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미 Jun 19. 2020

점, 어쩌란 말이냐

강준만의 <글쓰기가 뭐라고>

점이 있다.

왼쪽 눈 밑에 난 점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예전에 뺀 점이 다시 자라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신경이 쓰인 나머지 피부과에서 점을 다시 뺐다. 치료를 받은 부위에 메디폼을 붙였다. 이제는 밴드를 붙인 자국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괜히 뺐나?’ 거울을 보며 상처 부위를 자꾸만 만졌다. 


친구를 만났다. 한두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내게 점에 대해 묻지 않았다. 상대의 외모를 굳이 지적하지 않는 예의 바른 친구라 그랬겠거니 생각했다. 결국 내가 말해버렸다. “나, 점 뺐어.” 그녀는 들고 있던 컵을 테이블 위에 놓고는 내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너, 점 있었어?”




나의 글쓰기는 눈 밑의 점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무도 모르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 나 혼자 매일 쳐다보고 손을 대고, 결국 빼 버리고 시간이 흘러 작고 검은 것이 다시 자라고 또 다시 빼야 하나 고민하고 다시 빼고, 그 상처를 만지작거리고, 그렇게. 

그런데

내게 점이 있어도 없어도 상대는 그것을 모른다. 나만 안다. 

내가 글을 쓴다. 상대는 모른다. 아니 알아도 읽지 않는다. 혹은 읽고도 모른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는 다시 고민하고 글을 쓰고, 썼다가 작아지며 쓴 글을 지운다. 다시 글자가 화면에 하나씩 박힌다. 어느 새 글이 완성된다. 


글을 쓰고 나면 유독 내 글의 단점이 도드라져 보인다. 

거울을 보며 점을 만지듯 키보드의 백스페이스를 마구 눌러댄다. 

다시 정신 차리고 쓴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에이C,

점이 있든 없든 점을 빼든 말든 그건 내 일이야.

점을 가지고 날 가꾸는 것도 내 일이야.


글에서 마리린 먼로나 <아내의 유혹>의 민소희가 필요하면 과감하게 점을 찍어 주고, 아님 말고. 지워지지도 않는 꼴보기 싫은 점이 있다면 그냥 둬 버리자. 내 손으로 뺄 수 없는 점을 어쩌란 말인가. 



강준만의 <글쓰기가 뭐라고>는 강원국의 <강원국의 글쓰기>만큼이나 나의 글쓰기에 힘을 실어주었다. 특히 “글쓰기는 자기표현의 권리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생긴 대로 살고 있고, 그렇게 생겨버린 모습으로 제대로 살기 위해 글을 쓴다. 그렇게 생각하면, 글쓰기를 머뭇거릴 이유는 줄어들지 않을까.



오늘의 밑줄 긋기, 시작합니다.


출처: 알라딘


(26)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글쓰기 고통은 과욕에서 비롯된다. 처음부터 자신이 모든 걸 다 만들어내겠다니, 그 얼마나 무모한 욕심인가. 윤리적이고 겸허한 편집자의 자세를 갖게 되면 당연히 많이 읽고 생각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중요한 것은 ‘창조는 마음의 편집’이라는 것을 흔쾌히 인정하는 마음이다.


(34)

글쓰기가 너무 힘든 사람들은 일단 말하듯이 쓰기 바란다.


(37)

 뭘 알아서 쓰는 게 아니라 쓰면서 뭘 알게 된다. ~ 머릿속에선 전혀 문제가 없는 멋진 아이디어였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중간에 막힌다. ~ 나는 뭘 알아서 쓴다고 생각했지만, 정반대로 쓰면서 알던 것과는 다른 걸 알게 된 셈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학생들 중 일부도 이걸 어렴풋하게나마 잘 알고 있었다. 생각이 있어 쓰는 게 아니라 써야 생각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글쓰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달리 말하자면, 생각을 요구하는 글쓰기가 싫다는 것이다.


(47)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말이다.


(50)

 글쓰기는 대부분 사람에겐 ‘독창성의 게임’이라기보다는 ‘기억력의 게임’이다. 그리고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의 게임이다. 많이 읽고 기억력이 좋을수록 머리에 든 게 많을 테니 그만큼 글쓰기도 쉬워진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독창성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하는, 묘한 게임을 한다. 


(60)

 “글쓰기 재능을 연마하기 전에 뻔뻔함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다.”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의 말이다. 출판사 편집장인 제이슨 르쿨락Jason Rekulak은 “작가가 되고 싶다면 철면피가 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일생 동안 계속될 부정적 비평을 견뎌낼 수 있다나. ~ 전문 작가에겐 부정적 비평을 이겨내는 게 중요하겠지만, 글쓰기 초심자에겐 자기 내면에서 스스로 하는 부정적 비평을 넘어서는 게 중요하다. 


(64)

글쓰기를 할 때엔 겸손하면서 오만하고, 오만하면서 겸손할 필요가 있다. 글에서 무언가를 보여주겠다는 욕심을 내는 일에선 오만이 필요하며, 그런 욕심이 드러나지 않게끔 차분하게 논지를 펴 나가는 일에선 겸손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 다시 말하자면, 글의 마지막을 과거의 새마을영화 식으로 끝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잘해보자는 식의 단합 대회라고나 할까? 아니면 ‘막판에 천사 되기’라고나 할까? 이는 세미나에서 상습적으로 나타나는 ‘막판에 낙관주의자 되기’와 유사하다.


(66)

글쓰기를 소확행 취미로 삼아라.


(181-182)

 온라인 글쓰기의 가장 큰 문제는 역지사지易地思之가 글을 쓰는 사람의 인정투쟁용 경쟁력 확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온라인에서는 ‘치고 빠지는’ 전투적 글쓰기가 잘 먹힌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선 자기반성 없는 가해자 반격에 나선 피해자에게 역지사지를 요구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중략) 

 그렇다. 단호하게 내질러야 청중이나 독자가 좋아하며 팬이 생긴다. 역지사지를 좋아하는 법학자 김두식에겐 바로 이게 고민이라고 한다. 전제를 많이 깔고 예상되는 공격에 방어를 미리 하다 보면 길이 밋밋해진다는 것이다. ~ 내 경험을 비춰 보더라도, 내질러야 팬이 생긴다. 어찌 할 것인가? 이렇게 타협을 보도록 하자.~ 온라인 글쓰기의 품질과 도덕성 향상을 위해서라도 역지사지가 꼭 필요하다는 원칙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신이 훈련 단계를 끝내고 당신의 이름을 걸고 어떤 주장을 하고자 할 때엔 내질러도 좋다. 다만, 뒷감당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갖고 내질러야지, 무조건 내질렀다간 이름을 얻기도 전에 신뢰를 읽고 만다.



글쓰기의 10계명

1.     남의 글을 베껴라.

2.     글쓰기는 설득이다.

3.     글쓰기는 공감이다.

4.     초고를 버리지 마라.

5.     김훈을 흉내내지 마라.

6.     글쓰기는 자기 사랑이다.

7.     메모의 효율성을 믿어라.

8.     글쓰기의 고통에 속지 마라.

9.     글쓰기는 자기표현의 권리다.

10.  창작자가 아닌 편집자의 자세를 가져라.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는 커서 뭐가 될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