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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Apr 21. 2022

'드라마 2521 본 실제 기자 반응', 제가 썼습니다

저널리스트는 '앞'만 보고 가도 괜찮을까?



"손석희도 저렇게 안 살아"


옆에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15화를 보던 반려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UBS 기자가 된 백이진(남주혁 분)이 일상 생활을 모두 포기하고 일만 하다가 나희도(김태리 분)와의 관계를 망치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백이진은 수습기자도 아닌데 며칠째 밤을 새며 거의 주120시간 취재를 하는가하면, 국제부도 아닌데 갑자기 나희도와의 생일 기념 여행을 미루고 911테러를 취재하러 가더니, 심지어 나희도와 상의도 하지 않고 미국 특

파원에 지원했다. 


드라마적 설정이긴 하지만, 저 혼자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착각하면서 정작 옆에 있는 사람을 챙기지 못하는, 속칭 '기자 뽕'에 빠져있는 백이진 캐릭터에 대해 "손석희도 저렇게 안 산다"고 말한 반려자의 평은 꽤 적확했다. 나는 "그 말 인스타에 올려도 돼?"라고 물어봐서 허락을 받고, 인스타 스토리에 백이진 사진을 캡처해서 "이진아, 손석희도 그렇게 안 살아..."라고 적어서 올렸다.



그러자 백이진의 '캐붕'(캐릭터붕괴)과 자연스레 뒤따를 것으로 예상되는 두 사람의 이별에 분노한 시청자들이 "드라마 2521 본 실제 기자 반응", "실제 기자도 이해 못하는 2521" 등등의 제목을 붙여서 SNS와 커뮤니티 등에 스토리를 퍼나르기 시작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엄청난 인기를 실감함과 동시에, '내가 드라마 밖 실제 기자를 대표할 수 있지는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며 묘하게 부끄러워졌다. 


2015년부터 지금의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내겐 기자라는 정체성이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내겐 하나의 직업이고, 다른 직업처럼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만큼 직업 윤리를 지켜야한다고 믿을 뿐이다. 딱 '그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여타 기자들처럼 진실을 찾기 위한 의욕이 넘치거나, 내가 세상을 바꿔내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모로 경험이 일천한 탓도 있다. 기자랍시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대뜸 전화를 걸거나, 일종의 인맥을 유지해 나간다거나, 무언가를 계속 비판하는 것도 영 달갑지는 않다. 그런 점에서 나는 기자 사회에서는 '아웃사이더'도 아니고 '불량'에 가깝다고 생각해왔다.


그럼에도 불량이라도 괜찮다고, 기자로서 이름을 날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글을 쓰는 일을 여전히 좋아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서다. 물론 스스로의 한계나 부족한 점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긴 한데, 그럼에도 글을 안 쓰지는 않을테니까, 기자든 뭐든 비슷한 일을 계속 하지 않겠냐는 막연한 생각이 있다. 사실 기자든 작가든 그건 아무래도 무거운 이름이긴 하다.  그냥 ㅇㅇ씨, ㅇㅇ님이면 나에겐 충분하다.


그래서 조금 진지하게 이야기하자면(죄송) 기자로서의 백이진의 캐릭터는 일종의 경계 대상이기도 하다. 남자들 중에는 유독 '나 아니면 안 돼' 식으로 공적 자아가 비대한 인물들이 많고, 심지어 그것이 모범적 남성성인양 여기는 분위기도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들은 공적인 내가 너무 큰 나머지, 사적인 영역에서의 '돌봄'을 내팽겨친다. 나를 돌보지 못하고, 타인도 돌보지 못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이에게 회복과 성찰의 시간은 부재하게 된다. 나의 사회적 목표라는 '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소'가 되며 부수적이고 불필요한 것처럼 취급된다. 그런데 그들이 목표 삼은 '대'는 제3자가 봤을 때는 하잘 것 없고, 오히려 그들이 놓쳤던 '소'가 더 중요한 경우가 다반사였다. '객관'을 말하는 이들이 정작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을 상실해버리는 셈이다.


저널리스트로서 가장 피해야 할 일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걸 관심 있게 만들고, 정작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글을 쓸 때 스스로에게 몰입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평소에는 자신 자신과 일정 수준의 거리두기를 할 줄도 알아야 한다. 분명 나는 '기자 자격 시험' 같은 게 있다면 떨어질 확률이 높지만, 무엇이 더 이 시대에,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인지는 통념과 관성에 따라 판단하지 않으려고 꾸준히 노력할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 안에 누군가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빈 공간을 꽤 많이 마련해두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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