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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Sep 29. 2018

미미쿠키는 되지만 샤넬은 안 돼

여성 소비를 혐오하는 남성들의 계산법

"저거 먹이면서 우리애는 유기농만 먹는다구욧!! 이랬을 거 생각하니 ㅋㅋㅋㅋ"


'미미쿠키 사건'을 널리 알린 페이스북 A 페이지의 계정주가, 미미쿠키 관련 게시물을 올리며 달았던 댓글이다.  이어 달리는 댓글의 상당수도 미미쿠키에 속아서 구매를 결정한 여성들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피해자인 여성 구매자를 비난하는 흐름은 네이버 댓글에서 이어졌고, 몇몇 언론에 의해 기사화되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디씨와 일베, 네이버 등은 여성 구매자를 욕하는 댓글이 많았던 반면, 그 이외의 남초 커뮤니티는 비교적 잠잠했다는 점이다.


'김여사'나 '맘충' 등 여성 일반화 서사를 적극적으로 퍼트리는 남초 커뮤니티가 잠잠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유기농 쿠키나 롤케이크등의 구매가 여성 개인의 욕망을 채우려는 행위가 아니라, 가족들에게 '맛있고 좋은 것'을 먹이려는 행위에 더 가까웠기 때문이다. 네이버에 댓글을 쓰는 젊은 안티페미들은 그저 '소비하는 여성'이 속았다는 이유로 조롱을 퍼부었다. 하지만 기혼 남성들이 보기엔 미미쿠키를 사는 것은 '오빠가 허락한 소비행위'이므로, 구매자를 욕하는 상황에 동의하지 못한 것이다.


미미쿠키 기사에서의 맘충 댓글처럼 '여성의 소비'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극단적이지만,  '오빠가 허락하지 않은 소비행위'를 문제 삼는 것은 매우 보편화된 정서다. 오빠가 허락하지 않은 소비행위의 대표적 키워드는 여성들로부터 속칭 '한남 퇴치 부적'이라고 이름붙여진 '샤넬'과 '스타벅스'다. 


어떤 남성들은 이 둘을 좋은 말로는 '주체적 소비'고 나쁜 말로는 '이기적인 소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들은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소비하는 것을 경계한다. 물론 실제 그 소비의 형태나 목적이 어떤 것인지는 무관하다. 자신들이 하지 않거나 앞으로도 이해할 생각이 없는 소비행위이기에 (자신을 '보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무슨 노력을 하겠는가)  비위가 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지난 8월에 한 작가가 샤넬백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을 보고 "된장스러운 호들갑에 똥밟았다"며 비아냥대다가 거센 비판을 받은 중년 남성 논객(?)이 있었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의 사진에 있는 '산악자전거'가 대체 얼마냐고 따지기 시작했다. 자전거, 낚시, 오토바이, 게임 아이템 등 온갖 것에 돈을 쓰는 사람들이 왜 '샤넬'에는 질색을 할까. 남성들의 스타벅스 혐오는 더 황당하다. 스타벅스 매장이 이렇게 많아졌음에도 여전히 스타벅스를 가는 이유가 '허영심' 때문이라며, 일종의 사치재 취급을 한다. <관련 글: 왜 남자들은 '스벅 가는 여자'를 혐오할까. https://www.facebook.com/yesrevol/posts/1493028540769540


고작 스타벅스 음료 먹었다고 '된장녀'라고 했다니,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히다. ⓒ pixabay


"오랫동안 여성을 자연 및 본원적 욕망과 연결시켜왔던 경향성은 소비주의를 여성의 충동성 및 비합리성과 동일시하는 견해를 조장했다"(모현주, 화려한 싱글과 된장녀)는 말처럼 여성들의 소비는 그자체로 비합리성을 내포한것처럼 묘사되는 경우가 빈번했다. 최근까지도 '힙한 카페에 자주 가고, 유행하는 생활용품을 사고, 여행을 자주 가는' 일반적인 소비 행위들을 SNS에 올리는 것이 '허세'나 '사치'처럼 이야기됐다. 이처럼 여성들의 자기만족적을 위한 (남성들은 즐겨하지 않는) 소비행위는 철저하게 그 소비의 합리성과 정당함을 평가받게 된다.

 

그런데 이렇듯 여성의 소비를 재단하는 사고의 기초에는  '여성은 남성의 돈을 쓰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깔려 있다. 성인이 될 때까지는 아빠, 대학생때와 사회초년생때는 남자친구, 결혼해서는 남편에 의존해 경제생활을 한다는 그런 생각 말이다. '일하는 여성'이 늘고 있음에도 아직 인식의 변화가 크지 않다. 2016 양성평등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족의 생계는 주로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는 질문에 성인 남성의 47.3%, 성인 여성 37%가 동의했다. 또 '여성은 자신의 직장 생활보다는 어린 자녀를 돌보는 것을 더 우선시해야한다'는 질문에도 성인남성의 54.4%, 성인 여성의 53.2%가 동의했다 (청소년은 남성 35.4 여성 19.1%, 심각한 인식 격차가 있다) 여전히 전업주부를 성인여성의 기본값으로 놓는 생각이 사회적으로 강하다. 이러니 남성중심사회가 '여성의 소비'를 남성의 돈을 통한 소비로 가정하고 통제의 대상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남성들 시선에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소비행위에선, 여성의 욕망은 드러나면 안 된다. 이타적이고 공동체(가족)를 위한 소비여야만 정당성이 확보가 된다. 개인의 소비 능력조차 가부장적 규범 앞에서 무력해지는 것을, 우리는 '된장녀'라는 단어의 출몰에서 보지 않았는가. 


"엄마, 며느리, 아내의 입장에서 가족을 위해 소비할 때보다 여성이 제 자신을 위해 소비할 때 유난히 혐오가 따른다. 그렇게 여성의 노동은 축소되고 소비는 과장된다 (...) 이 비노동 인간이 남성의 돈으로 즐긴다는 공식은 점점 '요즘은 남자가 불쌍한 여자들 시대'라는 망상을 낳는다. 시장에서는 부추기고 일상에서는 혐오하는 여성의 소비는, 그 실체와 무관하게 화려하고 거대한 포장지로 싸여있다. (이라영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중)

이라영 선생의 말처럼 여성의 소비는 '시장에서는 부추기고 일상에서는 혐오한다'. 남성들은 언제든 여성의 소비에 대해 평가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성이 소비하다고 속았다'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하는데, 하물며 그것이 '오빠가 허락한 소비행위'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만약에 스타벅스 커피에 문제가 생긴다면, 인스타에서 유명한 옷이나 악세사리에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됐다면, '맘충' 운운하는 댓글은 저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사고, 무언가를 먹는다는 이유만으로 비난받고, 모멸감을 느끼는 단어로 지칭되는 상황, 남성에게는 소설에서의 이야기일뿐이겠지만, 여성에게는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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