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문희가 가부장제를 고발하는 방식
어릴 적에 할머니, 외할머니 집에 가면 8시 반에는 KBS1 일일드라마를 봐야만 했다. 간혹 ‘보고또보고’나 ‘인어아가씨’ 같은 공전의 임성한표 히트작이 채널을 바꾸게 하기도 했지만, 어지간하면 채널은 KBS1에서 돌아가지 않았다. 아마 외할머니는 요즘도 여덟시 반만 되면 KBS1을 틀어놓을 것이다.
한때는 매일 비슷한 사람들이 나오고, 비슷한 전개로 진행되는 저 드라마들을 왜 계속 보나 싶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본인들과 같은 ‘할머니’가 극을 이끌어가거나, 적어도 중심 축을 이루는 한 인물인 것은 일일드라마 빼고는 없더라(물론 최근에는 젊은 주인공 이외 인물들의 비중이 줄고 있다) 할머니들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비슷한 캐릭터가 나오는 드라마에 감정을 이입해서 울고웃고 하는 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작은 낙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일일드라마의 할머니를 상징하는 얼굴이 누구냐 물어보면, 역시 나문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김혜자, 강부자, 김영옥보다는 확실히 더 ‘보통 할머니’ 같기도 하고. 이는 무려 20년 이상 나문희가 할머니 배역을 해왔던 이유도 있다. 사실상의 출세작이고 그에게 연기대상을 가져다준 1995년도작 <바람이 불어도>에서도 그는 팔순을 앞둔 할머니였는데, 그때 그의 나이는 55에 불과했다.
나문희는 참으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는 대체로 ‘늙은 어머니’나 ‘할머니’였으므로 언제나 가부장제와 남성지배사회에서 여성이 살아갔던 방식에 대해 보여줬다. 어떤 경우에는 ‘순응’이었고, 어떤 경우에는 ‘탈주’였으며, 또 어떤 경우에는 가부장제를 재생산하는 위치에 오른다. 심지어 가정폭력의 피해로 ‘장애’를 겪기도 한다.
나문희는 매번 달랐다
순응
MBC의 4부작 드라마였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아주 전형적이지만, 비극적인 어머니상을 연기한다. 자신의 인생을 내버려둔 채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만 살았던, 치매 걸린 시어머니를 모셔야 했던 여성이 자궁암 말기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자신이 죽으면 시어머니를 모실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시어머니의 목을 조르다가 이내 포기하기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노희경이 쓴 대본이 수능 모의고사 지문에도 출제돼서 아이들이 언어영역 풀다가 울기도 했다는 그 작품이다. 과거에 요양병원도 없고 요양원도 턱없이 부족할 때, 시부모가 아프면 며느리들은 그 병수발을 다 감당하면서도 동시에 집안일과 모든 돌봄 노동을 담당해야 했다. 삶이 없어진 여성이, 죽음을 앞두고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을 찾게 되는 것이다. ‘시한부’라는 극한의 상황을 만들지 않고서는 그 시대 여성의 ‘희생’에 제 값을 매기는 게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의미에서 나는 <거침없이 하이킥>에서도 굉장히 순응적인 캐릭터로 나왔다고 본다. 애초에 설정 자체가 이순재네 집 식모로 살다가, 결혼하게 된 케이스다. 나이가 70 가까이 되어서도 대가족의 집안일을 도맡아하고 심지어 ‘독박 육아(준이)’까지 한다. 잘난 며느리에게는 오히려 갑질은커녕 오히려 기가 죽는다. 물론 시트콤이니까 재미있는 캐릭터로 나오지만 저게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하면 진짜 ‘핵노답’인 것이다. 그 시대 여성들을 생각하면 아주 전형적인데, 전형적인 것을 비틀어버리면서 나오는 웃음을 위해 만들어낸 캐릭터 같다.
탈주
“자신의 인생을 유유자적 즐기는 캐릭터로, 여성으로서 사랑받고 싶고, 부모로서 대접받고 싶은 욕망, 말년의 인생을 즐기고 싶은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는 인물이다” - 이준 <노인이라고 ‘원초적 본능’이 없나>, 오마이뉴스 2006년 12월 22일
문영남의 ‘막장 드라마’ 세계를 연 <소문난 칠공주>에서 나문희의 비중은 적다. 하지만 춤바람이 난 그가 춤을 추며 부르는 ‘있을 때 잘해 (일명 돌리고 돌리고)’는 공전의 히트를 치며 대중들에게 크게 회자가 됐다. 사실 나문희는 일찍이 남편을 잃고 재가를 반복하다가 결국 갈 곳이 없어서 딸네 집에 얹혀사는 기구한 운명이다.
그러나 나문희는 여기서 카바레에서 춤을 추며 신나게 놀고, 사위에게 돈을 달라거나 놀려 먹는등 ‘막가파’로 나온다. 얼핏보면 하나의 ‘막장’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아예 기존의 어머니상을 무너트리면서 ‘자유’를 찾았다는 점에서 카타르시스를 주는 배역이다.
<디어마이프렌즈>의 문정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상당히 비슷한 캐릭터. 남편으로 나오는 신구는 ‘하늘같은 남편’ ‘어디 여자가’ 운운하는 가부장이다. 결국 이혼을 결심하며 “그저 맥주 한병이라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삶”을 누리고 싶다고 말한다. 끝내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아예 새 집까지 마련해버릴 정도로 가부장제에서의 완전한 탈출을 꿈꾸는 인물로 나온다.
재생산
유독 KBS 또는 문영남 드라마에서 ‘성격 나쁜 할머니’로서 가부장제를 수호하는 역할을 많이 한다. 그의 출세작이었던 <바람은 불어도>에서는 가부장 아들을 키워내면서 권력을 행사하게 된 괴팍하고 속물적인, 며느리 구박을 일삼는 시어머니로 등장한다. 물론 당당하고 유머러스한 태도가 인기 포인트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대가족 내에서 가부장제를 재생산해내는 행태를 보여준다.
<바람불어 좋은날>, <왕가네 삼형제>, <장밋빛인생>에서도 전부 가부장제의 화신이 된 여성처럼 ‘전형성’이 강한 시어머니 또는 할머니로 등장을 한다. 며느리 괴롭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식이나 손녀 손자의 일들을 자기 멋대로 하려는 습성을 보인다. 문영남도 노희경만큼이나 나문희를 좋아하지만, 둘의 활용 방법은 다르다. 문영남은 나문희를 거대한 대가족 드라마의 든든한 고정축처럼 여기는 것 같다. 전형적인 ‘시어머니’, ‘시할머니’의 전형성에 한두가지 특징을 주는 것(그런점에서 소문난 칠공주는 정말 의외) 정도로 역할을 준다. 이런 연기는 나문희에게는 오히려 쉬울 수 있다.
장애
반면 노희경이 나문희를 쓰는 방식은 <디마프>에서도 그렇고 전형적이진 않다. 그래서 나문희가 노희경에게 “고민할게, 연구할게”한다는 것은 빈말이 아닐 것이다. 특히 지금도 어렴풋이 이미지로 떠오르는 97년작 <내가 사는 이유>에서의 ‘숙자’는 파격에 가깝다. 나문희는 일종의 ‘유아퇴행장애’를 겪는, 동네에서 ‘정신 나간 할머니’로 불리는 역할을 맡았다. 극중에서 욕쟁이 언니로 나오는 김영옥씨와의 연기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노희경 스스로도 당시 이 두 배우의 연기에 큰 애정을 갖고 있다고 밝힌적이 있다. 이때의 연기에 대해 채널예스의 땡땡님은 <우리들의 엄마, 나문희>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이 먹은 배우가 퇴행장애로 어린애가 된 사람의 연기를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금만 선을 넘어버리면 가짜라는 게 티가 나고, 그렇다고 모자라면 시청자를 설득할 수 없어요. 그런데 나문희는 어린애 연기를 소름 끼치게 해낸 것도 모자라서, 그 캐릭터가 제정신을 찾은 이후까지 연기해 냅니다. 그의 신들린 연기가 아니었다면 제가 지금까지 <내가 사는 이유>를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어요.”
그런데 나문희가 이렇듯 실성하게 된 이유는 “결혼 후 임신을 하게 됐지만 주정뱅이 남편의 폭력으로 아이가 유산되고 나서”이기 때문이다. 그는 ‘고민’하고 ‘연구’하면서 가부장제의 폭력을 겪은 인물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굿바이 솔로>에서의 나문희는 말하지 않는다. 목에 작은 칠판을 걸고 다니면서 의사소통을 하는 식당 할머니로 나온다. 극중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거나 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그냥 말하지 않는 역할로 나온다. 이유가 있다. 폭력 남편에게서 도망쳐있던 도중 남편이 홧김에 집에 불을 내어 스스로 죽었다. 게다가 그는 ‘세번째 새엄마’로 만난 사이였던 입양딸 미자(윤유선 분)도 버린다. 그 이후로 속죄의 마음으로 말을 안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대신 자신 주변의 모든 젊은이들의 말들을 듣고 위로해주는, 또다른 의미의 어머니, 할머니가 된다.
나문희의 힘
나문희가 맡은 캐릭터는 자신의 꿈이나 사랑을 달성하기 위해 달려가는, ‘특별한 인물’로서의 개별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그가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주연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주연을 맡기기에 그에게 부여할 수 있는 개성은 한정적이다. 그가 ‘어머니’이고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역할로부터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이나 ‘지역 공동체’안에서의 일이다. 개인으로서의 ‘나’는 없고 철저하게 구조에 종속되어 버렸다. 소수의 집단 안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인물이기에 그들의 욕망 역시 부차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치부된다. ‘열린 인물’이 아니다보니 입체적이지 못하고 역동성이 없을 법하다. 실제로 많은 드라마들은 그렇게 병풍처럼 ‘나이 든 여성’을 활용하기도 한다.
나문희는 대부분의 경우 구조에 갇혀있는, 혹은 갇힌 경험이 있던 ‘늙은 어머니’ 혹은 ‘할머니’를 연기해야 하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다양한 연기를 변주하면서 ‘가부장제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는 역할을 하게 됐다. 물론 직접적으로 피지배자로서의, 착취당하는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연기한 적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가 쌓아온 ‘여성의 상’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었을 것이다.
“<굿바이 솔로> 이전에 그가 한때 '고약한 시어머니 전문 배우'였단 것도 기억 안 났다. <소문난 칠공주>를 보고 알았다. 세상에. 미영 할머니가 '고약한 시어머니 전문 배우'와 같은 사람이라는 게 상상이 가나?” -조은미 <나문희, 당신의 팬이 되겠어요!>오마이뉴스, 2006년 4월 21일
개별의 드라마로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미영할머니, 남달구, ‘고약한 시어머니’ 모두를 본 사람은 나문희의 연기력을 칭찬하는 동시에, 나문희가 맡은 배역들이 모두 ‘개인이 말살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은연중에 인식하게 된다. 결국 나문희가 맡는 역할은 어떤식으로 변주하든, ‘결혼이나 출산을 통해 남성지배사회의 ’객체‘로 편입되어 30년 이상을 살아온 사람’이다. 다만 나문희는 그 구조에서 버텨내거나 응전하는, 혹은 포기하는 등의 다양한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면서, 어떤 배역을 맡은 나문희가 아니라, 나문희라는 배우 자체가 하나의 ‘스피커’가 되어갔다.
그래서 가끔 나문희를 보면 할머니 외할머니(외할머니라는 표현은 싫지만 헷갈리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셨을지 종종 궁금해지기도 했다. 소리 엄청 잘 지르는 가부장 꼰대였던 할아버지와 살며 자식 걱정만 실컷하고 살다가 가신 할머니, 장성한 자식 두 명을 사고로 잃고, 외할아버지 없이 산지도 14년이 된 외할머니. 집안일과 육아, 농사일밖에 모르도록 수십 년을 살아온 그들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인식해야하는지 고민이 일었다. 나문희는 나로 하여금 착취당한 다른 세대의 여성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
곧 개봉할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문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역할을 맡았다고 한다. ‘위안부 피해’는 단순히 일제의 범죄이자 만행이 아니라, 남성성과 동일시되는 국가가 저지른 ‘젠더 폭력’이기도 하다. 일제 남성은 식민지 여성에 대해 폭력을 가했고, 한국 남성들은 자신들이 ‘소유했다고’ 믿는 여성들이 당한 일이 수치스러워 비극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배척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50년동안 그 피해를 말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라. 이는 민족문제를 넘어선 ‘여성 문제’다. - 이나영 <소녀상’ 제대로 보기>, 경향신문 2017년 8월 20일자 참고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광범위하면서도 세세한 폭력의 구조를 고발하기에 나문희만큼 설득력 있는 인물은 없다. 그는 본인 인생은 안 그랬음에도 언제나 가부장제의 압박과 폭력을 등에 업고 연기를 해왔으니 말이다. 그는 우리 곁에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각자의 삶은 제각각이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몇십년을 버텨냈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의 연기를 보며 끊임없이 고민해볼 것이다. 어쩌면 그의 연기는 자신의 고모할머니였던 나혜석보다 더 좋은 페미니즘 텍스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