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하는 쪽은 언제나 아이였다
상식적으로
더 오래 살았고,
알고 있는 것이 더 많고,
무엇보다 어른이니까...
그래서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다시 관계에 기회를 주는 쪽은
당연히 부모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들과 살면서
정작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쪽은
아이들이란 걸 알게 된다.
'와, 나라면 다시는 말 안 하겠다' 싶게
혼내고 잔소리한 뒤.
그 어색함을 깨고 아이는 금세
'엄마~'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건넨다.
4학년이 되면서부터 꽤 자주 엄마 아빠와 갈등이
생기고 혼나는 일도 잦아졌는데,
그럴 때마다 '사랑해'라며 상황을 정리하고
다시 관계를 이어가는 쪽 역시 아이다.
그 상황이 학교 가기 직전이라던지
곧 부모와 떨어져야 하는 때라면
아직 감정이 다 가시지 않아 뾰로통할지도
꼭 '사랑해', '미안해'를 건네고 제 갈 길을 간다.
휴일 아침, 학습지를 풀다 두 번째 질문을 했는데
'왜 이런 걸 질문하는지 어이없다'는 듯
쿠사리를 주는 엄마 말투에 서운해하다가도
금세 다시 해맑게 질문한다.
'아, 왜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하지?'
내심 미안하고 민망했던 엄마에게
아이는 또 기회를 주었다.
'이 정도로는 엄마아빠에게 실망하고 돌아서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하듯.
반면 내가 ‘이거 엄마가 다시 한번 기회 주는 거야’라고
말할 땐 보통 화를 참고 협박용으로 사용할 때다.
언제까지 이 아이가 부모에게 기회를 줄지 모르겠다.
엄마 아빠가 온 우주인 시기를 지나면
점점 줄어들텐데.
그 시기가 오기 전에
넉넉한 품의 엄마가 되어야 할 텐데 말이다.
부족한 엄마에게 늘 다시 기회를 주었던 아이에게
'진짜 기회'를 푸짐하게 줄 수 있을 만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