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훈 Oct 10. 2018

'여자치고'라는 말, 칭찬 아니라 차별입니다

여성 음악가들의 '지속 가능성'을 어렵게 만드는 것들 

"여자치고 드럼 좀 치던데"

"밴드에 여자가 있으면 재수가 없다던데"


밴드 '에고펑션에러'의 보컬 김민정은 자신과 밴드 멤버들이 들었던 말들을 토로했다. 드러머 백수정도 '여자치고 세게 친다'는 말에 시달렸다. 어디 그뿐인가. 2016년엔 밴드 쏜애플의 한 멤버가 여성들의 음악에서 '자궁 냄새'가 난다고 말했던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위에 서술한 내용이 담겨있는 여성 음악가 인터뷰집 <두 개의 목소리>는 인디신을 비롯해 음악계 전반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여성의 음악을 가로 막는 현실에 대해 지적한다. 인터뷰집에 나온 9명의 음악가들이 공통적으로 '여성으로서 음악하기'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소위 인디신에서도 '남성연대'는 공고하고 그 안에서 여성은 주변화된다. 은연중에 구조화된 배제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기 어렵게 만든다고 여성 음악가들은 증언한다.

"나이에 대한 불안을 모르고 무대에 오르는 언니들은 진짜 손에 꼽을 만하다. 여성은 이렇게 무대에서 통하는 수명을 걱정하는데, 20-30년씩 활동하는 남자 선배들은 엄청 많다. 왜 여성은 노래를 지속하기 어려울까.(김민정 인터뷰 중 인터뷰이 서술 부분)"
"이십대 위험한 여자까지는 상업적으로 예술적으로나 두루 통한다. 결혼한 삼십대 여성, 안정을 얻은 사십대 여성은 과연 매력적인 존재일까. 우리는 그런 여성을 제대로 사랑해본 경험이 있을까.(...) 오지은이 그랬던 것처럼 여성의 세계에선 생산보다 중단과 거절의 경험이 더 많이 쌓인다."


나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인디 록음악을 들어왔다.생각해보면 여성 음악가는 상당히 많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 음악가들이 주목을 받는 영역은 굉장히 한정적이라는 점이다. 일단 여성 밴드가 드물다. 또 보컬 이외의 악기 연주자가 별로 없다. 유명한 음악가들이 모여 리메이크 무대를 만드는 tvn의 '노래의 탄생'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보컬만 여자이고 연주자는 전부 남자인 무대들이 꽤 있었다.


보컬 수란을 제외한 연주자들은 전부 남자다.


장르적으로도 그렇다. 어쿠스틱+모던록 장르는 여성 음악가들이 강세였다. 그러나 이외의 장르에서는 압도적으로 남성 밴드가 득세했다. 몇년 전 유행했던 네오 개러지나, 신스팝 리바이벌 등을 비롯해 고전적인 펑크, 하드록, 메탈 등에서 여성의 존재는 희미했다. 


여성이 주목받는 영역은 한정적이니, 그만큼 운신의 폭이 좁다. 음악적인 성장이나 변화를 도모하기 어려울뿐더러,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진로가 다양하지 못하다. 또 음악계 역시 출산에 의한 경력단절 문제에서 예외일수 없을 것이다. <두 개의 목소리>의 인터뷰어들이 '지속가능성'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기우라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여성 음악가들이 맞닥뜨리는 '벽'은 근본적으로 여성 음악가들의 음악을 하찮게 보는 문화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 여성 음악가들의 음악을 비교적 '가볍고', '감성에 치우친(?)' 음악으로 여기는 문화는 평단과 팬덤에도 널리 퍼져있는듯 하다.


"최근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음악, 하면 어떤 정형이 형성됐다. 어쿠스틱 사운드와 ‘일상’, ‘감성’, ‘치유’ 등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결합해서 음악의 여러 축 중 서정과 달콤함의 좌표에 방점을 찍는다. 야광토끼는 이런 흐름과는 차별화된 음악을, 모범적으로 들려준다.”


평론가 김작가의 야광토끼 1집 평은 여성들의 음악이 어떤 식으로 음악계에서 평가되는지 보여준다. 즉,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정형을 하등한 것으로 보면서, 야광토끼는 그렇지 않았으므로 '잘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평론가 김정호는 역시 "그녀가 보여준 신선한 음악이 지금까지 한국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좀처럼 가지 않았던 길이기 때문이다"라고 이 앨범을 평했다. 좋게 말했지만, 결국 '여자 치고 잘했다'다. 평론가들의 이런 코멘트는 인디신에 있는 남성 뮤지션들의 시선과 크게 다를까? 쏜애플 멤버의 '자궁냄새' 발언을 볼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렇듯 남성들은 여성뮤지션을 '여류'라는 틀에 가둬놓고 제 멋대로 '여신' 아니면 '마녀'의 호칭을 붙였다. 


요조는 페미니즘을 발견하고 "그 수식(홍대 여신) 자체가 문제있는 시선에 나왔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온스테이지 캡처 


지난 9월에 선정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을 보자. 대중음악 명반 100장 중 남성 혼자 혹은 여럿이 만든 앨범이 83장 여성이 만든 앨범이 9장, 혼성이 8장이다. 특히 2000년대에 선정된 26장 중 여성 음악가가 참여해서 만든 앨범은 5장이었다. 장필순, 이소라, f(x), 3호선 버터플라이, 롤러코스터의 앨범이다. 장필순과 이소라는 이미 80~90년대부터 활동해서 '전설'이 된 음악가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결과는 더욱 아쉽다. 


평론가 서정민갑은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이라는 글을 통해 이번 선정에 대해 "50대 초반부터 20대 중후반까지의 남성 음악전문가(전문가 47명 중 여성은 3명)들, 그 중에서도 40대 이상의 남성 음악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뽑은 결과"라고 말한다. 좋은 지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앞으로도 수년, 혹은 10년 이상 계속 '음악성'에 대해 규정할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음악가는 음악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야 기반이 생기고, 음악작업도 많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여성이 한 음악이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되는 상황에 놓인다면, 여성 음악가들이 음악을 지속하기는 어려워질수밖에 없다.


인디음악의 팬덤이나 소비자들 역시 여성 음악가들을 음악 자체보다는 '가십거리'로 즐기는 경향이 있다. 나도 홍대 클럽 같은곳을 가거나 커뮤니티를 드나들면서 별별 이야기를 다 들었다. '성형설'은 기본이고, 남성음악가와의 러브라인, 누구는 공연 때 발냄새가 난다같은 이상한 이야기에  "여성 음악가 xxx가 학교에서 특이한 행동을 한다"까지... 이러한 소문들이 주로 여성 음악가를 중심으로 쏟아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인디음악 팬들은 없을 것이다.


페미니즘 문학 비평서인 <문학을 부수는 문학들>에선 1세대 여성작가인 김일엽-김명순-나혜석에 대한 소문(스캔들)이 끊임없이 서사화되고, 이것이 여성작가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상황이 나온다. 물론 이 '소문'들이 널리 퍼지는 가운데 이들의 문학은 힘을 잃었다. 이와 비슷하게 여성 음악가들을 가십거리로 삼고 성적대상화하는 마초적 시선은 여성이 하는 음악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식으로 작동한다.


또한 여성에게는 앞서 말했다시피 구조적으로 기회가 제공되고 있지 않기도 하다. <두 개의 목소리>에서 소히는 "프로듀싱은 사실상 남자가 독점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남성 음악가들은 (기계나 장비 등) 실용적인 것에 접근할때, 여성들은 곡을 쓰는 일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며 남성의 여성의 문화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소히가 말한 '문화' 역시 어쩌면 남성중심의 음악계 문화 의해 만들어진 것 아닐까. 기계나 프로그램을 만지는 프로듀싱이나 연주 등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분위기에, '여자 치고'가 만연하는 분위기에서 여성에게 중책이 주어지기는 힘들다. 롤모델도 거의 생기지 못했을 것이다.


'두 개의 목소리'는음악에 필요한 육체적인 목소리와 여성을 이야기하는 정신적이고 정치적인 목소리를 뜻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남성연대의 저평가나 성적대상화, 음악계의 '유리천장'에도 불구하고 여성 음악가들은 계속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흐른은 더 이상 '여자 치고'가 통용되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한다. 


"여성의 실력과 수에 있어서 상당한 토양이 만들어졌고, 여성 음악가가 취하는 장르 또한 강성 계열부터 전자음악까지 다양해졌다. 나아가 자신의 위치를 고민하고 스스로 결정한 여성 음악가가 늘었다.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는 동료들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두 개의 목소리>를 읽으며 과거 인디음악의 팬으로서 했던 생각을 돌이켜보면 부끄러워졌다. 나 또한 여성 음악가들의 음악을 ’감성팔이’라며 내심 깎아내리며, 40대 평론가들의 비평에 힘을 실어줬다. 이제는 그것이 얼마나 편견과 혐오에 기반했던 생각이었는지 잘 안다.


여성 음악가들이 스스로 길을 개척할때, 남성들이 적어도 방해는 되지 말아야한다. 그러나 '음악하는 여성들' 특히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음악에 담는 여성들'은 꾸준히 남성들의 혐오에 노출된다. 여성음악가들이 더 오래, 안정적으로 활동하길 바라는 남성들이라면, 이젠 '여성 음악가를 폄훼하는 남성'들을 향해 돌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 딸의 남자들>, 아빠들의 이상한 딸 품평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