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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May 17. 2021

오늘은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5주기입니다

추모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남성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5주기다.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페미니스트 모먼트로 꼽는다. 지금껏 '묻지마 살인', '운이 없어서 죽은' 일들로 치부되었던 것이 '여성혐오'에 의한 살인이고, '여자라서 죽은 것'이라는 진실이 드디어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 사건이었다. 지금껏 우리 사회는 주로 "남성이 여성을 죽인다는 사실"을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왔다. 남성이 여성을 잔인하게 죽인 일은 어지간해선 언론에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대서특필'이 되었다. '특이한' 일이었으니까.


남성들은 왜 '살인', '폭력', '성범죄'를 자신과는 전혀 무관한 일처럼 여길까. 그래야만 자신들이 쌓은 공고한 가부장의 세계가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2019년에 일어난 강간 사건만 6092건이었다. 여기서 강간(유사강간 포함) 범죄자의 98.3%가 남성이고, 피해자의 97.4%가 여성이다. 이중 남성 가해자의 37.2%가 19~30세였고, 여성 피해자의 32.5%는 21~30세였다. 20대 여성은 젠더폭력에 의해 삶의 존엄과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데, '이대남 타령'이 나오고 있다니... 기가 차는 현실이다.


강제추행도 비슷하다.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96.3%,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는 89.4%였다. 1년에 17120건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 역시 21~30세 여성이 1년에 6411건(37.4%)의 피해를 입고 있다. 


살인,강도,방화,성폭력등 강력범죄의 95.4%는 남성이 저지른다. 덧붙여서 2019년 검거된 살인 362건 중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는 265건(73%), 여성이 가해자인 경우는 82건(27%)이다. 여기서 영아살해, 촉탁살인 등을 빼고 일반 살인죄는 206건(81%) 대 48건(19%)이다. 그러나 피해자 성별 통계에 따르면 2019년에 일어난 297건의 살인 사건중 피해자가 남성인 경우는 138건(45%), 여성인 경우는 154건(52%)였다. 가해자는 압도적으로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이 더 많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남성이 여성을 죽인 교제살인 건수만 최소 108건이었다. 반면 여성이 남성을 죽은 교제살인 건수는 2건이었다.


<누가 여성을 죽이는가>에 실린 추지현 교수의 글 '페미 사이드, 여자라서 죽은 이들에 관하여'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도 여성 살인 피해자 비율이 유난히 높은 국가 중 하나다.


"한국은 살인 피해자 중 여성 비율이 높기로도 세계 1위를 넘보고 있다. 한국은 살인 피해자의 52.5%가 여성이었고, 이 비율은 일본·홍콩의 52.9% 다음이며, 통계 자료를 내놓은 193개국 평균인 21%를 훨씬 상회한다. " (2013년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가 펴낸 글로벌 스터디 온 호미사이드 인용)

화장실에서 남성 다섯 명을 보내고 여성 한 명을 죽인 사건, 범행 동기가 "여자들이 평소에 나를 무시해서"라는 사건이 남초 커뮤니티의 주장처럼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면 무엇이 여성혐오 범죄일까. 왁싱샵 살인사건은, 여성들만 줄곧 괴롭혔던 조현병 환자 안인득의 아파트 방화 살인 사건은, 김태현 스토킹 살인 사건 (노원구 세 모녀 살인)은, 그저 피해자에겐 ‘운 나빠서 일어난' 일인걸까.


평범한 남성들은 이 수많은 여성혐오 범죄에도 고민하지 않는다.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은, 나와 상관없는 일 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흔하게 일어나는 성폭력, 성희롱과도 자신은 무관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강력범죄 가해자의 압도적 다수가 남성이라면, 한국 사회에서 주류적 남성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남성됨’이 어떤 형태였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혐오 범죄와 남성 개개인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현재의 남성지배사회가 여성을 약자로, 괴롭힐 수 있는 대상으로, 원하는대로 강요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해왔으며, 평범한 남성들도 이러한 문화에 기여하고 묵인하고 방조했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성적대상화, 성매매, 불법촬영 등 여성혐오적 남성문화의 구조를 유지하고 동시에 즐기면서, 여성혐오 범죄의 발생을 자연스럽게 승인했던 셈이다. 


여성들만 추모하고, 여성들만 목소리 내는 날이 되지 않기를 기원한다. 남성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으면 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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