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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Aug 31. 2020

당신의 '좋아요'는 성폭력 피해자에겐 칼이 된다

'일본 미투'의 상징 이토 시오리의 소송


1. 자신을 성폭행한 언론사 간부를 공개적으로 고발해 '일본 미투 운동'의 상징이 된 이토 시오리씨가, 얼마 전 2차가해성 트윗에 '좋아요'를 누른 현직 자민당 소속 중의원인 스기타 미오씨에게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지난 6월에도 극우 성향의 만화가 하스키 토시코 등 3명의 'SNS상의 2차가해'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지만, '좋아요'에 대해서 소송을 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의 <변호사닷컴 뉴스>, <허프 포스트 일본판> 등에 따르면 스기타씨는 이토씨의 성폭력 고발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BBC의 'Japan's Secret Shame'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그는 분명히 여자로서 잘못이 있다" "거짓 주장을 했다"등의 발언을 했다. 심지어 스기타씨는 방송이 나간 직후인 2018년 6월 29일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아래와 같이 적었다.


"만약 제가 일자리를 원한다는 목적으로 처자식 있는 남자와 둘이 식사하러 갔다가 술을 많이 마시고 의식을 잃고 간호해준 남자의 침대에 반나체로 기어들어갈 짓을 하는 여자의 어머니였다면 혼내줄 거예요.그런 여자로 키운 기억은 없다. 부끄럽다. 한심하다. 더 자신을 소중히 여기라고."


지금은 삭제된 이 트윗에는 "허니트랩에 걸렸다", "베개 영업의 실패", "피해망상" 등의 답변 트윗이 달렸고, 스기타씨는 이러한 트윗 다섯개에 좋아요(마음)을 눌렀다.


또한 그해 7월에는 스기타씨가 자신의 블로그글을 트위터에 공유하면서 논쟁이 일어났는데, 그때 몇몇 유저들이 스기타씨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시오리씨의 행동이 부른 결과" "(이토씨는) 비겁자"등의 2차가해성 내용으로 답글을 달았고, 스기타씨는 그중 여덟개의 트윗에도 좋아요를 눌렀다. 이밖에도 스기타씨 글의 내용을 비판한 한 유저를 향한 욕설이 담긴 공격 트윗 12개에도 좋아요를 눌러서 힘을 실어줬다.


이토씨 측은 "'좋아요'는 타인의 트윗에 대한 호의적인 기분을 타나내기 위해 이용되는 것"이라며 "국회의원으로 11만명의 팔로워를 갖고, 언론에 영향력을 가지는 스기타씨가 이토씨를 비방하는 코멘트에 반복해서 '좋아요'를 누른 것은 '사회통념상 한도를 넘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한 "블로그의 내용을 비판하는 유저를 공격하는 트윗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칭찬하고 있는 것처럼 비친다'고 주장했다.


좋아요를 누른 것이 명예훼손에 해당되느냐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판례가 없다. SNS '믹시'에서 명예훼손성 글에 좋아요를 누른 것에 대해서는 일본 도쿄 지방법원이 ‘불법행위 책임이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그런데 스기타씨의 경우 현직 국회의원이라는 점, 그리고 트위터 ‘좋아요’의 경우 ‘ㅇㅇ님이 마음에 들어 함’이라는 식으로 일부 타임라인에 노출되기도 하며, ‘마음에 들어요’ 메뉴에 저장된다는 점에서 상황이 다르다.


일본의 평론가 오기우에 치키 팀은 연구를 통해 이토 시오리씨에 관한 글 70만개를 수집했고, 그중 무려 3만개 가량이 명예훼손 대상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한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6월 만화가 하스키 토스코씨 등에게 소송을 제기한 이토 시오리씨는,  <비지니스 인사이더 일본판>과의 인터뷰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공유하거나 좋아요를 하는 것도 비방에 가담한 것이 된다.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2. 한국의 경우 트위터상의 리트윗(공유)는 형사상으로도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있다. 그러나 '좋아요'는 전파의 목적이 없었으므로 무죄를 받거나 기소조차 안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민사상으로는 '불법행위'에 해당되어 손해배상 책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영향력 있는 공인이고, 이차가해 발언에 적극적으로 좋아요를 눌렀던 스기타씨와 비슷하거나 더 심한 경우라면 '좋아요'도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과 '박원순 성추행 의혹'이 한창 SNS상에서 이야기될 당시 충격을 받은 것 중 하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2차가해 글에 좋아요를 누른다는 점이었다. 너무나 명백하게 피해자를 의심하거나 음모론을 펼치는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페친 혹은 유명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좋아요'를 너무 우습게 생각한다고 느꼈다.


2차가해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페이스북 친구들의 다수는 직접 공유는 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그러한 글을 지지할 의사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꾸준히 2차가해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역시나' 싶은 사람도 있었지만, 의외라고 느껴지는 이들도 있었다. 혹자는 "좋아요'가 항상 지지하는 의미는 아니라고, 단순히 '봤다'는 의미로도 누른다"고 말하지만, 나는 '봤다'고 해서 좋아요를 누르지는 말아주시길 당부하고 싶다. 피해자를 공격하거나 의심하는 글에 대해선 특히.


좋아요 숫자는 페이스북 등 SNS에선 '힘'이다. 이 글이 얼마만큼 지지를 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좋아요가 많으면 많을수록 글쓴이는 자신에게 동조하는 이들이 많다는 확신을 갖고, 그의 동조자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한다. 결과적으로 2차가해에 대한 (페이스북의 '화나요'나 '웃겨요' 등이 아니라면) 좋아요는 2차가해를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꼴이 된다는 이야기다. 관성처럼, 혹은 내가 평소 좋아하는 필자라고 해서 대충 읽어보고 좋아요를 누르면 안 되는 이유다.


나아가 자신이 공인이거나 혹은 어느 집단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 이라면 좋아요에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들의 좋아요는 좀 더 파워가 있을뿐더러, 주변 사람에게 눈치를 보게 만든다. 이를테면 어떤 교수가 허구한날 2차가해글에 좋아요를 누른다면, 그가 재직하는 학과에서 성폭력 문제에 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질 수 있을까? 단체장이 2차가해에 동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조직 내 성폭력을 고발할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나의 경우 기사를 쓰고 종종 억울하게 비난받았던 때가 있다. 그런데 그 비난글이 별 반응이 얻지 못하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가는데, 한번은 나에 대한 비난 글에 리트윗이 엄청 많아서 그야말로 '멘붕'에 빠진적이 있었다. 그리고 글쓴이보다는 오히려 그 글에 리트윗으로 사실상 동의를 표시한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대체 왜 그랬냐고', '기사 제대로 읽어보긴 했냐고'.


하물며 2차가해 글을 수백 수천개 접해야 하는 피해자의 억울함과 분통을 나는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클릭 한 번일수 있다. 하지만 그게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수백 수천개의 좋아요는, 동시에 피해자가 느끼는 절망감의 크기가 된다.


일본 야후에서 검색한 이토씨 관련 기사에는, '좋아요'마저 마음대로 못 누르나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라"는 내용의 댓글들이 달려 있었다. 마치 포털 다음에서 '2차가해' 문제를 다룬 기사에 대한 댓글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군가의 명예를 짓밟는데 힘을 실어주는 '좋아요'라는 표현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무제한으로 허용될리 없지 않나. 이토씨의 소송은 '좋아요'가 더 이상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소극적인 표현으로 여겨질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시 한번 "공유하거나 좋아요를 하는 것도 비방에 가담한 것이 된다"는 이토 시오리씨의 말을 마음 속에 새겨야 할 때다. 당신의 좋아요는 피해자에겐 '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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