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사생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사과드린다"
2000년대 초 불법촬영 피해자였던 연예인이 기자회견을 열고 한 말이었다. 심지어 이를 전한 연합뉴스 기자는 "최근 `섹스비디오'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ㅇㅇㅇ은"이라고 리드를 썼다. 여성 피해자가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인식 아래서 '몰카 문화'는 성장했다. 지금도 당시에 남자 어른들이 모여서 "누구 비디오 봤냐"며 껄껄거리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죄의식이 없던 어른들 밑에서 자식 세대가 제대로 자랄리가 없었다.
각 집에 초고속 인터넷이 깔리던 시절이었다. 핸드폰에는 카메라가 달리기 시작했다. 데스크톱에는 웹캠이 달 수 있었다. 누구든 찍을 수 있었고, 누구든 쉽게 퍼트릴 수 있었다. 소리바다(소리바다에선 음악뿐만 아니라 포르노와 불법촬영물도 많이 공유됐다) 같은 p2p에서 대충 검색만 해도 불법촬영물이 쏟아졌다.
그러다보니 지금의 20~30대 남성은 불법촬영물을 아주 자연스럽게 접했다. 그러니까 야동의 한 종류, 즉 '국산 야동'으로 생각한 것이다.(한국도 아니고 '국산') 야동을 검색하면 불법촬영물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으니 그게 왜 문제인지도 못 느꼈다.
심지어 직접 유출하기도 했다. 하두리 웹캠과 버디버디가 유행하는 시절, 여성들이 아마 자신의 애인에게 보여주려고 찍은 나체 사진이나 자위 영상은 남자들에 의해 인터넷에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따르면 '고전'이 됐다.
수많은 영상들을 보고 자라며, 불법촬영이 '범죄'라는 사실이 인식되지 않으니 실제로 찍는 수준에 이르렀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에서 껄렁대던 아이들이 선생님이 지나갈 때 핸드폰으로 치마 속을 찍었고, 남자 아이들이 그걸 돌려봤던 것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그런 행위가 '놀이'였다. 직접 찍었는데 퍼트리는 게 어려울리 없다.
휴대폰 카메라가 발전하면서부터는 연인과의 성적인 행위를 담은 영상을 찍은 사진과 영상을 남성이 유포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노트북 수리기사들이나 우연히 제삼자가 유출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절대 다수는 영상을 찍은 남성이 직접 퍼트린 것이었다.
'야설 사이트'로 유명했던 소라넷에서는 어느새 따로 게시판을 만들어 '몰카' 사진을 평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로 공유했고, 칭찬했다. 이 사진들은 당연히 p2p 사이트를 통해 추가적으로 공유됐다.
그렇게 몇년이 흐르자 남자들은 완전히 무감각해졌다. 영상 뒤에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 알아도 그것이 뭐 대수냐는 식이었다. '그들은 영상에 나온 여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공유했고, 페이스북을 털었으며, 어떤 경우엔 '유작'이라고 붙였다. 연예인으로 추정된 사람이 과거 '버디버디 영상'을 찍었다며, 피해자인 그의 얼굴을 캡처해서 놀리고, '그 연예인이 맞는 증거'라고 올리기까지 했다.
학교에서 선생님을 대상으로 찍을 정도로 불법촬영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남자들, 웹하드-파일구리 등 P2P-토렌트-텀블러 등의 공유플랫폼, 그리고 불법촬영물에 대해서 품평을 하고 농담을 하는 남초 커뮤니티. 이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된 '몰카 문화'는 인터넷 시대 남성 문화의 핵심 축이다. 이는 '여성'을 인간으로 안 보고 철저하게 성적 대상화해서 생각하게 만들며, 포르노보다 더 심각하게 악영향을 미친다. 남성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여성이 고통받아도, 심지어 죽어도 괜찮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사진과 영상들이라서 그렇다.
한 작가는 2015년에 "나는 몰카나 유출영상을 본다(...) 몰카나 유출영상에는 '사랑'이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음악가가 2014년에 발표한 '야동을 보다가'라는 곡에서는 "나랑 사귈 때에 너는 저런 체위 한 적 없는데 화면으로 보니까 내 xx가 더 크다"라는 가사가 있다. 이들이 저런 글과 가사를 남길 수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놀랍지 않다. 작가의 글은 소위 '국산 몰카'를 찾아본다는 남자들 대다수의 생각과 다를게 없고, 음악가의 가사는 불법촬영물을 본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할법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나는 '몰카 문화' 안에 속해 있던 가해자다. '무감각해졌다'는 그들 중에 한 명일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면서 정말 참담할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러나 내가 가해자임을 인정해야, 그리고 남자들 대부분이 스스로를 가해자였음을 받아들여야 변화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최주연 기자가 쓴 <더 이상 여성들은 '소비재가 아니다>라는 글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나도 피해자'라고 말하는 폭로가 '미투'를 완성했다면, 강간문화는 '나도 가해자'이기 때문에 침묵으로 완성된다."
가해자로서의 죄의식을 갖고, 그 죄를 씻기 위해 남성문화에 균열을 내는 행동을 지속해나가야 한다. 남자들이 더 이상 '그 따위로' 살면 안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