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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Sep 29. 2018

여성들이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

"국가야 니들이 아무리 꼬셔봐라 내가 결혼하나, 비혼하고 속편하게 살지"

1. 보건사회연구원 조사결과(미혼남녀 2388명, 2015년 실시) 여성과 남성의 결혼 인식 차이가 꽤 큰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여전히 "결혼을 '웬만하면 해야한다"쪽에 가까웠지만, 여성은 "결혼, 그거 꼭 해야돼?" 이런 느낌에 가깝다.


결혼 꼭 해야 한다: 여성 7.7%, 남성 18.1%

결혼을 하는 편이 좋다: 여성 32.0%, 남성 42.7%

해도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 여성 52.4%, 남성 33%

하지 않는게 낫다: 여성 5.7%, 남성 3.9%

현재 결혼할 생각이 있다: 여성 64.7%, 남성 74.5%


여성이 왜 남성보다 결혼을 할 생각이 없을까. 그것은 '현재 결혼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조사 결과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다.


"30세 이상 미혼남녀에게 ‘현재 결혼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기대치에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남성 17.2%, 여성 32.5%)’란 답이 가장 많았다. 여성은 이어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11.0%) △결혼보다 내가 하는 일에 더 충실하고 싶어서(9.2%) △결혼생활로 사회활동에 지장이 있을까봐(7.7%) 등을 꼽았다. 남성은 △소득이 적어서(10.9%)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어서(8.6%) △주택 마련 곤란(8.3%) 등의 순이었다."


이 결과를 보자면 남성은 웬만하면 하고 싶지만, 이런저런 조건이 안 맞아 '못하는' 거고, 여성은 '마음에 꼭 맞는 사람'이 없으면, 오히려 내 일이나 사회생활에 방해가 되므로 안 하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거다.


2. 남자들은 20대 초반부터 '앞으로 내가 결혼을 할 거라는 사실'에 큰 의심을 하지 않는다. 여전히 남자 중에 결혼 안 할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좀 특이한 사람축에 속한다. 물론 내 주변에는 비혼주의자도 꽤 있겠지만, 학교나 군대 같이 평범한 집단에서 본 사람 중에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남성들에게 결혼은 디폴트에 가깝다. 사실 나 역시 내가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남성에게는 결혼이라는 게 생각보다 괜찮은 일이다. 결혼을 통해서 사회 통념에 반하지 않는, 주류사회의 '정상성'을 획득해내는 것은 물론, 안정적이고 책임감 있는 이미지를 부여받는다. 일종의 '역할 모델'을 해낸다는 점에 있어서 사회적으로 큰 신뢰를 얻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남성들은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서, 혹은 '해야 되니까' 결혼한 경우도 많았다. 특히 우리 윗세대에는 부지기수일 거다. '사랑하는 사람과 법적인 계약관계를 맺고, 함께 삶을 영유해나가겠다' 이런 개념이 아니라, 마치 결혼을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는 과정처럼 봤던 것이다. 그런 남자들이 결혼 생활을 수월하게 했느냐, 당연히 아니다. 결혼생활이 '둘의 관계'에 초점이 맞춰진 게 아니라, 결혼(부모 부양도 종종)-출산-육아-집 장만- 차 장만과 같은 코스 통과에 초점이 맞춰졌으니 나중엔 남성이나 여성이나 결혼 생활이 무의미해져 버리는 거다. 


그러나 남성들은 여전히 결혼하기를 원한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여전히 '집안'과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고 성인(주류 남성집단)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이다. 그리고 그 반대의 지점에선 꽤나 피곤한 일이 많이 발생한다. 무엇보다도 남성에겐 '결혼'이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면 도움이 됐지, 절대로 피해를 끼치진 않는다. 결혼으로서 얻는게 많다는 이야기다.


3. 과거엔 여성들에게도 결혼은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여성들은 공공연히 결혼을 거부한다. 부모세대 중에서도 딸에게 "결혼하면 손해다, 혼자 하고 싶은거 다 하며 살아라"고 말하시는 분들이 종종 보이고 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부모 세대의 결혼에서 여성들이 너무나 큰 피해를 봤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남성들의 '역할 모델' 수행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그 역할이라는게 새로운 세대에 맞는 무엇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그 윗세대인 전후세대 문화의 '전승'에 가까웠다. 


남성은 돈을 벌고, 가정일은 여성이 전적으로 담당을 하며, 남성이 돈을 번다는 이유로 여성은 사회적 지위와 자주성을 박탈당한채, 남성의 집안에 종속되어야 했던 현실을 세대를 이어 반복했다. 여성들의 교육기회가 늘어나면서, 대학을 나온 고학력 여성들도 예외없이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일을 하면서 육아와 가정일을 하는 슈퍼우먼이 되든가, 경력이 단절되어 가정주부로 살아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육아와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아주 가치있는 일로 평가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엄마'를 보면 딸들은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을 거다. 반면 아들들은 엄마와는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별 생각이 없었을 거고...


두 번째는 결혼-출산이 전혀 자신의 성공이나 발전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혼해도 남성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단 하나의 지장도 없다. 아까 말했다시피 오히려 이익을 받으면 받았지. 반면 여성은 출산전후에 원활하게 사회생활이 힘들며, 골때리는 남편을 만나면 육아와 집안일까지 도맡아해야 한다. 


출산으로 인한 인사 불이익, 심지어 해고가 여전히 일어나고 있고, 그래서 결혼은 하고 아이를 안 낳는다고 하면 시부모 친부모 직장 상사 동료 친구까지 "왜 안 낳느냐"며 압박을 준다. 남편이 정색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경력 단절을 최소화하기 위해 출산 후 일찌감치 다시 일을 시작하면, 황아무개 분같은 분이 "엄마 집밥" 운운해버리는 등 "아이는 그래도 엄마가 잘 돌봐야 하는거 아닌가"라는 죄책감을 가지도록 사회가 강요한다. 애를 낳아서 일을 한동안 못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불이익인데, 거기에 이중삼중으로 고통을 준다. 물론 주류사회는 그걸 '군대 2년'과 비교하며 퉁쳐버린다. 


여성도 일을 하고 남성도 일을 하는데, 정작 '결혼'생활 속에서 생기는 희생, 불편함, 한국적 모순들은 전부 여성이 짊어져왔고, 많은 사람들이 그런 관습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자연스럽게 그건 여성이 일을 하는데 지장을 준다. 무언가 도전하고 싶거나, 자신의 영역에서 주도적으로 나서고 싶어도 '내가 결혼했다는 사실, 누군가의 아내거나 엄마라는 사실'이 너무나 큰 부담이 된다. 여성이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그리고 편하게 살기 위해서 결혼을 기피하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거다.


4.  나는 앞서 말한 여론조사 수치보다 여성들의 '결혼 기피' 비율이 더 높다고 보며, 이런 분위기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더 급격히 퍼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아주 필연적인 현상이며, 지극히 주체적인 선택이다. 이론을 이야기하고 투쟁을 실천하는 페미니즘이 아닌, 개인적이며, 생활로써 페미니즘을 증명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몇몇 활동가들이 자신의 이념적 이유를 들어 비혼, 혹은 사실혼을 택했다면 지금은 아주 현실적인 이유로, 자신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서 결혼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결국 한국에 뿌리깊게 박힌 가부장주의를 위협하게 될 수밖에 없다. 왜냐면, 더 이상 '가부장' 생산이 원활하게 안 되니까.


출산율이나 결혼률이 떨어지면, 처음에는 국가를 비롯한 주류 남성 기득권층이 헛소리를 하면서 결혼해! 애낳아! 난리를 칠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들이 성차별'이나 사회 저변에 깔려있는 여성혐오 문화를 없애서라도 결혼이나 출산을 하게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틀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시혜적이 아니라, 여성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어야 함은 두 말할 게 없을 거고. 


그간 주변의 여성들로부터 여성들의 결혼 거부 움직임에 대해 들으면서, 한국의 여성 인권 상황과 그간 여성들이 결혼을 통해 얼마나 큰 고통을 받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굉장히 씁쓸한 기분이 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혼 거부'를 통해 진정으로 남성들에게 충격파를 던져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기대같은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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