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여성을 배제하는 공간
요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유명 카페에서 '노키즈존'이라고 써붙인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누가 봐도 어린이가 가기에 위험한 장소도 아니고, 오히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파는 곳에서 노키즈존을 선언한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이는 그만큼 한국 사회가 노키즈존에 대해 관대하며, '노키즈존'이 업주의 권리인양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온라인 상으로 노키즈존에 대한 반발 여론이 상당히 강함에도, 그것이 강력한 불매운동까지 간 적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노키즈존에 대한 글을 쓰면, "업주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요즘 애들 때문에 장사를 못한다"는 댓글을 유독 많이 받는다. <이만하면 괜찮은 남자는 없다>에서도 노키즈존을 다룬 부분에서 공감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노키즈존은 어린이에 대한 차별인 동시에 실질적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이 됨에도,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차별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주양육자가 여성인 한국에서는 노키즈존은 여성에 대한 차별 조치가 된다. 여가부가 발표한 '2021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9년 출생아부모 중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63.6%였고,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은 1.8%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9년 통계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의 1일 평균 가사와 육아 시간이 여성은 181.7분인데 비해, 남성은 32.2분에 불과했다. 남성은 사실상 노키즈존에 구애받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식당과 카페에 가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게들은 노키즈존이라는 '차별'을 당연시한다. 어린이 때문에 '분위기'를 망칠까봐, 어린이 때문에 '사고'가 날까봐, 어린이 때문에 '분쟁'에 휘말릴까봐 등등... 하지만 성인은 분위기를 망치고, 사고를 내고, 분쟁의 위험이 없을까. 50대가 행패를 부렸다고, 젊은 남성들이 큰 목소리를 내서 분위기를 망쳤다고, ㅇㅇ교회 사람들이 커피를 5명이 와서 커피를 한 잔만 시켜놓고 있는다고 해도 그들에게 'NO'를 말하는 가게는 없다. 미숙하고 통제가 어려워서, 업장에 피해를 끼칠수 있어서 거부한다고 선언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어린이 뿐이다. 대체로 그들이 자신 스스로 대항할 힘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차별이 쉬워진다.
인권위는 '노키즈존 식당'에 아동을 차별하지 말것을 권고하면서 1.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유해하거나 2. 시설 이용상 특별한 능력이나 주의가 요구되는 경우가 아닌 경우엔 특정 집단만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아이 동반을 거부하는 곳의 상당수는 카페다. 여러 이유로 '노키즈존'을 선언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유해하지도 않고, 특별한 능력이나 주의가 요구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어린이가 편히 있을 수 있도록 여러가지 보호, 안전 조치가 요구되는 곳들이 그 책임을 피하기 위해 노키즈존으로 만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실 어린이에게 가장 위험한 곳은 불판이 있는 고기집이다. 하지만 이런 식당의 대부분은 가족 단위 손님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노키즈존'이 아니다. 결국 아이와 아이와 동반하는 보호자가 부담스럽고, 주요 타깃 손님도 아니기 때문에 배제하는 것이 노키즈존이다.
자신이 만든 공간에서 특정한 연령대나 성별을 배제한다는 것은 인권위의 권고처럼 매우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다. 원칙적으로는 업장의 이익이 아니라, 오히려 손님의 안전이나 이익에 해를 끼칠 때, 그제서야 출입을 금지시킬 수 있다. 백 번 양보해서, 업주 입장에서는 자신이 공간의 콘셉트나 방향성을 지키려면, 혹은 공간의 특성상 어린이의 출입이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심스럽게 손님에게 요청하거나 당부하는 형식이 되어야 하고, 적어도 금지를 선언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노키즈존'이라는 말이 그러한 금지를 매우 당연한 권리인양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키즈존을 선언한 자영업자 개개인이 아니라, 노키즈존이라는 말 자체가 만연하고 있는 상황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린이 거부', '어린이 배제', '어린이와 함께하는 성인도 출입금지'라는 매우 강력한 배제와 차별의 뜻이 '노키즈존'이라는 말을 통해 희석된다. 동시에, 노키즈존은 업주들 사이에서 마치 합리적인 선택지처럼 여겨지고 있다.
노키즈존이라는 말은 '어린이는 업장의 분위기를 망칠 수 있고, 우리는 어린이는 사고 위험에 대해 어떠한 의무도 없고 책임도 지기 싫으니 그냥 들어오지 마세요'라는 뜻이 담겨있음에도, 그것이 일종의 공간에 대한 원칙이나 규정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어린이를 손님으로 받지 않는 것은 명백한 배제이기 때문에, 제 아무리 업주 입장에서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 선택이 쉽고 가벼워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매우 제한적으로 행해져야 할 일이, 매우 당연한 권리와 선택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노키즈존'이라는 말이 주는 힘이다. 업주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넓게 퍼져서, 인정받고 있는 단어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게 편하니까. 아마 노키즈존이라는 말이 없었다면, 어린이의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 차별이라는 인식이 강했더라면, 업주들 역시 쉽사리 '노키즈' 선언을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노키즈존은 운영 원칙도 아니고, 업주의 권리도 아니다. 어린이, 나아가 여성을 배제하는 차별조치를 매우 가볍게, 아무렇지도 않게 표현하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최소한 어린이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노키즈존이 '선택'이 될 수 있다는 프레임을 깨고, 궁극적으로는 노키즈존이라는 말 자체가 쓰이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