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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Sep 23. 2018

명절, '애달픈 축제'

1년에 2번, 가부장제의 심폐소생술을 위해 남성 혈족들이 모이는 날

가끔 정말 궁금하다. 명절이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기엔 1년에 두 번 무너져가는 가부장제를 복구하기 위한 애달픈 축제다.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현대인들을 '가부장제 기반 정상가족' 부흥회에 억지로 끌고온다. 제 아무리 잘난 여성이라도 이 축제에서는 그냥 '며느리'로 만든다. 오랜만에 '남자'와 '어른'을 중심으로 서열이 정해지는 것을 보며 가부장제는 '아직 우리 안 죽었지' 라며 숨을 헥헥거린다.


명절이라는 축제는 사회의 상식과는 다르게 작동된다. 이를테면 아버지가 일하느라 명절 차례에 참석을 못하면, 나는 '장자의 장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어른들을 제치고 가장 먼저 절을 한다. 장을 보거나 음식을 만드는 등 차례상을 차리는데 거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음에도 나는 일종의 '제사장'이라는 권위를 부여받는다. 이게 대체 뭔 짓이란 말인가. 그런 모습을 내 여자 사촌동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그저 민망할 뿐이다.


이렇듯 남성의 혈족 중심으로 모여서, 남성 혈족의 조상들을 기리는 가부장제 축제에서 철저하게 여성은 배제된다. 그저 뒤치다꺼리를 하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경기도 안성의 외갓집 차례를 한번 가봤다. 여긴 아예 여성은 절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명절 증후군'은 단순히 가사노동이 힘들어서 생기는것만은 아니다. 갑작스럽게 '시민'에서 '노예가 되어, 긴장상태에서 시키는대로 일을 하다가 비난까지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드는 '모멸감'이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여성으로서 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다는 걸 1년 중에 가장 강렬하게 느끼는 날이 바로 명절이기 때문이었다 (...)  시댁에서 나는 시부모님의 배려가 있어야 친정집으로 떠날 수 있고, 설거지를 안 시키는 것을 '감사히' 여겨야 한다. 평소 두 사람만 있을 때는 느낄 필요 없었던 그와 나의 계급 차이를 나는 앞으로도 명절마다 느껴야 할 것이다." (박은지, <'며느리'로의 첫 명절, 나는 '시댁 소속'이 아닙니다> 중 


지난 추석에 편집자로서 참여한 '며느라기' 기획에서 박은지씨는 며느리로서 명절을 보낸 소감을 위와 같이 밝혔다. 그는 "나는 그냥 며느리였다"며 명절이라는 행사가 여성을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최하층민'으로 만든다고 말한다. 표면적으로 유지되어온 아내와 남편의, 딸과 아들의 동등한 관계가 이런 전사회적인 '가부장제 축제'에 의해 부정된다. 



사실 평소에 시가와 비교적 사이가 좋거나, 아니면 시어머니로부터 육아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왜 명절에만 문제가 생기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명절은 단순히 부부와 남자 부모간의 문제가 아니다. 명절 행사는 곳곳에 퍼져살던 남성 혈족들이 각자 핵가족 형태의 정상가족을 이끌고 모여드는 형태다. 개인간의 계약이나 룰이 개입되지 못하고, 서열화된 관습이 더 강하게 적용한다. 이 관습을 수호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70~80대고, 대체로 질서를 바꿀 생각을 못한다. 혈연 이외에는 공통점 없는 사람들이 모여 그저 눈치만 보다보니, '하던대로 하게' 되고, 시대에도 안맞는 '가부장제 축제'는 계속된다. 


명절이라는 축제장에서 퍼지는 전 냄새를 신호탄으로 남자들은 벌렁 드러누우며 자신의 임시적이지만 새로운 서열을 확인한다. 물론 안 그런 남자들도 늘어나고 있지만, 관습과 '보고 배운 것'은 참 무서운 법이지 않은가. 


"요리, 설거지, 청소, 빨리, 다 잘해요. 근데 이상하게 이 집 대문만 통과하면 다른 차원으로 넘어온 것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바닥에 척 들러붙더라고요." (조남주 <가출> 중)

조남주의 단편 <가출>에서 화자 기준 '오빠'의 행태를 일컫는 올케의 말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법하다. 맞벌이에 육아까지 하며, '네 일' '내 일'을 따질 새 없이 가사노동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명절의 '시가'에서는 가부장 노릇을 하며 여성들을 부리면 황당할수밖에 없다. 동등하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어떤 경우에는 '상전' 노릇을 하고, 나의 고통에 대해서도 철저히 무관심해진다면? 안 싸우기가 힘들다. 2월과 10월에 그 전달보다 이혼율이 괜히 높아지는 게 아니다. 


10년 전, 아니 20년 전에도 명절 동안 겪는 여성들의 고통을 다룬 기사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아직도 매년 명절마다 비슷한 기사는 계속 쏟아져 나온다. 언론들이 게을러서? 아니다. 수십년이 흘러도 속시원히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에, 여전히 독자들로부터의 반향이 크기 때문이다. 


불행중 다행으로 명절의 풍경은 서서히 변화하고 있긴 하다. 페미니즘 리부트는 이 변화를 가속화시켰다. 웹툰 <며느라기> 열풍, 영화 <B급며느리>, 책 <며느리 사표> 등은 달라진 분위기를 상징한다. 도련님, 아가씨 등의 성차별적 호칭에 대해서 꾸준한 시민들의 문제제기가 있자, 국립국어원도 개선 의지를 피력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더 이상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넘어가지 않는다.


앞으로 페미니스트와 결혼하게 될 20~30대 남성들이 명절을 싱글때처럼, 혹은 관습에 따라서 보내면 어떤 일이 생길지는 불보듯 뻔하다. 평등한 파트너가 되려면 명절도 평등하게 보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물론 어렵다. 바른 소리 하기도 어렵고,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쉽지 않다. 한 마디로 엄두가 안 나는 일 투성이다. 하지만 남자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버티고 있었기에 아직도 가부장제가 명절때마다 위세를 부린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가사노동을 최소화할 수도 있고, 처가에서 명절을 지낼수도 있고, 명절 여행을 갈 수도 있다. 남성들이 호응해주고 연대하면 변화는 조금 더 빠르게 온다. 세계일보의 <한국여성 싫다면 일본여성 만나세요 "제사·시부모님 모시고 싶어요"> 따위의 백래시 메시지에 현혹되지 마시길 바란다. 이제 온전히 '평등한 부부의 모습'을 그릴 때도 되지 않았는가. 


가부장제의 큰 수혜자이며, 30대 싱글인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쩌면 주제넘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행동을 내 글에 강제로 얽매이게(?) 하기 위한, '다짐'으로서의 글이라고 생각하고 쓴다. 내 세대의 많은 남성들이 부디 가부장제의 '연명'을 거부한, '비겁하지 않은' 남성들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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