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두 아들이 각각 여섯 살, 세 살이 되던 해에 ‘플레이그라운드(Playground)’라는 컨셉의 집을 완공했다. 에너지 넘치는 첫째 아들과 매력적인 뽀글머리 둘째 아들이 뛰노는 우리 집은 충청남도 작은 시골 마을, 낮은 산 아래에 있다.
나름의 감성을 간직한 이 동네가 처음부터 참 좋았다.
그냥 시골 같지 않았다. 조선 말 천주교도들의 순교 성지로 알려진 곳이라 그런지, 마을은 오래된 시간과 아기자기함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이 작은 동네를 만나기 전, 먼저 설레는 우연이 있었다.
옆 동네에 살던 신혼 초, 처음으로 깊은 답답함을 느낀 어느 날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이사 온 소도시에서 마음을 풀 만한 곳을 한 군데도 알지 못했다. 그때 문득 며칠 전 들었던 ‘개심사’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무작정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고 혼자 차를 몰고 나섰는데, 그날 놀랍도록 평화로운 목장길을 발견했다. ‘우리나라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만큼, 늦은 오후로 넘어가는 햇살 아래 반짝이던 목장과 마을은 너무 예뻤다. 서툰 운전으로 홀린 듯 좁은 마을길로 들어섰던 기억이다.
첫째가 아기였을 때, 종종 해미읍성에 놀러 왔다.
그때마다 이 기분 좋은 목장길을 지나야 했다. 눈과 마음이 초록으로 시원하게 물드는 약 6km의 길. 목장을 지나 논밭 사이 도로를 달리다 보면, 그때만 해도 흔치 않았던 전원주택들이 간간이 보였다. 잘 정돈된 마을에 자리한 예쁜 집들이 평화롭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이 작은 동네에 마음을 열고 있었다.
첫째가 다섯 살, 둘째가 두 살 되던 해, 남편이 집을 짓고 싶다고 했다.
워낙 호기심 많고 해 보고 싶은 것도 많은 사람이라, 그저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 정도로 여겼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타국으로 이주하고 싶은 꿈을 품고 있었던 나는 한국에 묵직한 짐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경제적 상황도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의 계획은 점점 구체화되어 갔다.
3D 모델링 프로그램을 독학하며 어떤 구조와 어떤 재료로, 어떤 기능을 담아 집을 짓고 싶은지, 내 눈과 귀가 익숙하다 못해 피곤을 느낄 때까지 반복 프레젠테이션했다. 계속 무시할 수만은 없는지라, 어느 날 이 동네의 부동산을 함께 찾아갔다. 우리 형편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과 적당한 땅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음을 확인시켜 주고 싶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예산에 맞는 땅은 없었고,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땅은 입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분명 그랬는데.
다음 해 가을, 우리 가족은 ‘우리 집’으로 이사했다.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집 한 채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꼼꼼히 따져보기보단 ‘온몸으로 부딪혀, 알아내어, 기필코 이겨내리라’는 삶의 태도를 지닌 남편이 겪은 필연적 시행착오도 많았다. 운명 공동체인 나와 아이들도 그 과정을 고스란히 함께해야 했다.
시작부터 부대낌이 많았던 ‘우리 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거주한 지 6년이 지나, 여섯 살이던 첫째가 사춘기에 접어든 지금에서야 이 집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아이들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설계된 구조, 아빠가 직접 만든 가구, 탁 트인 풍경과 넓은 집. 놀러 오는 이들의 감탄이 하나도 감사하지 않았다. 이 집은 그저 내게 부담이고 고립의 상징 같았다. 내 발을 끌어내리는 무거운 짐 같았다. 힘겹게 지은 집을 달가워하지 않는 나로 인해 남편도 서운함이 많았을 거다.
최근 들어 나는 이 집을 다시 바라보고 싶어졌다.
아마 남편과의 관계가 성장한 덕일 것이다. 나에게 이 집은 곧 남편이기도 했는데, 그만큼 서로의 다름을 이 집을 통해 많이 들여다보았다. 결혼 5년 차 무렵부터 오륙 년간의 이야기이니,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애쓰는 시기와 닿아있기도 하다. 찬찬히 들여다보며 내 고집과 부족함으로 왜곡된 기억도 바로잡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이 집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평생의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았다. 자연과 맞닿아 자란 아이들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이었는지를, 글로 남기고 싶었다. 이 기록이 아이들의 마음을 평생토록 뭉근하게 데워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시골살이와 전원주택에 대한 로망을 가진 독자들이 이 글을 통해 시골이 전하는 위로와 함께 시골 주택살이의 현실이라는 선물도 덤으로 얻길 바란다.
‘경단녀’라는 말이 싫었다. 그런 위치에 서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경단녀다. 구직의 관점에서는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지만, 이 기록 속에는 단절 없이 꾸준히 이어온 내 삶이 담겨 있다. 이 글은 내 삶과 가족에 대한 기록이자, 다시 쓰는 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