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찌른 인기, 비평가들과 록 마니아들은 시큰둥... 넥스트와 비슷해
퀸은 생각보다 저평가받는 밴드다. 이렇게 유명하고 후대에까지 인기가 많은데 무슨 저평가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이들의 앨범은 위대한 '정전(正典)' 대우를 받지 못했다. 아마 지금도 4집 빼고는 록 역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을 것이다.
록 음악을 막 듣기 시작할 때 이런저런 음악 관련 책을 보거나, 커뮤니티에서 밴드나 앨범들을 추천받으며 듣는 폭을 넓혔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어디서도 퀸이나 퀸의 앨범을 거론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퀸은 비틀즈만큼이나 유명한 밴드였기에 모르지는 않았지만, 록 음악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비틀즈와는 다르게 주요하게 언급되지가 않았다.
사실 이건 퀸의 음악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인데, 퀸의 음악은 장르 자체가 불분명하다. 평론가나 마니아층은 '작가주의'(?)를 표방하는,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자기세계를 가지고 있는 음악가들을 사랑하고 높게 쳐준다. 그러나 퀸은 하드록, 디스코, 훵크, 신스팝 등 이런저런 음악을 다 건드려서 말도 안되게 잘해냈다. 허나 부작용도 있다. 여러 장르를 소화하는 바람에 앨범이 하나의 이야기라면, 그 이야기의 유기성과 일관성도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슈퍼밴드임에도 한 장르의 뿌리나 거장이 되지 않았다는 점, 상업적으로 너무 거대한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 오히려 이들을 저평가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다.
실제로 잡지 <롤링스톤>이 악평을 계속 퍼붓는 바람에, 퀸과 롤링스톤의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다고 전해진다. 사실 레드제플린이나 핑크플로이드 역시 디스코그래피상으로 아주 일관된 '장인밴드'가 아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퀸이 받는 저평가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온갖 음악을 다 끝내주게 만들 수 있는 좋게말하면 '전천후', 나쁘게 하면 '잡탕' 슈퍼밴드의 역할은 한국에선 90년대 넥스트가 하고 있었다. 90년대 록 음악 침체기에 넥스트는 유일하게 아레나급 공연이 가능했던 밴드였고, 앨범도 50만장을 거뜬히 넘겨 판매하고 있었다.
반면 록 마니아들이나 평론가들은 '백화점식 앨범구성'(잡탕)으로 일관하면서 인기를 독차지하는, 아이돌 출신인 (그러면서 말도 재수없게 하는) 신해철이 이끄는 넥스트를 저평가했다. '정통'이 아니라는 비난부터, '뜨거운 가슴보다는 차가운 머리가 앞서는' 음악이라는 황당한 평가까지 들어야 했다.
신해철은 퀸을 꽤 좋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음악적 다양성이나 무대 구성에 온갖 공을 들이는 등 넥스트 자체도 퀸과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넥스트 Regame 앨범에서는 퀸의 2집 앨범 표지를 오마주한 표지를 선보였고, 그의 마지막 앨범에 들어있는 프린세스 메이커는 Another one bites the dust가 연상되도록 만들기도 했다. 물론 넥스트는 '신해철의 밴드'인데 비해 퀸은 비교적 수평적인 밴드라는 점, 신해철이 프레디머큐리만큼 노래를 기가막히게 부르지 못한다는 점은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대신 신해철이 말은 천 배정도 잘할 것이다).
90년대 후반 평론가들로부터 숱한 조롱 (심지어 이 조롱에는 언니네이발관의 이석원도 가담했고, 나중에 둘이 화해해서 언니네 3집의 라디오 광고 나레이션을 신해철이 맡았다)을 받던 넥스트였는데, 심지어 신해철은 2000년대부터는 음악적으로 쭉 하향세였다. 아마 그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넥스트 음악은 이번 대중음악 명반에서 9위로 선정될만큼 재평가받진 못했을 것이다. 퀸의 이야기가 신화가 되고, 그들의 음악이 영화를 비롯한 갖가지 매체를 통해 다시 조명될 수 있는 것 역시 프레디머큐리의 죽음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살아생전 받았던 음악적 비난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퀸을 두고 계보를 만들지 못한 밴드라고 평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한국에서는 공교롭게도 퀸의 계보를 넥스트가 이어나간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