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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Oct 06. 2018

<내 딸의 남자들>, 아빠들의 이상한 딸 품평회

딸은 가부장의 소유물인가?


*아래 글은 2017년 7월에 쓴 것으로, <내 딸의 남자들> 시즌1 방영 당시에 작성됐습니다. 현재 이 프로그램은 꾸준히 인기를 끌어 시즌4가 10월 중 방영될 예정입니다. 시즌2나 3도 간혹 예고편 등을 보면 프로그램 포맷 자체는 크게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딸을 아버지의 소유물로 여기는 '가부장적 인식'에 기대어 인기를 끌거나 화제가 되어왔습니다. 가부장제를 오히려 고착화시키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늘어났으면 하는 생각에, 다시 글을 올려봅니다.


오랜만에 tv채널을 돌리다가, E채널의 <내 딸의 남자들: 아빠가 보고 있다>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아빠들이 딸의 소개팅, 썸, 연애 등을 바라보는 포맷이다.


답이 없다. 아빠가 딸의 주인인가? 딸은 아빠의 소유물인가? 데이트폭력의 한 유형으로 분류되기도 하는 '통제 행동'은 아빠가 딸을 집안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가부장 문화에서 비롯됐다. 그런데도 딸에 대한 과도한 간섭과 규제를 '사랑'으로 포장하는 방송들은 가부장제를 은연중에 더 공고하게 만들고 있다.


'힘이 빠진' 중년들조차 집안의 여성들을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욕망만은 자제가 안 되는 모양이다. 이 프로그램은 딸의 사생활에 카메라를 들이대어 그들이 남성들과 데이트하는 것을 본다. 스튜디오에 모인 아버지들은 그걸 보고 끊임없이 서로의 딸에 대해 이야기한다. 딸의 인지도 상승에 도움이 될까 싶어 출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목적이건 간에 출연자들은 서로의 딸을 '관음'하고 있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오늘 본 방송분에서는 중견 배우 정성모의 딸 정연과 그의 소개팅 상대였던 한 남자의 애프터 데이트가 나왔다. 남자는 스물일곱살 3D 아티스트라고 한다.


방송을 보고 몇가지 거슬렸던 점을 정리하자면


첫째, 정연은 소개팅 남성에게 존댓말을 하고, 남성은 정연에게 반말을 한다. 다섯 살 차이였는데, 상호 존대를 하든가 반말을 해야하지 않나? 게다가 남성이 꽤 강한 경상도 사투리까지 쓰니까 정연의 존댓말과 위화감이 엄청났다. 연상여성 연하남성 구도의 가상 연애나 소개팅같은데서 남성이 존댓말 쓴 적이 있나? 애초에 남성이 연하인 경우가 거의 없었고, '동생으로 보이기 싫다'면서 반말 찍찍 했겠지.


둘째, 남성이 연남동 맛집에 이끌고 갔는데, 자기는 잘 못 먹고 정연만 맛있게 먹는다. 남성은 알고보니 해물을 못 먹지만 정연의 인스타를 보고 그의 취향에 맞춰준 거란다. 여기서 아빠들이 다 감동한다. 이런 상황 연출한 사람도 저런 모습을 '감동'이라고 여기니까 저렇게 시켰겠지?


하지만 메인메뉴를 못 먹어서 여성이 "왜 안 먹느냐" 할 정도의 식당에 가는 것도 실례다. 불필요한 미안함을 주고, 서로 잘 먹고나서의 추억도 공유하기 힘들다. 여성이 꼭 저게 먹고싶다고 말하지 않은 이상, 본인이 자기 못 먹는 음식을 데이트 코스로 짜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오버'다. 남성들이 생각하는 '배려'에는 자아도취적인 측면이 있는 게 아닐까 고민하게 하는 대목.


셋째, '들이대기'에 대한 미화가 심하다. 남자가 결혼은 언제 할거냐 물어보고(두번째 만난 사람이 스물두살에게), "내한테는 감이 안 오나", 타로 집에서 서로 손 잡으라고 하는 타로집 주인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것 등등... 세련되지 않고 무례하다 싶은 행동에 대해 '남성의 박력'으로 포장하고 아빠들도 내심 동의하는 눈치를 보인다. 남성들의 거친 행동, 두서없는 호감 표시등이 대중매체에 의해 미화되는 걸 좀 그만보고 싶다.


'들이대기'에 대한 미화, 그걸 또 아빠가 쳐다보고 있다. 기괴한 장면

넷째, 정연이 소개팅 남성에게 호의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웃거나 손을 잡거나 여행가자는 제안에 승낙할때) 정성모가 움찔하거나 안절부절 못한다. 이 프로그램은 아버지의 이런 반응을 재미 포인트로 잡았다. 아무리봐도 그저 '딸의 정조'가 지켜졌음 하는 아버지들의 발악'으로밖에 안 보여서 하나도 안 웃겼다. 정연이 여행을 간다니까 누군가가 "정연이 성격 보면 당일치기일거예요"라고 말하는 부분은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어떤 성격이면 여행지에서 자고 오는 것인가? 그 말을 듣고 남자들의 저열한 '딸 품평회'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다섯째, 정연과 소개팅 남성이 여수로 여행을 간다. 남성이 먼저 기차에 타고 있으라고 해서 정연이 타고 있는데, 기차는 출발하고 남성은 오지 않았다. 전화해보니 남성은 "내가 기차를 잡을게"등의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한다. 정연이 황당해서 제작진에게 "이거 실제 상황인 거예요" 물어보기도 한다. 여기에서 이번화 정연의 이야기가 끝났는데, 아무래도 "힝 속았지"하면서 이벤트를 벌이는 게 다음화에서 나올 것 같다. 가상썸 가상연애 프로그램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좀 이상한 이벤트가 아닐까 싶다. 


우결에서도 이런 경우없는 이벤트는 본 적이 없다. 당황하고 깜짝 놀라게 하는 게 일방적인 장난에 가깝다는 건 둘째치고, 딸을 보는 프로그램인데도 정작 딸의 감정에 대해서는 다룰 생각이 없다는 게 이 지점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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