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더 우월한 감성은 없다

나의 감성을 받아들이기

by Sori

10~20대 초반 참가자들이 주를 이루는 '우리들의 발라드'라는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라운드가 거듭될 수록 참가자들의 개성과 실력이 또렷해진다. 어린 친구들이 어쩌면 저렇게 자신을 잘 알고, 또 잘 표현할까 감탄하며 본다.


1라운드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1등을 차지했던 스무살의 제주 소녀(?)는 '날 것 그대로의 감성'으로 심사위원과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그 강력함에 나도 한 동안 이 참가자의 노래를 흥얼거렸다.


3라운드에서 듀엣으로 팀을 이뤄 나온 이 참가자는 여전한 감성으로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첫 소절이 시작되자마자 한 심사위원의 눈은 최대치로 커지며 동그래졌고, 또 다른 심사위원은 "미쳤어 미쳤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예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이어 등장한 세 명의 혼성팀은 고등학생이 두 명이나 포함된 팀이었다. 순수함이 돋보이는 화이트 컬러의 의상을 입고 전람회의 '취중진담'을 불렀다. 담백하게 시작된 노래는 서로의 음색을 돋보이게 하는 세심한 구성을 따라, 너무도 아름다운 화음으로 불려졌다. "어쩌면 이렇게 섬세하게 부를수 있냐"며 심사위원들의 감탄이 쏟아졌다. 프로그램 시작 이후 처음으로, 간주 부분에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박빙의 승부 끝에 아쉽게 떨어지긴 했지만, 실력을 인정받기엔 충분한 무대였다.


프로그램을 다 보고 난 후, 극명하게 다른 감성을 전달해 준 이 두 무대가 한 동안 마음에 남았다.


며칠 전, 5주간의 글쓰기 모임을 마쳤다. 8명의 구성원이 매주 한 편의 글을 쓰고, 낭독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는 방식이었다. 모임을 마치며 한 멤버가 내 글에 대해 '차분하다', '성실하다'는 평을 해 주었다.


그건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종종 듣는 말이다. 차분하다, 성실하다, 섬세하다, 친절하다, 따뜻하다. 내가 추구해온 방향이기도 하고, 주로 그것을 무기로 살아온 삶이라 낯설지 않았다. 고작 네 편의 글을 읽고 나의 결을 읽어 준 것이 고맙고 신기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쓰는 일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동시에 뭔가 아쉽고 섭섭했다. 모임에는 내가 갖지 못한 시원함을 가진 글들이 있었다. 시선이 가고, 흥미롭고, 읽는 쾌감이 있었다. 자꾸 정돈하려는 내 글이 답답해 보이고, 행여나 치우칠 까 에두르다 길을 잃고 힘을 잃는 것이 싫었다. 스타일과 톤을 바꿔보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새 쿨톤의 글을 동경하고 있었나 보다. '흥미롭다', '재치있다', '강렬하다' 같은 평을 듣고 싶었나 보다.


더 우월한 감성은 없다. 어떤 감성이 더 우월한 건 아니다.

오디션의 두 팀을 보며 생각했다.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주는 감동이 있고, 날 것의 감성이 주는 감동이 있다. 그 안에 무엇을 담았느냐가 중요하다. 진심과 노력, 그렇게 다듬어진 실력이 사람들에게 가 닿는 것이다.


스르륵, 형체없는 생각이 순식간에 대학 시절의 나에게까지 찾아갔다. 디자인을 전공하며 늘 열등감에 시달렸던 시절. 잘 할 때도 있었을텐데,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늘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그 때의 내가 내 감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했었더라면, 그것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나만의 색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그저 그것을 계속 자라게 하면 족하다는 걸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조금은 더 즐겁게 공부했을 것 같고, 더 잘했을지도 모르겠다.


내년이면 대학 입학 30주년이다. 지금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일까 싶다. 다만 다음 주부터 다시 시작하는 글쓰기 수업에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조용히 다짐해본다. 내 존재가 녹아든 내 감성을 믿자. 그리고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 보자. 그렇게 내가 먼저 나의 팬이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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