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혜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주변이나 인터넷 상의 호평이 자자해서 산 베스트셀러에 실망한 경험이 누구든 한 번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가서 "별로였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나는 좋았는데"라거나 "취향을 존중해 주시죠"라는 반박이 돌아오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책은 생각보다 솔직한 평가가 이뤄지기 어려운 영역 중 하나다. 문학 비평은 대체로 '한국 문학'에 한해서 이뤄지므로, 시중에 쏟아지는 수많은 책들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네이버 포털에서 누구나 댓글을 달면서 평가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연간 성인 독서량 평균 7.5권, 사람들은 자신이 시간들여 겨우 시간내서 읽은 책을 쉽게 '쓰레기'라고 말하지 않는다. 수많은 책 중에 '살아남는' 책들은 그래서 대부분 호평을 받는다.
한승혜 작가의 책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의 가장 큰 장점은 '좋지 않은 책'들이 왜 좋지 않은지 성실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저자가 언급한 베스트셀러들의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인용할 수 있는 거의 최초의 레퍼런스를 얻은 셈이다.
평소 '저 책이 왜 팔리지'라며 불만을 가졌음에도, 주변 눈치를 보며 말 못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이 책의 구석구석에 공감을 할 것이며, 한편으로는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모든 책은 가치가 있어'따위의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거부하고, 나쁘거나' '수준이 떨어지는' 책을 규정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자기계발서'만을 즐겨 읽는 주변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나 힐링 서적등을 쳐다 보지도 않는 사람이지만, 지인들은 "소설을 왜 읽냐"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내게는 서로의 간극을 좁혀나갈 역량이 부족했다. '베스트셀러'의 세계는 그저 너무나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이 책에 등장하는 한 중년 남성의 예처럼 "요즘 젊은이들이 형편없는 책만 본다면서 베스트셀러 같은 것은 보지 말고 고전 명작좀 읽으라"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지적이라고도 보지 않는다. 나는 90~2000년대에 아이돌 댄스음악을 비난했던 음악 평론가들의 글에서 느껴졌던 오만과 아집을 기억한다. 그래서 이왕이면 나도 '잘 팔리는 책'들을 전부 읽어보고 어떤 점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었는지부터 먼저 알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이었다. 당장 읽어야 될 책이 많은데, 마음에도 안 드는 책들을 읽어나갈 여유가 없었다. 그런데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는 그 책들을 일일이 다 읽은 뒤, 인기요인을 추적하고 블로그 리뷰등에서는 볼 수 없었던 구체적인 비판까지 하고 있다. 대신 읽어줬다는 생각이 들어 고마웠다. 책을 읽다보면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짐작 가능하다. 덮어놓고 "왜 저런 책이 많이 팔리냐"면서 분통을 터트릴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같은 경우는 구성부터가 남다르다. 청년의 문제제기나 의문을 한 철학자가 심리학자 아들러의 이론을 인용하면서 반박하고 설득해 나가는 것을 그리고 있는데, 중심 내용은 "의지를 가지면 된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근본'도 있고, 형식 자체도 흡입력이 있다면 잘 팔릴수밖에 없는 책은 맞다. 하지만 한승혜 작가는 이 책의 한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와 같은 이야기가 막연한 희망과 헛된 용기로 그치지 않으려면 세계와 구조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41p)
윤홍균의 <자존감 수업>에 대한 비평에서도 이와 같은 지적이 반복된다.
"자기계발의 세계관에서는 자존감 부족 또한 개인의 잘못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도 개인의 책임이고, 높은 자존감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도 개인의 몫이다. 애초에 우리의 자존감을 낮아지게 만든 세계와 구조적 환경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다."(58p)
자기계발이나 힐링 서적은 개인을 위로하거나 힘을 북돋아주는 데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서적들이 '구조'의 문제를 완전히 외면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는다. 결국 이런 책은 현실의 부당함과 불의를 해결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일시적인 위안을 주고, 개인에게 동기부여의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부담없이 읽을만한' 책인 것도 맞다.
많은 사람들은 흔히 책이 자신에게 어떤 '효용'이 있기를 바라고 읽는다. 유튜브나 넷플릭스에서는 그런걸 딱히 바라지 않으면서도, 유독 책은 읽고 난 뒤에 일종의 '깨달음'이나 삶 속에서의 '팁'을 얻기를 바란다. 그런데 자기계발서나 힐링 서적은 직접적으로 깨달음을 넘어서서 '나'를 더 좋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하지만 나는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를 보면서, 베스트셀러 저자들의 '방법'이 단순히 자신을 잘 가꾸라고 하는 게 아니라 '부당한 세상에 억지로 맞춰나가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관통하는 페미니즘 관점이 더욱 빛났다. 기존에는 자연스럽게 여겨지던 관습이나 세계관 등이 과연 지금 시점에서도 '올바른 것'인지 되묻고 있다.
"저자는 예능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패널들의 '애교를 부려보라'는 요구에 당황하여 눈물을 보인 카라의 예시를 들며, 이해는 가지만 좀 더 프로페셔널하고, 울지 않고 노련하게 대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눈물을 흘린 카라보다는 애초에 걸그룹에게 애교를 맡겨놓은 것처럼 행세하는 남성 연예인들이 문제 아닌가 싶다(119~120pp)"
"이보세요, 기시미 이치로 양반,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세요. 댁이 혼자서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식구들이 누워서 TV만 보고 있다고 생각해보란 말입니다. 아, 나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어서 행복하다, 이런 생각이 과연 들겠습니까?란 말이 절로 나온다. 그야말로 전국의 주부들이 들고일어날만한 주장이다.( 40p)
전자는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에서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을 밝힌 것이며, 후자는 <미움받을 용기>에서 저자가 "그릇을 치우면서 '나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보라"고 말한 부분에 대한 반박이다. 현명한 대처로 여겨졌던 '타협적인' 행동들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저자는 베스트셀러 소설에 들어있는 남성 판타지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오베라는 남자>의 주인공 오베는 "내가 아무리 까칠하고 무례하고 버릇없이 굴더라도 나를 보듬어주는 상냥하고 다정한 여성이 있었으면"이라는 중년 남성의 속마음을 그대로 대변한 캐릭터이고, 소설 역시 '가부장제 안에서 외로운 가장을 구원해주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또한 <봉제인형 살인사건>은 주인공 울프에게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전부 빠져들고, 섹스어필을 하는 '남성판타지'가 전면에 드러난다고 분석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 대해 비평하면서는, 여성을 도구화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남성주인공을 그리는 하루키의 '여성관'을 강하게 비판했다. 베르베르 베르베르의 '고양이'에 대해서는 "고양이마저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작가의 욕구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들은 하나의 책을 더 이상 기존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과도한 남성판타지, 여성혐오적 시선에서 나온 말이나 서사가 담긴 책은 그저 '불편한 부분'이 아니라 명확하게 비평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기존의 베스트셀러를 '제대로' 비판한다고 해서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가 무거운 책은 아니다. 오히려 신랄한 비판을 통해 웃음짓게 만든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김진명 <직지>의 인기 비결에 대해서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SNS에 등지에서 낯선 여성의 사진 밑에 아무런 맥락 없이 꽃 사진을 붙이며 '아름다우세요' 같은 댓글을 달거나 한밤중에 메시지를 보내 도대체가 의도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말을 하는 남성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 이들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애국심이 투철하며, 종종 맥락에 어긋나는 대화를 하며, 그런 와중에 음담패설은 또 아주 좋아한다는 것을 꼽을 수 있는데, 이 소설을 읽고 보니 어쩐지 그 모든 맥락이 한 지점으로 모여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279p)
그밖에도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은 전통시장 등에서 파는 '(가짜)'만병통치약',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는 '출판계 시장을 교란하는 '황소개구리', <모든 순간이 너였다>에 대해선 "읽다가 몸서리를 치며 덮었다"고 표현하는데서 약간의 통쾌함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평소 큰 관심이 없던 책들을 비평하는 책임에도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여성주의적 관점과 더불어 '신랄하고 적확한' 유머가 담긴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를 무조건 깎아내리거나, 그것을 읽는 독자들을 공격하는 글이 아니다. 적어도 베스트셀러에 대한 무분별한 '찬양'혹은 '비난' 아니라 베스트셀러에 대해서도 '정확하고' '구체적인' 평가가 이뤄져야만, 더 많은 독자들이 자신만의 '독서 감각'을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책을 맥주에 비유했다. 다양한 맥주를 마셔봐야 좋은 맥주를 판단할 수 있는것처럼, 다양한 책 선택지가 제시되는 상황 이 만들어져야 사람들이 '좋은 책'을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베스트셀러와 고전이 아닌, 그 사이에 있는 책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더 많이 언급되어야 하고, 대중들의 비평도 자유롭게 오가야 한다. <제가 한번 읽어보겠습니다>가 '좋은 책'이 무엇인지, '만족스러운 독서'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확장시키는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