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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정의해 본 적 있나요?

나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가?

by 영무

질문의 답을 찾아보겠다던 네 말이 내게도 사라지지 않는 질문으로 남았다.


오랫동안 맴돌던 생각이

친구와의 긴 대화를 계기로 글이 되었다.


사랑을 정의하고 싶어 하던 20살의 나에게서 시작한다.


모든 감정을 의심하던 시기,

추상적 개념에는

도무지 형태가 없어서 많은 그런 것들을,

그중에서도 특히 사랑을 정의하고 싶었다.


나만의 정의에 넣어

고민을 간단명료한 답으로 산출하는 일,

상처받을 확률을 줄여나갈 수 있으니

정의한다는 건 날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모든 질문에 나만의 답을 찾는 일에 집착하던 나였다.




23살, 몇 개의 문장을 만난 후

사랑을 정의하는 노력을 포기했다.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은 본인의 생각을 관철시키는 일만 할 수 있다. 그건 나의 세계를 넓히고 소통하는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나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을 늘려가는 일일뿐'


본능적으로 필요해서 기억에 남은 건지,

당시 내게 영향력 있던 인물의 말이라 기억에 남은 건지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이 말을 듣는 순간 깨달았다.

정의를 통해 나를 지키겠다는 마음은,

형태 없는 것들에 형태를 부여해 통제하고자 했던 일.


통제는 자유와 성장을 담보로 얻게 되는

안락한 갇힘이었다.


사랑이 정의되는 순간

수많은 사랑을 놓치게 될 것을 깨달은 시기였다.




정의를 대신해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건강한 사랑인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등을 고민한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사랑을 어렴풋이 더듬는 사람으로

사랑에 정의가 없어 여전히 상처받고, 상처 준다.

자주 방황한다.


다만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안다.

사랑의 입체성을 배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지에 대한 답은

내 글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소통하며 함께 서로의 세계를 넓힐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

내가 깨달은 정의하지 않을 이유와 같다.

내 삶에 대한 방향성이 사랑에도 녹아들고 만다.

사랑에서 발생한 고민이 모여 이어진다.


너는 질문의 답을 찾았을까,

몇 년 후 내 답은 달라질까,

그저 그런 것들이 궁금하다.




글쓰기로 다짐한 아침

지하철에서 만난 시가

고개를 끄덕여준 덕에 용기를 낸다.

정끝별 『은는이가』, 우시사

23.11.02


정말 사랑하려 노력했던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땐 제가 최선을 다하면 이뤄낼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어요.

연필 없이 글을 쓰려면 제 피를 내야 했죠.
그런 제게 그 친구는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이 뭔지 모르겠다니!
제겐 이 단순한 문장이 참 잔인한 말이었습니다.

꼭 답을 알아야 할까요?
저는 반문했지만 그 질문의 대답을 알 수 없어 헤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하더군요.

반문했던 질문은 시간을 돌아 제게 날아왔습니다.
사랑이 뭘까?
머릿속에 오랫동안 맴돌았습니다.

어린 제가 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 기억나더군요.
의도한 노력은 아니었지만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시간과 마음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던 일이요.

사랑에 낭비, 효율과 같은 단어를 붙이는 일이 맞을까요?

오랜 시간 사랑에 대해 이리저리 저만의 대답을 찾다 보니 엉뚱한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답을 만들어둔다는 게 저를 가두는 일이라고요.
제가 경험할 수 있는 무한의 영역을 틀로 잘라 가두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 떠올리는 사랑의 실루엣은 다를 것 같습니다.
삶의 모든 순간이 실루엣에 녹여 들어있을 테니까요.

다만 살아가며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니 사랑에서만큼은 효율과 같은 세상의 누름틀을 제거해 봐요.
답을 모르는 질문에 기꺼이 몸을 기대 봐요.

그런 말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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