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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직자가 된 후 첫 번째로 찾아간 곳

나의 글을 적고 싶은 분

by 영무

단풍을 따라 오른 언덕,

오랜만에 앉은 교실은 낯설다


앉아있는 사람들의 구성이 신선하다.

그저 나의 글을 쓰고 싶어 각자의 순간 중 오늘 모였다


한 문장을 적어보라고 하셨다

조용히 사각이는 고민의 소리


멋진 정장을 차려입은 할머니가

조용히 손을 들고 제일 먼저 발표하셨다


경남 석탄공장이 있는 제 고향 마을의 밤은

어디가 바다고, 하늘인지 알 수 없이 어두웠습니다


살면서 처음 보는 사람이 낭독하는 본인의 글


마음이 일렁인다

글쓰기 수업에 오길 잘했어


언덕을 벗어나 그래프의 끝으로 달아났더니

세상이 반짝인다


진실된 이야기가 가득한 공간이 있다

23.11.06.


직장인 시절, 글 쓰는 일은 하루에 해야 하는 일들 중 유일하게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었죠.

나의 진실된 내면의 소리를 손으로, 펜으로, 종이에 적어 실체화시키는 일이란 참 멋지지 않나요?


대학시절 교양으로 들은 글쓰기 수업이 오래 마음에 남아서였을까요,

자연스럽게 제가 퇴사 후 먼저 찾아간 곳은 학교였습니다.


살면서 경험해 본 학교는 늘 비슷한 나이, 성향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이 학교의 학생들은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 외엔 모든 게 달랐습니다.


같은 공간에 앉아 손으로 다 함께 나의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될까요?

수줍게 가장 먼저 손을 든 할머니가 낭독한 글이 제 마음을 둥둥 울렸습니다.


교실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눈물을 훔친 건 그분의 목소리가, 읽어 내려간 글이 할머님의 인생 한 조각 같았기 때문일까요.


벌써 2년 전의 일이네요.

이날 집에 돌아오며 결심했던 반짝이는 마음은 빛을 잃고 게으르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오늘 다시 제 손으로 이 글을 회상하며 마음을 다잡아봅니다.


처음의 마음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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