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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Aug 03. 2020

정말 '예의 없는 것들'은 누구인가?

'예의'를 평가할 수 있는 기득권 남성들의 한심함

최근 트위터에서는 문단 내 남성권력의 만행에 대한 고발이 이뤄지고 있다. 그중 한 여성 작가가 등단을 하자 그의 지도교수가 유명 문인 둘과 평론가 한 명(모두 남성)과 함께하는 술자리를 마련해줬다는 이야기가 특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마 그 지도교수가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트윗에 따르면, 지도교수는 나중에 작가를 따로 불러 함께 술을 마신 유명 문인과 평론가 등이 작가를 안 좋게 봤다('되바라졌다')고 전했다. 작가는 실제로 술자리 이후에 한 대학에서 평판이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나는 이 이야기를 보면서 요즘 흔히 말하는 '인성'이나 '예의'라는 게 대체 누구의 기준에서 평가되고 있는 건지를 생각하게 됐다. 젊은 여성이 '남자 선생님'들에게 할 수 있는 '예의없는' 행동의 종류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니까 그 반대의 경우보다 '경우의 수'가 너무나 적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의없다'고 느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법도 너무나 다르다. 한 쪽은 99% 가만히 있어야 하지만, 다른 한 쪽은 수백가지의 대응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시인 류근씨는 박원순 시장의 장례에 조문가지 않겠다고 밝힌 류호정 정의당 의원을 두고 "구상유취: 입에서 젖내가 남. 당신들 100만명의 정의감과 도덕성보다 나는 박원순의 단 하루가 더 아쉽고 아깝고 안타깝다 (...) 어른까지는 아니어도 인간도 안 된 것들이 정치는 무슨"이라고 표현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유독 류 의원에겐  '싸가지'가 없다는 말이 쏟아졌다. 


50대의 '자칭 진보적인 남성'들은 박원순 전 시장을 '성폭력 혐의를 받는 피고소인' 정도로 이야기하는 젊은 여성들을 '싸가지 없다’고 말할 것이고, 이는 꽤나 큰 힘을 발휘한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현안보고서에도 "20대 여성이 페미니즘 등 '집단이기주의 감성'으로 무장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나. 


그런데 대체 누구 기준에서의 싸가지이며 누구 기준에서의 이기주의일까? 반대로 보면 50대 진보 남성들 중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성폭력 피해자에 연대하려는 이들에 대한 예의가 눈꼽만치도 없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더불어 굳이 화를 내거나 고함을 칠 필요가 없는 속 편한 이들을 생각한다. '안희정 조문 논란'이나, 이번 '박원순 성추행 의혹'에서나 피해자를 지지하는 이들은 속 편하게 애도를 하거나 애도를 용인할 수 없었다. '이건 아니다'라면서 가열차게 비판을 해야했다. 그렇기 때문에 졸지에 주류사회가 규정한 '사람의 도리'나 '고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이들이 되고야 말았다. 심지어 피해자 측 기자회견조차 발인 당일날 굳이 해야하냐는 볼멘소리를 들어야했다. 


누군가에 대해 공공연하게 '예의없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특권이다 (권력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이들은 생각은 해도, 말로 전부 내뱉지 못한다). 그렇다면 특권을 가진 이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대체 타인에게 어떤 수준의 예의와  (나 혹은 우리를 향한) 대우를 기대했었는지 말이다.


학생이 '학생답지 않다고', 신입이 '신입답지 않다고', 여성이 '여성답지 않다고', 사회나 조직이 한 개인 또는 무리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이행하지 못한 것을  '예의'나 '인성'이나 '싸가지'라는 말로 축약하는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나아가 그 사회와 조직이 얼마나 남성중심적이고, 기존의 '정상성' 인식에 기대고 있는지까지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제발 인간이 평등하다는 생각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개인의 고유성은 대체할 수 없지만, 사회에서 한 개인의 역할은 언제나 대체될 수 있다. 힘을 지닌 이들이 누군가를 '100조와도 못 바꿀', '100만명의 정의감보다 더 아까운'으로 치켜세울 경우의 문제는, 그 ‘위대함’을 거부하는 이들이 저절로 ‘싸가지 없다’고 낙인이 찍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점이다


한 인간의 가치는 결코 다른 한 인간의 가치를 넘어설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내가 혹은 내 주변의 누군가가 '더 낫거나' '우월한' 존재라고 생각될 때, 쉽게 상대방에게 '예의없다'고 따질 수 있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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