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죽음'이 불러온 명백한 퇴보
1. 처음 박원순 서울시장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덜컥 마음이 내려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폭력 고소를 당했다는 '지라시'까지 받았는데, 이 모든 것이 '루머'이길 빌었다.
살아있기만을 바랐다. '박원순'이라는 인물의 끝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죄가 있으면 살아서 죗값을 치렀으면 했다. 그는 책임진 것도,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았다.
박 시장의 일생을 살펴볼 때 그의 선택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국의 여성운동 역사에서 그를 빼놓을 수가 없을뿐더러, 권력형 성폭력 문제에서 '피해자'의 곤란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업적 중 하나는 '신 교수 성희롱 사건'의 변호인단으로서 성희롱의 법적 개념을 정립한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낸 것이다. 나아가 2002년엔 '우근민 제주도지사 성추행 사건 민간진상조사위원회'의 위원으로서 당시 우 지사의 '성추행 혐의'를 밝혀냈다. 그의 노력은 여성부가 우 지사의 행위를 '성희롱'으로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천만원의 손해배상을 받게 하는데 기여했다. 특히 진상조사위 결과를 발표하면서는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사건을 조작했다고 보기 힘들다"면서 정치권 일각의 음모론 등을 일축하고 피해자를 보호했다. 우 지사는 새정치국민회의, 즉 여당 소속이었다.
그밖에 한국여성단체연합의 '20% 지방의회 여성참여' 후원회 운영위원, 여성민우회가 추진한 '직장내 성희롱소송'과 '여성우선해고 저지 소송운동' 의 변호인단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의 남북공동검사단의 남한 측 대표이기도 했다.
박 시장이 얼마나 여성운동에 적극적이었는지는 지승호씨와의 인터뷰 대담집 <희망을 보다>에 잘 나타나있다. 그는 신 교수 성희롱 사건 변론으로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관하는 제10회 여성운동상을 받았는데, 그는 "식구한테 상을 주는 법이 어디 있느냐? 이제 식구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냐? 섭섭하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제가 그 수상을 왜 반대했느냐면 내가 여성단체연합이나 여성의 전화, 그런 곳과 온통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여성의전화는 처음부터 관여했고, 여성민우회의 여성평등본부의 공동대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끼리 상 주고 받으면 되겠느냐? 그것도 문제고 내가 남이냐? 서운하다' 이렇게 못 받겠다고 일주일을 버텼다니, 같이 받으라고 해서 성희롱사건 변론단이 받은 겁니다. 저하고 이종걸 변호사하고 최은순 변호사, 이렇게 세 사람이 받았죠." (책< 희망을 보다> 중>
진보진영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단호한 태도를 취했다. '무죄'가 선고된 안희정 전 지사 성폭력 사건 1심에 대해선 "판사가 비판받을 지점이 있다"고 말했으며, 함께 일했던 장원 전 총선연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실(2000년)에 대해서도 "파렴치한 범죄행위, 옹색한 변명"이라고 밝혔다. 특히 우근민 성추행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는 성폭력 사건에 뒤따르는 '음모론'을 일축하는 인물이었다.
"그가 18세의 여대생을 호텔에서 추행했다는 소식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5·18기념식 전야에 광주에서 벌어진 이른바 386정치인들의 추태가 알려진 직후라 그 충격은 더했다. 그것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을 뿐 아니라 파렴치한 범죄행위였다.(...)
오죽하면 ‘음모론’이 머리를 들었을까.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을 부인하고 싶은 속성이 반영되었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 여대생이 부산까지 갔으며 그 야심한 시간에 호텔로 들어갔느냐는 식의 의문도 꼬리를 물었다. 더구나 장원씨 본인은 혐의사실 일부를 부인했다. 단지 술에 취해 팔베개를 했을 뿐이라는 장원씨의 변명은 옹색했다." (박원순, ‘장원 추문’은 짧고 시민운동은 영원하다, <신동아>, 2006.9.28.)
2. 이처럼 수많은 페미니스트들과 박 시장이 함께 만들어간 '새로운 질서' 속에서 곳곳의 성폭력들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많은 걸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성폭력이 왜 일어나는지, 성폭력 피해자는 왜 고발을 하는지,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가해자는 무엇을 해야하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어야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
그래서 그가 '피고소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했으면 했다. 지금까지 성폭력 의혹을 받거나 심지어 처벌 받는 남성들조차 사과 한 마디 제대로 안 했다. 음모론과 2차가해를 조장해왔고, 피해자의 회복은커녕 '역고소' 등으로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여전히 이 사회는 가해자에게 '사과하라, 반성하라'는 요구를 넘어선 말을 하기가 어렵다. 그것마저도 가해자들이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 시장이 자신의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역으로 피해자(고소인)를 보호하거나 그의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너무 꿈같은 일일까? '성폭력 문제 해결'에 있어서, 가해자의 반성과 사과와 처벌을 넘어서는 논의를 우리 사회가 이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에게는 '과오'가 남겠지만, '성폭력' 문제에 대한 논의는 한 단계 진전되었을 터, 당연히 피해자 역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원순'이니까, 박원순은 일생동안 '피해자를 지지하는 편’에 서 있었으니, 무엇보다 그 자신이 위력 성폭력을 '고소·고발'할 수 있는 사회를 원했을 것이니, 그가 자신의 책임을 다 했다면 우리 사회가 '새로운 챕터'를 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박 시장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피해자는 엄청난 2차가해에 시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신상털이에 욕 댓글에 음모론까지. 지금 곳곳에서 일어나는 피해자를 향한 2차가해는 입에 거론하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심각하다. 일부 커뮤니티나 SNS 계정에서는 피해자가 박 시장을 '보냈다'고 하며, 피해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하려고 한다. 명백한 '퇴보'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과 피해자와 연대하는 이들에겐 앞으로의 '고소·고발'을 두려워하고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결과적으로 박 시장은 마지막에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를 부정한 셈이 됐다. 더더욱 그의 '죽음'이 씁쓸한 이유다.
3. 박 시장의 장례를 '서울특별시장(5일장)'으로 치르는데 여성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섰고, 정의당의 두 의원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성폭력 의혹' 자체를 언급하는 것을 불쾌해하며 기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 이 대표는 박 시장 빈소 조문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인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는데 당 차원에서 대응할 계획은 없으신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그건 예의가 아니다"라는 말에 이어 "후레자식 같으니"라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젊은 여성들은 왜 그의 죽음에 대해 온전히 추모하기 어려웠을까? 박 시장과 '한 식구'였던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여성민우회는 왜 그의 5일장을 반대했을까? 앞서도 밝혔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박 시장이 여성의 인권을 위하고, 사회의 수많은 성폭력들과 싸워온 결과다. 즉, 이것이 박 시장이 추구해온 사회의 모습 아닌가?
변호사 박원순, 시장 박원순이 그동안 남긴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이 오히려 '고인을 모욕하지 말라'고 한다. 성폭력을 성폭력이라고 말하고, 피해자를 음모론에 가두지 않고, 피해자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이 '후레자식'들이라면, 차라리 그가 추구했던 세상은 '후레자식들의 세상'에 가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