렇습니다.



출처: 알라딘


(처음)

1장 누구나 시작은 막막하다 – 글쓰기는 자신감이 절반

글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쓰면 된다. 첫째, 쓰고 나서 편집하면 된다. 퇴고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둘째, 쓸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쓸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 셋째, 당신이 쓴 글에 다른 사람은 그다지 관심 없다. 당신이 다른 사람 글에 크게 관심 없는 것처럼. 넷째, 자료 열심히 찬고 시간을 들이면 된다. 다섯째, 최선을 다해 쓰고 남에게 보여주면 된다. 글은 다른 사람 의견으로도 좋아질 수 있다. 

글쓰기 교수법의 대사 윌리엄 진서(Willinam Zinser)가 그랬다. “글쓰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는 실제로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왜 어려운가. 쓰기 싫기 때문이다. 쓰기 싫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뇌는 예츨 불가하고 모호한 것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위험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안전 욕구가 본능적으로 있다. 그런데 글쓰기야말로 정체를 알 수 없다. 정답이 없다.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모호한 대상이다. 여기에다 끝까지 못 쓸까봐 불안하고, 못 썼다는 소릴 들을까봐 또 불안하다. 결국 피하고 본다.


(16)

 일부러라도 자신감을 북돋워줄 필요가 있다. 이유는 세 가지다. 1) 내 안에 있는 쓸거리를 끄집어내기 위해서다. 2) 과도하게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면 글이 안 써지기 때문이다. ~ 기발한 생각은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 개요도 써야 정리되고 짜인다. 시작할 때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써가며 알게 된다. 알아서 쓰는 게 아니다. 모르니까 쓰는 것이다. 3) 언제든 내가 쓴 글을 남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18)

 그렇다면 글쓰기 자신감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1)    내 글에 호의적인 사람을 곁에 둔다.

2)    매일 글을 쓴다.

3)    글로써 목표를 이루겠다고 마음먹는다.


(82)

1) 글은 재능으로 쓴다? 땀과 노력으로 쓴다. 2) 글쓰기는 특별한 사람의 전유물이다? 보통 사람, 힘없는 사람이 가져야 하는 무기다. 3) 아는 게 많아서 쓴다? 쓰면서 아는 것이다. 4) 글은 첫 줄부터 쓴다? 아무 데서나 시작해도 상관없다. 5) 글쓰기는 고독한 자기와의 싸움이다? 경우에 따라 함께 쓰면 더 잘 쓸 수 있다. 6) 글은 머리로 쓴다? 글은 가슴과 발로 기획하고 엉덩이로 마무리한다. 7) 글쓰기는 창조적 행위다? 어딘가에 있던 것의 재현이고 모방이다. 


(96)

 글쓰기에서 평균이나 정석, 정상은 때로 독이 된다. 평균에서 많이 벗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 어떤 상황이나 어느 단계에선 이렇게 쓰는 게 정석이란 생각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감찰한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111)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기 생각에 대한 생각을 한다. 내 생각을 확인하고 평가한다. 생각을 객관화하여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방식은 탐색, 확장, 평가, 선택의 과정을 거친다. 하나의 생각을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을 보고 들으며 탐색한다. 그러면 무언가 떠오른다. 떠오른 생각에 새끼를 친다. 모든 가능한 생각을 소환한다. 생각을 확장하는 것이다. 확장해서 만들어진 생각을 목적, 가치, 수단의 측면에서 평가한 후 최선의 생각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근거, 이유를 붙인다. 

 글을 이때 써진다. 평가와 선택이라는 응축 단계에까지 이르러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 탐색 단계에서 쓰면 설익고, 확장 단계에서 쓰면 자기 생각이 아니어서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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