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31가지 아이스크림 집에 가면
내 동생은 늘 단호히 어느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지 말했으나
나는 늘 한참을 고민하다...
'아무거나'라고 하다 음 '그냥 동생이랑 같은 걸로 주세요'라고 말했었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발레 공연을 보고 온 저녁식사 자리에서 메뉴를 결정하지 못하였고
사실은 토마토파스타를 먹을까 했으나, 크림 파스타를 먹겠다고 단호히 말하는 친구를 따라 '저도 크림 파스타요'라고 주문했다. 주문에 맞게 나온 정통 크림 파스타의 느끼함에 한입 먹고 더이상 입을 대지 못했고 한 학부모님이 주문하신 토마토 파스타와 바꿔 먹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지금은 크림 파스타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처음 먹은 맛으로는 굉장히 느끼했다.
늘 나는 어릴 때부터
'아무거나' ' 너 좋을 대로'의 태도로 살아왔던 것 같다. 누군가를 배려하고 싶은 마음도 진심이었고, 부모님은 그런 나를 참 순하고 착하다고 하셨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나는 나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이다.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사람 치고
정말 '아무거나'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
남자 친구에게 늘 '뭐 먹을래?'라고 물으면
'아무거나'란 답변이 왔다.
그래서 '떡볶이는 어때?' 하면
'나 떡은 싫어해'라고 했고
'그럼 쌀국수는 어때?'라고 하면
'나 쌀국수도 별로...'라고 했다.
순간 화가 났다.
'아무거나'는 결코 '아무거나'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네가 맞춰봐 나는 잘 모르겠으니 네가 맞춰야 해''
얼마나 이기적인 답변인지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결정장애'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대이다.
무엇을 할지 뭐가 좋을지 늘 고민되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럴 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데 정말 어렵네 네가 더 좋은 것 추천해줄래?'라고 조언을 구하는 것은 좋으나 '아무거나!' 라며 선택의 책임을 회피하지는 말자
내가 어른이 되면서 이전 글처럼 운전대를 나 스스로 잡게 되면서 성숙의 지표에는 이제는 더 이상 '아무거나'를 외치지 않는단 것이다.
나를 아는 만큼 남을 이해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나에게 맞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 그 정리가 되지 않는 인생은 혼돈뿐이다.
자꾸 먹어봐야 안다. 그 작은 아이스크림 메뉴를 결정하는 일도 그렇다.
내가 무엇을 내 그릇에 담을 것인지
오늘 하루 시작은 어떤 음악과 함께 할 것이며
어떤 사람과 함께 할 것인지
오늘 나의 시간은 어떤 것으로 채워갈 것인지
작은 선택들이 모여 나의 인생을 채운다.
나의 인생에 가장 불필요한 말은
바로 '아무거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