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의 죽음, 여성들은 남의 일 같이 느끼지 않았다
MBC 다큐멘터리 <설리가 왜 불편하셨나요?>를 봤다. 여러모로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방송을 보고나니 설리의 악플을 유도했던 언론사들이 방송 내용을 정리해서 올리고 있었다. 죽어서까지 저러는구나. 무슨 염치로. 포털과 언론사의 공조가 그를 죽였다. 그가 죽고나서야 네이버와 다음은 연예 댓글을 없앴다.
최근 코로나 국면에서 여성 자살률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 정확한 수치를 확인해봐야겠지만 국민일보 기사에서 인용한 김현수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올해 서울시 20대 자살자수가 2배 정도 늘었다. 여성 자살시도자 수는 지난 5월까지 1000명에 육박한다. 특히 20대 여성 자살시도자 수는 압도적으로 많다. 다른 세대에 비해 4~5배 이상 많다”
그런데 코로나 이전 여성 자살률이 증가하기 시작했던 시기가 2019년 10월이었다. 설리의 죽음에 의한 베르테르 효과로 추정된다. 9월 여성 자살사망자수가 268명이었는데, 10월엔 407명까지 증가한다. 반면 남성 자살사망자수는 9월과 10월이 758명으로 동일했다. 여성 자살사망자수는 한동안 예전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11월에는 356명, 12월에는 341명의 여성이 자살로 사망했다. 사망자수가 이렇게 급격하게 증가했다면, 자살 시도를 한 사람의 수는 얼마나 많았을지...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렵다.
여성들에게 주로 설리의 죽음에 대한 베르테르 효과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해주겠나. 여성들이 그의 괴로움에서, 그의 아픔에서 자기자신을 봤다는 뜻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누구랑 사귀는가부터, 어떤 옷을 입느냐까지 눈치를 보며 사회적 압박에 시달리는 삶. 상시적으로 여성혐오가 존재한다는 걸 느껴야 되는 삶.
설리는 20대 여성 아이돌이라는 위치에서 자신에게 가해지는 부당함에 맞서 싸워왔다. 그가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는 걸 보고 여성들이 대체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나를 포함한 남성들은 아마 정확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설리를 애도한다면, 그의 친구였고, 그에게서 힘을 얻고, 그와 동질감을 공유하던 젊은 여성들의 사회경제적 현실에 대해서도 충분히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한 대학의 법학과 교수가 엊그제 2030 여성의 자살 증가가 페미니즘 때문이라고 말해서 논란이 됐다. 그는 단 한번이라도 자신의 제자들에게 공감해보려고 한 적이 있을까? 왜 여성들이 설리에게 동질감을 느낀 것인지, 왜 코로나19 국면에서 젊은 여성들의 자살률이 늘어나는지에 대해서 그는 전혀 모르고 있다.
그 대학교수가 말했던 '페미니즘으로 인해 득세하는' 정치적 발언권 있는 여성들이란 누구일까. 그와 그의 친구들은 '공부 잘하고 자기주장 확실한, 남자들을 능가하는 알파걸'을 상정해놓고, 그들이 차별과 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여성과 대립항에 있다고 착각한다. 이렇게 단편적이고 평면적으로 여성의 삶을 '박제'하고, 씹고 뜯는 행동이 여성들의 '생존'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