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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May 06. 2021

'억울한 남자들'은 승리의 경험을 먹고 커나간다

백래시에는 교묘한 전략이 숨어있다

이쯤되면 정말 백래시가 '탄력 받았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 안티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억울한 남자들'은 몇몇 승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힘에 대한 확신을 얻었고, 이는 마구잡이식 집단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남초 커뮤니티 기반의 '억울한 남자들'은 지난 3월 '허버허버'와 '오조오억'을 '남혐' 단어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는 사실 남성을 공격하는 단어로 사용되지도 않는, '재미있는' 신조어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허버허버'는 최초의 사용례가 남자친구의 먹는 모습을 비하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이유로, '오조오억'은 남성을 비하하는 여초커뮤니티에서 많이 사용한다는 이유로 '혐오 단어'가 된다. 인권위는 혐오표현을 “어떤 개인·집단에 대하여 그들이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속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그들을 차별·혐오하거나 차별·적의·폭력을 선동하는 표현”이라고 규정한다. '오조오억'과 '허버허버'가 어딜 봐서 그런 류의 표현인가?


하지만 그들은 '오조오억'과 '허버허버'라는 말을 영상에 썼던 유튜버들로부터 하나하나 사과를 받아내고, 결정적으로 카카오가 '허버허버'가 사용된 이모티콘 판매를 중지하겠다고 밝히면서 승리의 경험을 얻게 된다. 여초커뮤니티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라는 이유만으로 공적인 사용을 막아버리는 효과를 낸 것이다. (이는 처음에는 단순히 BJ의 인삿말이었지만, 이를 따라하던 남성들이 혐오의 의미를 담아 사용했던 '보이루'와도 맥락이 다르다)

'억울한 남자들'은 '김자연 성우 메갈리아 티셔츠 인증' 사건부터 꾸준히 '페미 묻은 게임은 하지 않겠다'는 방식의 소비자운동(?)을 벌여왔다. 게임업계의 직원들, 게임에 돈을 쓰는 소위 '큰 손'의 다수가 남성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김자연 성우의 해고(계약해지)에 반발하며 그를 지지하는 메시지를 쓴 게임업계 여성들은 사실상 '블랙리스트'에 포함되어 일자리를 잃었다. 또한 SNS에서 페미니즘 관련 글을 쓰거나 공유하는 여성이 만들거나 참여한 게임은, 유저들로부터 불매 대상이 되기 일쑤였다. 게임 업계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압박하는 이러한 방식을 '남초 커뮤니티'의 영향권 밖이었던 카카오나 대형 유튜버에도 적용해서 성과를 거둔 셈이니, 얼마나 기세등등했겠는가.


그 다음 그들의 '승리 경험'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이들을 승리자로 만들어준 사건이었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오세훈 후보의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72.5%로 나타났고, 언론은 20대 남성을 '오세훈 당선의 1등 공신'처럼 치켜세웠다. 게다가 20대 남성의 민주당 지지율 이탈 원인이 '젠더 갈등'이나 정부의 '친 페미니즘 기조'로 꼽혔고, 더불어 오세훈 캠프 뉴미디어본부장이었던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억울한 남자들의 반란'이라는 가설을 적극적으로 퍼트렸다. 이에 민주당이 군 가산점 부활을 내세우는등 부화뇌동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면서 그들의 '승리감'을 더해주었다.


물론 여러 통계를 볼 때 20대 남성은 정부의 '부정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동층이다. 실제 21대 총선의 정당지지율과 비교해서, 민주당 지지율은 20대 남성은 25.5%, 20대 여성은 19.6% 동반 하락했다. 오히려 여권의 '충성 지지층'이었던 20대 여성의 지지율 이탈이 더 특이한 현상으로 봐야했지만, 정치권과 언론의 모든 관심은 20대 남성의 지지율 이탈과 그 원인중 하나가 '페미니즘’ 때문이라는 근거없는 가설에 집중됐다.


자신감을 얻은 '억울한 남자들'은 거침이 없었다. 박나래씨가 인형의 팔을 늘려 성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성희롱을 했다며 고발당했고, 페미니스트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방송인 재재씨가 광고모델이 되었다는 이유로 맥도날드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포스터 논란을 빚은 GS25 불매운동에 이어 마구잡이로 메갈리아 로고와 비슷한 '집게 손' 포스터의 색출 작업을 시작했다. 여차하면 '너희도 당한다'라는 힘의 과시였다. 이러한 움직임에 무려 경찰청이 '집게 손' 모양이 담긴 포스터를 수정하고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라는 말까지 남겼다. 국가가 나서서 '어거지'가 통한다는 것을 증명해준 셈이다.


‘집게 손’ 광고를 색출해내는 황당한 흐름속에선 메갈리아가 수 년 전에 사라져서 소속감이 없는 사이트라는 점, 더불어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이 심각한 상황에서 여성이 일베처럼 굳이 메갈리아의 상징을 (심지어 자신의 커리어를 걸고) 숨겨놓는 포스터를 만들 가능성은 매우 적다는 점, 메갈리아의 일베의 질적인 차이 등은 논의에서 벗어나 있다. 


이들의 공격 방식은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페미니즘=메갈=일베'라는 전제 하에 진행된다. 동시에 '정치적 올바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전략을 베낀다(혹은 미러링한다). 일베를 찾아내고, 일베에 대한 불매하는 방식을 페미니즘에 동일하게 적용하며, 인권 운동과 어성 운동을 하는 이들이 어떤 현상이 왜 불편한지, 어떤 단어가 왜 혐오표현인지에 대해 의제화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다. 동시에 "왜 저들은 되는데, 우리는 안 돼냐", "너희만 불편할 줄 알았냐, 우리도 불편하다"라고 항변하며 명분을 만든다.


'억울한 남자들'은 스스로를 남성차별의 피해자로 여기는 착시현상을 겪고 있고, 이것은 그들이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는 여성들의 방식을 거리낌없이 도용할 수 있었던 이유다. 문제는 그것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보다, '요즘엔 남자애들이 기가 죽어서', '남자애들이 취업을 못해서'같이 터무니없이 그들을 이해하려는 공적인 목소리가 2019년 '20대 남성' 논란 이후 더 늘어난 것이다. '사회적 인정'을 바탕으로 그들은 페미니즘을 남성의 몫을 위협하고 남성차별을 만드는 '반사회적 사상'으로 간주하고, 페미니스트를 남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메갈'로 지칭했다. 


문제는 그들은 '메갈 사냥' 속에서 페미니즘의 의미와 가치가 완전히 왜곡되어 여론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을 '배격해야 할 것', '부담스러운 것', '얽히고 싶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면서, 페미니즘의 힘을 악화시키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언론과 공생하는 법도 일찌감치 깨달았다. 언론 매체들은 2016년 이후 페미니즘의 확산과 그로 인한 백래시가 꽤나 조회수가 높은, 대중들에게 흥미로운 주제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젠더 이슈에 대한 남초커뮤니티의 반응에 대해 눈팅해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많고, 유저들은 이들에게 '떡밥'을 던져준다. 


특히 특정 집단이나 기업에 대한 '총공', 불매운동, 청와대 청원 등은 좋은 기삿거리가 된다.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의 '기분 나쁨'에서 비롯된 행동이 금세 언론에 의해서 의미를 부여받으면, 그들 스스로 운동하는 자로서의 ‘정체성'과 '동기'를 갖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여초 커뮤니티의 성폭력·성차별 공론화 과정과 유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상이하다. 전자가 제 아무리 '극단화' 논란이 있더라도 '성폭력 근절'과 같은 대의를 지니고 사회를 진보시키는 반면, 남초 커뮤니티의 그것은 사이버 불링에 더 가깝다. 


일베의 세력이 약화된 뒤 대체재로 자리잡은 에펨코리아의 익명 게시판에는 한 남성이 여자친구를 상대로 '집단 성폭행' 한 것을 자랑하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고, 다른 남성들도 글쓴이에게 "소개해달라"거나 그의 말에 호기심을 드러낸 정황이 드러났다. 실체도 없는 '메갈'의 흔적을 찾아내는 게 중요한가? 아니면 어디선가 또다시 벌어지고 있는 성착취를 잡아내는 게 중요한가? 


여전히 여성을 향한 수많은 폭력과 차별이 실재하는만큼 한국 사회에서는 더 많은 페미니즘이, 더 많은 페미니스트가 필요하다. 결코 ‘과도한 페미니즘’ 같은 말이 나올 때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정작 현실에선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모든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려는, 가부장제의 지배구조인 ‘여성혐오'와 구조적으로 성립이 불가능한 ‘남성혐오’라는 말이 동일 선상에서 취급되는 백래시가 힘을 얻고 있다. 백래시를 부추기거나, 또 쉽게 굴복하면서 '억울한 남자들'에게 계속 승리의 경험을 제공하는 집단이나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줘야 할, 그럼으로써 공적 권위와 사회적 상식이 지향하는 바를  일관되게 일러줘야할 정부, 국회, 언론도 백래시를 방관하거나 동조하고 있다. 내심 변화가 불편한 것일까, 아니면 ‘거대하고 거창한 남성 권력’으로의 복권이라도 꿈꾸고 있는 것일까? 백래시의 공범이 될 것인지, 아니면 같이 앞으로 나아갈지 신중히 선택하길 바란다. 이미 우리는 되돌릴 수 없는 시대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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