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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Jun 16. 2021

"여성단체는 하는 게 뭐냐"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어제 논란이 됐던 기사 중 하나가 뉴시스의 <공군 女중사 성추행 자살 사건에 입닫은 여성단체>였습니다. 보도내용을 듣기만 해도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사건인데, 그와중에 기자가 여성단체가 성명서를 썼는지 안썼는지 찾아보고 기사를 썼다는게 정말 황당하더군요. 이 기사가 나가자 또 여기저기서 "여성단체는 뭐하냐"면서 욕을 시작했고요.


'여성단체가 어떤 사건에 침묵한다' 이런식의 공격은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가장 앞장서서 투쟁하면서도 "왜 가만히 있냐"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은 아마 한국의 여성단체들이 유일할겁니다. 남성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지독한 반감이 그렇게 표출되는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진영논리에 맞으면 "진정한 여성단체"로 인정해주고(당신들이 뭐길래), 그렇지 않으면 "변질되거나 보수화된 여성단체'소리를 합니다.


기사를 보고 헛웃음을 짓다가,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일시후원을 했습니다. 성폭력상담소는 '해군 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대위에 속해있는 단체입니다. 이 사건은 같은 함정에 근무한 소령과 함장 대령(당시 중령)이 직속 부하인 여군에게 가한 강간 및 강제추행에 대해 보통군사법원은 각각 징역 10년형, 8년 형을 선고했는데, 이걸 고등군사법원이 무죄 판결로 뒤집어버린 상태입니다. 2심 후 2년 반이 지났는데 아직 대법원 판결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성폭력상담소가 이 사건에 대한 기획연재를 오마이뉴스에 보내왔을때, 제가 편집을 하면서 동시에 사건의 진상에 대해 알게 되어 여러번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것은, 또 피해자 한 명 한 명에게 적절한 방식으로 지원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제가 여성단체를 취재하면서, 또 성폭력상담소의 정기 후원회원으로서 느낀 바는, 활동가들은 고통스러운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하면서도 동시에 누구보다도 오랜 시간 사건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많은 여성단체들이 그런 일을 합니다. 저 역시 페미니즘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언제나 그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이 나왔을 때는 한국여성노동자회에 인세의 일부를 기부했고, 이번에는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인세의 일부를 한국성폭력상담소에 기부합니다. 부끄럽지만, 그래도 더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십사 이렇게 올려봅니다.

사실 저는 몇 년전까지만 해도 후원을 안 하는 걸 떳떳하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나도 쥐꼬리만큼 버는데 뭘...’ 이런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못하는 일을, 혹은 두려워하는 일을, 하지만 사회적으로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누군가가 항상 그 자리에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 오더군요. 그래서 정말 적은 금액이지만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곳도 네 곳 정도 있고, 종종 일시 후원을 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공군에서 일어난 성폭력과 조직적인 2차가해를 보면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다 말을 하지만, 우리사회에선 성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고,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들의 세상'임을 증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요.


이러한 현실을 바꿔나가기 위해서라도, 성폭력상담소에 많은 응원과 후원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절망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언제나 피해자 곁에 계셨던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님들께 존경과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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