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은 어렵고, '모욕'은 쉽다
2주 전 토요일, 오랜만에 TV를 틀어 MBC <전지적 참견 시점(전참시)>을 봤다. 방송인 안현모씨와 그의 남편 라이머씨가 등장했고, 안현모씨가 라이머씨에게 비건 버거를 해주는 장면이 나와서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안현모씨는 '비건 지향'이지만 현재는 해산물은 먹고 있다고 했다.
안현모씨는 자신은 온전한 비건 버거(샌드위치)를, 남편에게는 달걀 후라이가 섞인 버거를 줬다. 나는 마침 오전에 강의를 한 곳에서 맛있는 비건 버거를 먹었기에 꽤나 관심을 갖고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실제로 라이머씨도 맛있게 먹고 있었던지라, 이걸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비건 버거의 존재가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 라이머씨가 '목이 막힌다'면서 김치를 꺼내는 것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더니, 갑자기 "안되겠다... 짜잔!"하면서 캔을 하나 꺼내오는 것이었다. 평양냉면 육수였다. 안현모씨는 "육수를 마시겠다고?" "내가 대체육으로 식물성 패티 해줬는데 무슨 의미야"라면서 정색을 하고 나무랐지만 라이머씨는 들은 채 만 채 육수를 들이키면서 "굿!" "캬" 등의 감탄사를 연발했다. 오히려 "식물성 먹고 동물성 국물 먹고 딱 맞잖아 밸런스" "이걸(비건 버거) 먹고 이걸(평양냉면 육수) 먹으니까 더 고기 맛이 나네" 등의 비건식을 권유한 아내를 짜증나게 만드는 말을 쏟아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전참시의 패널인 송은이씨가 이에 대해 "(비건식에) 반항하는 거예요"라고 첨언했고, 안현모씨도 "반기를 든 거예요"라고 말하는 걸 보면 라이머씨가 한 행동의 의도는 명백하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이를 비판하기 보다는, '라이머의 황당 행동'으로 여기거나 "괜찮지 않아요?"처럼 오히려 긍정하고 웃긴 에피소드로 넘기는 분위기였다. 기본적으로 방송은 합의된 것이고, 실제로 라이머씨가 평양냉면 육수를 먹는 것도 설정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라이머씨만을 걸고 넘어질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채식에 무심한 남편'을 유머러스한 에피소드의 소재로 삼으려고 했던 전참시 제작진에 있다.
제작진은 "버터랑 우유를 안 쓴다고?"라는 말에 자막으로 '그 맛있는 걸 왜'라는 말을 굳이 속마음인양 붙인다. 심지어 평양냉면을 먹으면서는 '비건버거가 드디어 소화가 되는 모양'이라는 말을 굳이 자막으로 덧붙이면서 라이머씨의 행동을 그저 우스꽝스럽고 귀여운 돌출 행동처럼 여기게 만든다. 여기에 이영자씨의 "비건을 먹긴 먹어야 하는데... 알잖아요"와 전현무씨의 맞장구까지 더한다.
이 모든 상황이 나는 비건이나 비건 지향이 아님에도 굉장히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비건식을 차려줬는데, 굳이 동물성을 찾고 심지어 질타를 당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채식에 대한 무시와 조롱에 가깝다. 왜 채식을 하는지, 왜 채식을 권유하는지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는 사람의 여유와 무심함에서 나온 '무례함'이다. 이런 행동이 어떻게 '왁자지껄하게' 웃을 수 있는 유머가 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정치적 올바름을 강조하거나 '채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너무 계몽적이다', '죄책감을 일으키는 방식은 틀렸다'라고 지적하곤 한다. 여타 진보적 운동보다 '채식 권유'에 대해서는 반발이 꽤나 심하다. 기후위기 해소와 '동물권'이라는 목표와 지향점에 공감하지 못하거나, 개인의 식사까지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는 점에 압박을 느낀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유독 거부감이 크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동물권 단체 등 소수의 '강력한' 메시지에 대해, 현실적인 여건으로 채식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강요하지 않고' 채식 운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난 애초에 채식을 '강요'하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겠고, 육식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 세상에서 '강요'가 감히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비건이든 그 이외의 채식 방식이든 실천도 권유도 상당히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비건을 도모하고 권유하는 <비거닝>이라는 책에서, 김성한 교수는 "상대를 불편하게 할 의도는 없었지만 음식 성분에 대해 내가 던지는 몇 마디가 상대를 힘들게 하고 있음을 눈빛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며 일종의 '벽'을 느꼈다고 밝힌다. 신소윤 기자는 "'비건적'이지 아닌 어떤 행동을 할 때 불편해하고 부대꼈다. 자신에게도 이럴진대 타인에게는 어땠을까"라며 비건 실천이 스스로에게도 어렵고, 타인에게도 '비건'의 잣대를 들이대기가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비건을 비롯한 채식 실천과 권유는 여러모로 신경쓸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저 채식의 실천만으로도 묘하게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을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직장인의 경우에는 타인이 속으로 '유난 떤다'거나 '쟤 때문에 식당을 편하게 못 고른다'고 생각할까봐 고심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상대방에게 채식을 권유하려면 왜 채식이 필요한지 이론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채식 음식의 '맛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선언하고 압박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시도는 종종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 현실에서 채식 실천과 권유를 무마시키기 위해선 굳이 싸울 필요도 없다. 채식한다는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육식만 할 수 있는 식당을 잡고, 고기 맛있다는 말을 하면 된다. 채식도 맛있다고 설명하는 사람 앞에서 '그래도 치느님이지' 한 마디하면 끝이다. 정말 너무나도 쉽게 모욕을 줄 수 있다. 육식이 보편적인 식문화고, 시스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주변에서 쉽지 않은 환경임에도 채식을 실천하는 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다. 고급 채식 식당에서, 종교적 이유로 채식을 하는 대학교 식당에서, 요즘 나오는 다양한 비건 레토르트 등에서 '고기가 없지만' 맛있는 식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해왔다. 나는 육식을 하고 '미식'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지만, 먹는 즐거움을 느끼는데 꼭 고기(특히 육고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기를 모사한 것을 먹지 않더라도, 제철 재료들, 이를테면 여름철에는 초당 옥수수, 참외, 토마토, 콩국수 등을 활용하면 꽤 충만하게 먹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며칠 전 북토크에 오신 분들을 위해 오베흐트라는 카페에서 만든 ‘비건 도넛’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그건 다른 도넛과 디저트처럼 달콤하고 맛있었다. 비건 등 채식을 권장하고 외치는 사람들이 대단히 금욕적인 삶을 살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2004년 팔레스타인에서 평화연대 활동을 하고 있던 조한진희 활동가는 당시에도 채식을 하고 있었는데, 현지 활동가들에게 "당신의 채식을 존중하지만 팔레스타인에 사는 사람으로서 채식까지 고민할 여력이 없다. 일단 이스라엘에 의한 점령을 종식시키고 난 뒤, 그때 가서 채식과 동물권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순서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비거닝> 중). 폭격과 학살의 피해 속에서도 '존중'은 가능할진대,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불가능할리가 없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진보적 실천을 하는 이들을 무시하면서 은근슬쩍 창피를 주는 이 행태가 왜 이렇게 반복될까? 앞서 언급한 전참시 에피소드 말미에 안현모씨는 패널들을 향해 "아무도 비건 패티에는 관심이 없는거예요?"라고 물었다. 그건 스쳐 지나간 말이었지만, 꽤 묵직한 물음이기도 했다.
채식이나 동물권 운동뿐만이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장애인 이동권 운동에 대해, 파업 등의 노동 운동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좀 더 온건하라'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라도 안 하면,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기득권의 질서를 지키려는 이들에게 너무나도 쉽게 무시당하고 모욕당하기 쉽상이다. 평소에 강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은 고함을 치지 않아도 된다. 눈빛, 말투, 아주 사소한 행위 몇 가지로도 가뿐히 약자의, 비주류의 목소리를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고, 누구나 그렇지만 모든 진보적 움직임에 연대할 수 없고, 온전히 공감할 수 없을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손쉽게 조소를 날리기 전에, 혹은 "싫어" "안 돼"를 이야기하기 전에, 타인의 삶과 실천을 존중하는 법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 '모욕'을 습관화하는, 타인의 '과도함'을 쉽게 지적할 수 있는 태도에 대해 왜 우리 사회는 이다지도 온정적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