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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Sep 15. 2021

교제살인, 열흘에 한 명씩 죽어가는 여성들

책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는 한국판 ‘페미사이드 보고서’다. 108명의 피해 여성에 대한 1362페이지의 교제살인 판결문을 분석한 이 책은 무수한 절망의 기록임과 동시에 ‘앞으로 죽지 않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의 기록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뒷짐을 지거나 거리를 두지 않는다. 피해자 한 명 한 명을 마음에 담은 채로 절박하게 대안을 찾아 나선다. 나아가 이는 단순한 ‘데이트폭력’이 아니라 ‘교제살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동안 남성들이 만든 ‘보편’의 언어로는 여성들이 겪는 고통이 명확히 설명되지 않았다. 언어를 바꾸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우리는 더 이상 단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제가 처음으로 추천사를 쓴 책,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교제살인 그 108명의 죽음》이 나왔습니다. 오마이뉴스의 이정환, 이주연 선배 기자들이 '국제 엠네스티 언론상'을 받은 <교제살인> 기획을 정리하고, 지면에 담지 못한 내용들을 추가해서 낸 책입니다.


지난달 남자친구의 폭행으로 스물다섯살 황예진씨가 사망했지만, 정작 남자친구는 불구속 상태에서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또 얼마 전에는 남자친구에게 맞은 여성이 의식불명상태로 병원에 실려온 일도 있었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의하면 지난해 교제관계에 있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48명이고, 일방적으로 교제나 성관계를 요구한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은 4명이라고 합니다. 이는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기준으로 한것이니 실제로는 더 많은 여성들이 남성의 폭력으로 인해 죽거나, 심하게 다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제살인, 또는 배우자살인에 대한 뚜렷한 범죄 통계조차 없는 게 현실입니다. 경찰은 2016~2018년 교제살인 건수가 51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판결문만 찾아도 108건이 나왔습니다. 국가가 여성 폭력에 대한 통계조차 제대로 잡고 있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여자라서 죽었다'라는 말을 피해망상이라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비참함을 느낍니다. 헤어지자고 했다고, 성관계를 거부했다고, 여자답지 못하다고, 남성을 무시하는 눈초리를 보냈다는 이유로 여성은 죽습니다. 그것을 단순히 '악마'의 범죄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한국 사회가 남성 지배와 성차별을 정당화하고, 가부장제가 규정하는 '올바른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으려는 여성을 '때려도 괜찮은 존재'처럼 여긴 결과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수 오지은님의 강남역 여성살인사건 2주기 추모 공연에서 부른 <작은 자유>라는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지구라는 반짝이는 작은 별에서 아무도 죽임을 당하지 않길". 책에 담긴 재판문 내용을 읽는 것 자체가 몸이 떨릴 정도로 참담했습니다만,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페미사이드'의 현실을 직시해야만, 누구도 죽지 않는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라 믿습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페미사이드를 정리하고 기록하는 첫걸음을 내디딘 《헤어지자고 했을 뿐입니다-교제살인 그 108명의 죽음》을 격려해주시길, 또 많이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교제살인 피해자 108명의 명복을 함께 빌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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