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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May 18. 2021

거만한 남성들의 세계가 무너질 때, 우리는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


*이 글은 최근 제가 낸 책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의 서문입니다. 혹시 구매하시고자 하는 분들에게, 어떤 책인지 안내하고자 올립니다.


언제서부터인가 한쪽에서는 “남자가 무슨 페미니즘 이냐”라는 비난을 들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남자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라며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조롱이나 비웃음은 무시할 수 있었지만, 칭찬은 오히려 많은 고민을 남겼다. 나는 그저 내 신념과 생각을 글로써 드러낸 것일 뿐인데, 어째서 ‘기특하고’ ‘좋은’ 남자가 되어버리는 것인가.


내게 붙는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양가감정을불러일으킨다. 앞에 붙은 ‘남성’을 떼어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사회에선 꾸준히 페미니즘을 말하는 남성이 나름대로 ‘쓰임’이 있다는 것도 안다. ‘남성’이라는 사실은 이따금 명백한 한계처럼 느껴졌지만, 어쩌면 내 글이 누군가에게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 지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성으로서 여러 주류적인 특성을 지니고 살아온 나의 ‘위치성’을 감안한다면, 다양한 페미니즘 의제들을 여성과 동일하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게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또, 구조적으로 억압자 혹은 가해자가 되는 남성들의 페미니즘 실천이, 여성들의 목소리와 분노에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 것으로 끝나서도 안 된다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그래서 내 글이 단순히 ‘남성이 쓴 페미니즘 글’에 머물지 않길 바라며 ‘나’에게서 시작하거나, ‘나’를 경유해서 페미니즘을 포착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반복했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나의 위치를 지우거나 ‘나는 다르다’를 강조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고 했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는 그 노력의 불완전한 결과물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의 대안적 남성성은, 페미니즘을 자신의 서사로 삼는 남성들이 등장하면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중이다.


이 책을 쓰는 동안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과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다. 이는다른 위력 성폭력 사건들보다 훨씬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오랜 시간 페미니스트들과 함께했다는사실은 ‘가해자다움’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나아가 남성들이 이 사건을 두고 ‘나는 그들과 다르다’라는 선 긋기와 ‘나는 안 그럴 거다’라는 다짐으로 일관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자는 ‘진보’와 ‘남페미’가 문제라고 지적했지만, 이것은 분명 ‘남성 문제’다.


남성이 여성을 평등하게 대하지 않아도 되는 권력구조가 존재하는 이상, 그 누구도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고 절대 장담할 수 없다. 남성들은 자신의 ‘결백’과 ‘남다름’을 주장하기 전에, ‘김종철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이자 고발자인 장혜영 국회의원이 던진 “그토록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남성들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라는 질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남성들이 실패할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금껏 만들고 지켜왔던 이들은 누구인가?


‘차별과 혐오’ ‘지배와 착취’의 특성을 내포하고 있는 가부장적 권력은 여성뿐만 아니라 겹겹의 소수자성을지닌 이들을 고통에 빠지도록 만든다. 내가 원하는 세상을 위해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나를 포함한모든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한 명의 온전한 '시민'으로인정받기 위해서는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느낀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는 나의 두 번째 책이다. 전작이 페미니즘을 수용한 남성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데 힘을 쏟았다면, 이번에는 한 발 더 나아가서 남성들에게 ‘성별 이분법’을 흔들고 젠더 질서를 재편하는 데 함께 나서자는 간곡한 요청의 메시지를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가부장제는 여성과 남성의 ‘성차’를 강조하고,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을 규정하면서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남성들의 페미니즘 실천이 ‘시스젠더 이성애자’의 올바른 행동 양식처럼 여겨지기만 한다면, 역설적으로 성별 이분법을 강화시키고 가부장제가 온존하도록 기여하는 셈이 된다. 남성들이 궁극적으로 ‘정상 남성’을 규정하고 있는 공고한 틀을 깨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므로 결코 ‘이만하면 괜찮을 수’ 없다는 것이다.만족하지 않기를, 그리고 주저하지 말기를 남성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사실 나는 살아온 시간의 대부분 동안 ‘냉소하기’를삶의 좌우명처럼 붙들고 살았다. 특별히 누군가를 존경하거나 롤모델 삼아본 적도 없고, 무언가에 열정을 불태운 적도 거의 없다. 우정을 쌓거나, 돈독한 인간관계를 맺는 데도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다행히 그것은 내가 주류적인 남성문화와 ‘거리두기’를 할 수 있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냉소만으로는 작은 진보조차 이뤄낼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남성들이 만든 ‘거창하고 거만한 세계’가 무너지고 있을 때, 나는 멀리서 “그럴 줄 알았지”라고 말하지 않겠다. 대신 후회하고 성찰하는 이들의 손을 잡고 새로운 세계에 지어지는 ‘평등한 집’에 벽돌 하나라도더 쌓고자 한다.이 책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졌다.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힘이 되어준 가족과 애인,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고 확장시켜준 친구들과 동료들, 그리고 나를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세상의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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