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인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딱 한 가지 답하고 싶은 것이 있다.
'삶의 선택들을 마주했던 순간마다
온전히 나 스스로 선택하지 못했던 것들이
지금까지도 내 발목을 잡아
늘 그 순간들을 후회한다'
내 중고등학교 시절 장래희망 란은
늘 심리학과 교수라고 적혀있었다.
교수라는 직업이 멋있어 보였고
상담이나 심리,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내내 목사님이신 아버지를 도와 교회일을 하다 보니 내가 정말 뭘 하고 싶은지 다른 활동을 할 겨를도 없이 늘 집-학교-교회를 왕래하며, 공부와 교회 활동을 하기에도 내 시간은 모자랐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정말 앞으로 내가 무얼 해야 할지 몰랐었다. 아니 그냥 내 마음을 들여볼 여유가 없었다.
아버지가 아침마다 차로 학교까지 데려다주셨는데 내가 상담할 사람은 아버지가 전부였다.
아버지는 처음엔 너 하고 싶은 거 해라라고 말씀하셨지만, 점점 신학과를 가는 게 어떻겠냐고 매일 아침마다 말씀하셨다.
그 대학을 가야 한다로 시작된 이야기는 신학과로 좁혀졌고, 그래야 네가 유학도 갈 수 있고, 유학을 가야 교수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논리인데 그때는 그 말이 정답 같았다. 고민이 깊어질수록
나는 정말 신학과는 죽어도 가기 싫었으나
아버지는 네가 대학만 갈 것도 아닌데 박사까지 공부할 거면 신학을 기초로 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씀하시며 나의 앞길을 책임지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곤 학부모 상담 때도 담임 선생님께 00 학교 신학과를 보낸다고 선포하고 가셔서, 선생님은 내가 당연히 그런 쪽에 뜻이 있는 줄 아시고 그 뒤로 다른 방면으론 신경 써주시지 않았다. 그저 교회 활동을 위해 야자를 자주 빼주시고, 조퇴를 해도 눈감아 주실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수시도 나는 5군데나 쓸 수 있었고
내신 성적이 좋았으나 3군데만 썼다. 그 누가 나에게 뭐라고 조언해주는 이가 없었고, 친구들은 넌 신학과를 갈 거니까 연세대를 지원해보라고 했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연세대 학생부 전형으로 지원해 1차를 합격하였으나 담임 선생님은 어차피 너는 아버지가 말한 그 대학을 간다고 했으니까 하며 별다른 신경을 써주시지 않았다. 수시 좋은 기회들을 놓치고 정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안타까운 성적이었으나 아버지가 말한 그 학교는 충분히 갈 성적이었다. 정시 원서를 쓸 때도 나는 그 학교에 교육과를 지원하고 싶어서 마지막까지 고민했으나 아버지와 통화 후 그냥 신학과를 눈감고 클릭했다.
그리고 나는 그 대학에 그 과에 들어갔다.
모든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인생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순간은 바로 이것이다.
만약 눈을 질끈 감고 조수석에 탄 사람이 말하는 대로 운전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앞에 트럭이 오는지 가려고 하는 목적지는 어디인지 애써 무시한 채 뒷좌석과 조수석에 앉은 사람들의 말을 따라 눈을 감은 채 운전하면 얼마 못가 사고가 날 것이다.
내 인생이란 차의 운전석엔 내가 앉아있다. 그들이 옆에서 손을 뻗어 내 핸들을 움직일 순 있으나 사고가 안 나면 다행인 것이다. 엑셀을 내가 밟고 브레이크도 내가 밟는다.
그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았어야 했다.
모든 문제는 내가 눈을 감고 '에라 모르겠다' 하며 엑셀을 밟고 옆사람이 휘청이며 운전대를 맘대로 휘두르게 한 것에서 시작한다.
대학생활이 맘에 들지 않던 것은 아니나 졸업하고 달려온 길에서 운전대를 혼자 다시 쥐게 되었을 때 나는 큰 자괴감을 느꼈다. 내가 원했던 도착지가 아니었고 3-4년의 시간을 다시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리고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걱정 말라던 아버지의 말도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고 나는 그 뒤에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신학과란 특수한 학력 때문에 면접 때마다 난감한 질문을 받기 일쑤였고
왜 그 학과를 갔냐는 질문마다 나는 아버지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고, 현재 내 가치관과 딴판인 나의 학력과 경험들을 이야기할 때마다 움츠려 들었고 숨고 싶었다.
그래서 심리학을 또 따로 공부했지만 그 처음 학력이 덮어지긴 어려웠다.
그렇게 괴로워하며 허망하게 보낸 시간들이 이제는 정말 아깝다.
물론 내가 운전하다 사고가 날 수 있고, 차에 기름이 떨어질 수도 있고 인생의 변수는 많다. 그러나 내가 정해놓은 목적지로 가면서 내가 운전대를 잡고 온전히 내 몫으로 운전을 하면 사고가 났을 때 보험처리도 쉽고, 결과를 극복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내 인생의 차에서 누군가 내 자리에 대신 앉아 운전하거나 핸들을 쥐고 흔들게 방관하거나 그러다 사고가 나면 나는 억울할 수도 보험처리를 하기에도 애매해지게 되는 것이다. 누구를 탓하기에도 방관한 운전자가 잘못인 거 같고 다 내 탓이라고 하기에도 속에선 천불이 날 것이다. 그러나 그 차가 내 명의로 등록이 되어있으면, 핸들을 옆에서 꺾은 사람이 누구든 운전석에서 액셀을 밟은 내가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의 운전대를 함부로 남에게 쥐어주거나 에라 모르겠다 하며 눈을 감고 운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러했던 나의 모습을 가장 후회한다.
어떤 인생은 누군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운전을 시켰을 수도 있고, 어떤 인생은 운전대를 쥘 용기가 없어 옆에 사람에게 운전대를 미루고 자기는 엑셀만 밟아댔을지 모르지만
그 대가는 모두 자신이 치러야 한다.
당신이 차를 운전하던 배를 운전하던
운전대와 키는 모두 당신이 직접 쥐고 항해하라
부모님도 당신의 인생의 끝까지 함께 조수석에 앉아주지 않으며, 당신의 친구도 당신 곁에 앉아있다 언제 내려버릴지 모른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
내가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 내가 납득이 되지 않으면서 그저 끌려다니듯 살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고통이 얼마나 뼈저리게 아픈지 알기에
잠깐은 나보다 운전을 잘하는 사람이 대신 핸들을 꺾어주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그러나 옆사람이 옆좌석에 앉아 팔을 뻗어 내 운전대를 잡아주는 것도 일시적일 뿐이다.
그 사람도 곧 팔이 아파 금방 운전대를 놓아버릴 것이고 이미 온 길이 멀기에 미숙한 운전 실력으로 연습도 못한 채 돌아가는 그 길은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다.
나는 나에게 자녀가 생긴다면
분명한 한 가지 이 사실을 먼저 알려주고 싶다.
절대, 그게 부모인 나라도, 가장 친한 친구라도
절대 인생의 핸들을 아무에게나 넘기지 말라고
차라리 브레이크를 걸고 잠시 어떻게 갈지 너 스스로 생각하고 쉬어가라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눈을 뜨고 분명하게 앞을 바라보며
스스로 핸들을 쥐고
안전 운전하길 바라며
앞으로의 여행길에 당신이 원하고 스스로 당당한 아름다운 추억들만 가득하기를 바라며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