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같은 정도의 사람들

옛 동료의 결혼이 선물해 준 만남

by Sori

후배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지난 금요일 밤, 아이들의 축구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울로 출발했다. 많은 비가 예보된 날이라 걱정이 되었지만, 미리 포기하지 말자는 심정으로 고속도로에 올랐다.


밤에 내리는 비는 그 자체로도 부담인데, 바람까지 더하자 빗줄기가 옆으로 날렸다. 빛에 반사된 차선은 미간에 잔뜩 힘을 주고 아무리 째려봐도 흐릿하기만 했다. 뒷좌석의 아이들까지 긴장하는 게 느껴져, 결국 다음 톨게이트에서 유턴할 수밖에 없었다.


20여 년 전, 함께 일했던 후배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반려자를 만나 결혼하는 날이었다. 나를 잘 따르고 의지가 됐던 동생이라, 비록 내 결혼식 이후 12년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기꺼운 마음으로 다음 날 새벽, 아이들을 잠옷 차림 그대로 태워 다시 서울로 향했다.


결혼식도 결혼식이지만, 그 시절 동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마음이 일렁였다. 아이들을 엄마 댁에 맡기고, 한껏 설레는 마음으로 지하철을 탔다. 나대는 감정에 조절이 좀 필요했던 걸까. 세월의 어색함을 피하고자 지하철역에서부터 함께 가기로 한 동료가 식이 시작할 무렵에야 도착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김이 팍 샜다.


한 곳에서 20년을 근무한 신부라 많은 하객들이 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 낯익은 사람들이 로비를 꽉 채우고 있었다. 아는 사람, 얼굴만 아는 사람, 나만 아는 사람, 그도 나를 알까 알쏭한 사람까지. 스쳐 지나가는 얼굴 대부분이, 존재를 인식한 시점부터 치면 알고 지낸 지 평균 20년쯤 되는 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밀착 지인이 없는 뻘쭘함은 너무 불편했다.


"어? 어! 야, 너 왜 이렇게 그대로야?"


어색한 공기를 피해 지각생 마중이나 나가야겠단 생각으로 몸을 돌리던 순간, 입구로 들어오는 태진(가명)이와 눈이 마주쳤다. 내 기억이 맞다면 17~8년 만이다. 그레이가 섞인 하늘색 셔츠 때문이지, 자그마한 체격에 동글동글한 미소 때문인지 정말 20대 후반 태진이 모습 그대로였다.


"영민아, 정말 오랜만이다."


태진이의 눈도 동그래졌다. 예상치 못한 만남은 그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곧 지각생 동료까지 합류한 우리는 하객으로 꽉 찬 식장 입장을 쉽게 포기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반가움과 궁금함에 식장보다 식당이 우리를 더 강하게 끌어당겼다.


"아니, 어쩜 이렇게 그대로야!"


쉼 없는 대화의 시작이었다. 사실 이들은 빠릿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말의 시작도, 반응도 반 템포씩 느리다. 그러나 그들이 가진 더딘 듯 푸근하게 번지는 미소, 그리고 깊은 집중은 감각적인 피드백만큼이나 강력했다. 난 분명 내향형인데, 순식간에 그때의 아가씨와 지금의 아줌마를 오가며 질문과 이야기를 쏟아냈다.


"태진아, 태진아." 부르다 문득, 반백 살이 된 두 아들의 아빠를 이렇게 불러도 되나 싶었다. "유리(가명)야, 유리야." 사춘기 딸의 만행으로 속을 썩는 두 딸의 엄마 이름을 이렇게 부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태진이는 업무 외에도 진로지도에 관심이 많아 따로 공부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탈북민들의 창업을 돕는 일을 한다고 했다. 유리는 출산과 육아로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독서지도사 공부를 거쳐 작년에 문헌정보학 학위를 취득했다고 했다. 한결같이 성실하고 꾸준한 옛 동료들의 이야기가 괜스레 고마웠다.


두 시간을 쉴 새 없이 떠들다, 일정이 있다는 태진이와는 알 수 없는 미래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수년간의 회포를 풀리라 맘먹고 만난 유리와 나는, 가을이면 더욱 반짝이는 정동길로 향했고, 덕수궁 돌담길 옆 노천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유리는 1년간의 긴 구직활동 끝에 최근 초등학교 계약직 사서가 되었다. 근무한 지 2주밖에 되지 않았지만, 교실에서의 외로움을 피해 도서관으로 오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다. 피난처 삼아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을 위해 독서치료 공부를 해 보고 싶다고도 했다. 따뜻한 관심으로 사람을 바라보던 청년 유리가 겹쳐 보였다.


자녀에게 책을 소개하고자 시작한 독서지도사 공부가 사서를 꿈꾸게 하고, 사서가 되어 독서치료에 관심을 갖게 된 유리의 여정이 매끈하진 않았지만 자연스럽고 제법 단단해 보였다. 사람이 삶을 이끌어가는 것 같지만, 어쩌면 삶이 사람을 이끌어가는 순간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이제 집에 가야 하는데..."


감정이 조금도 담기지 않은 말을 반복하다, 완전히 해가 진 뒤에야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만 더 걸을까?" 누구의 제안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우린 흔쾌히 정동길을 거쳐 광화문으로 향했다. "가려면 한참인데, 간단히 저녁 먹고 갈까?" 작은 분식집을 찾아 배를 채웠다. "1호선을 타는 게 낫겠어. 종각까지 걸을까?" 마지막이 될 제안에 우린 또 걸으며 아직 남은 이야기를 나눴다.


전날 내린 비 덕분에 선선해진 바람은, 20년 전 우리가 함께 이야기 나누며 걸었던 수많은 길 위의 시간을 추억하게 했다. 추억과 오늘을 소화하느라, 나는 혼자 조금 더 걸은 뒤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정동길 노천까페정동길 노천까페에서 해가 질 때 까지 이야기는 계속되었습니다. ⓒ 이영민


다음 날 아침, 묵직하고 든든한 어제의 감정 속에서 잠을 깼다. 배 아래에서부터 쭈욱 올라오는 묵직함이 영혼의 코어를 단단히 잡아주는 기분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이 신비로운 감각은 이삼일 동안 지속됐다.


정한 방향을 꾸준히 걸어온 사람들이 주는 포만감과 정갈함 같은 것이었다. 조용히, 그러나 뜨겁고 열렬히 살아온 그들의 열정의 '정도(degree)'가 반가웠다. 온도가 같은 사람들을 만나 갈증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지난 여름 글쓰기 모임에서 느꼈던 안정감도 같은 이유였을 거다. 나의 섬세함을 돌봐주었던, 깊은 '정도'의 세심한 열정들이 헤매던 마음을 단단히 붙들어 주었다. 다시 내 이야기를 쓸 수 있게 해주었다.


고유한 삶을 만들어가려는 '정도'가 깊은 태진이와 유리와의 만남은, 우왕좌왕하던 내게 다시 방향을 정하고 갈망을 추구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었다.


살면서 같은 방향에서, 비슷한 온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그 관계 속에서 누리는 풍요와 만족은 또 얼마나 소중한가.


나다운 삶을 지탱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들. 그런 이들이 늘 곁에 있어, 결핍을 미처 알지 못했던 나는 꽤 괜찮은 20대를 보냈음을 알았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정도'로 나를 일으켜주는 이들이 있음을 확인한 날이다.


경조사에 그다지 열심이지 않은 내가 비바람을 뚫고 새벽잠을 이겨내며 그 자리를 찾았던 건, 아마도 같은 정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꼭 만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그들에게도 그날, 나 역시 그런 사람이었기를 바라본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