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소원을 빌겠습니다
'불이 지닌 생명력에 의해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 조상과 후손을 이어주고, 타오르는 불길이 액운을 쫓아주며 잡귀를 막아준다는 의미래'
한 시간을 걸어 올라온 하회 마을의 모래사장,
올해 마지막 축제라는 이름을 쫓아 우리는 언덕 위에 돗자리도 없이 앉았다.
하늘의 달이 유독 밝아서
모두가 사진 찍는 틈을 타 작은 소원을 먼저 빌었다.
걷느라 데워진 몸이 식으면서 슬슬 옷을 잘못 입고 왔다고 생각하던 찰나 감탄이 들린다.
첫 불꽃이 달렸다.
다른 불꽃을 단 줄이 그 뒤를 잇는다.
계속해서 이어진다.
붉은 줄은 점점 길어지고,
내게서 먼 곳으로 점점 나아간다.
소리 없이 눈물이 난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다리의 모양으로
꺼지지 않으면서도 아래로 자꾸만 흩어지는 불꽃,
불의 생명력이 속수무책으로 내게 침투해
내 생각이 건져 올린 기억과 감정을 숨길 수 없이 모두 태우고 있다.
'낙화'
불덩이가 떨어진다.
종교가 없지만 그 순간 간절히
달에게 빌었던 소원을 다시 한번 읊기 시작했다.
'사는 동안 사랑을 잃지 않게 해 주세요'
'절 사랑하는 일을 잊지 않고 해낼 수 있게 해 주세요'
'제가 믿는 꿈, 희망, 행복을 향한 마음이 힘을 잃지 않게 해 주세요'
'제가 사랑하는 존재들이 어느 세계에서든 행복하게 해 주세요'
난 양심이 없다.
그래서 내내 빌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훌쩍이는 소리 없이 모두가 눈물을 흘린다.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네 말을 듣자마자 우린 대놓고 울기 시작한다.
'낙화'
또 다른 불덩이가 떨어진다.
'무슨 소원 빌었어?'
서로의 소원을 교환해 본다.
친구가 밥을 먹다 운다.
내 소원이 슬프다고 한다.
소원이 왜 슬플까.
23.10.29.
하회마을에서 열리는 선유줄불놀이를 아시나요?
저는 평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축제엔 잘 가지 않아서 몰랐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안동에 불꽃축제가 있는데 찜닭 먹을 겸 같이 가자고 한 일을 계기로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면 안 갔을 수도 있지만 당시 심신 미약 상태라 어디든 떠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나들이 떠나는 마음으로 도착한 안동에서 모래사장에 앉을 때만 해도 수많은 인파에 약간의 후회가 밀려온 건 사실입니다.
다만, 첫 불꽃이 달려 불꽃이 불꽃을 타고 나아가 줄불이 되는 순간을 목격했을 때 모든 건 잊었지요.
불이 주렁주렁 열려 다리처럼 타오르는 광경을 보신 적 있나요?
수많은 사람들과 강너머 불덩이의 열기에 얼굴이 일렁인 적은요?
저는 그날 기원전 철학자들의 왜 불을 우주의 4대 원소 중 하나로 여겼는지 이해했습니다.
영화 코코에서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를 왜 그렇게 비유했는지도요.
모든 걸 태우며 날아가는 불꽃은 그 빛과 열기로 제 안에 갇힌 슬픔을 드러내고,
종교가 없는 제가 진심으로 소원을 빌만큼 강력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집에 가자고 하는 아이들 옆에 손잡은 어른들이 멍하게 흘리는 눈물을 봤습니다.
모두의 마음속 어딘가 꽁꽁 숨겨뒀던 기억과 감정을 불꽃이 활활 타워 버려 그 속이 드러났기 때문일까요?
함께 울어버린 친구와 돌아와 국밥 한 그릇 먹으며 나눈 대화도 저를 먹먹하게 합니다.
그때 우린 뭐가 그렇게 힘들었고, 서로를 위로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