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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Nov 09. 2018

'여자밥', '남자밥'이 왜 따로 있어야 하나요?

돈은 똑같이 내는데, '여자라는 이유로' 더 적은 양의 음식을 받는다 


아직도 '여자밥'과 '남자밥'은 따로 있다.


분명 같은 돈을 낸다. 그런데 그릇에 담긴 양이 다르다. 오래전부터 황당한 식당문화라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여자손님과 남자손님의 밥을 따로 주는 행태였다. 사소한 것 같지만 명백한 성차별이다. 


주로 대학가 식당에서 저렇게 성별에 따라 밥의 양을 따로 주기 때문에, 아직도 저런 식당이 있는지 체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회사가 상암에서 광화문으로 이전한 뒤에 '대놓고 성차별' 하는 곳을 광화문에서 두 곳이나 발견했다. 


먼저 간 곳은 칼국수집이었다. 언뜻 보기에도 아주 푸짐해보이는 세 명 분의 그릇을 들고 서버분이 오셨다. 그런데 대뜸 "남자분들 걸 먼저 받으시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그 이후에 나오는 여자 선배들 그릇은 딱 보기에도 면이 1/3은 적어보였다. 상암에서는 이런 경우가 없었기에 놀랐다. 상암보다는 광화문이 올드하고, 남성중심적 문화(거나하게 취한 넥타이 부대로 상징되는)가 남아있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이런 식당을 볼 줄이야...


그런데 최근에는 돈가스를 먹으러 가서 또 다시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는 사장님이 주문이 들어간지 몇 분 뒤에 "매운거 누가 드시냐"라고 물어보더라. 아니 이걸 왜 물어보지? 불길했다. 아니다 다를까 후배의 돈가스는 내가 받은 그릇보다 한 덩어리(정확히 말하자면 1/2 덩어리 정도)가 덜 나왔다. 빈정이 확 상했다. 분명 같은 값을 냈는데 왜 다른 그릇을 받아야 싶었다. 하지만 문제제기를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남자손님은 2와 1/2 덩어리, 여자손님은 2덩어리를 받는다.

칼국수면과 돈가스 양의 차이는 (리필 할 수 있는 상황에서의) 밥을 적게 받는것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다. 분명 같은 돈을 줬는데, 여자와 남자가 받는 음식의 양이 다르다면 이게 성차별이 아니고 뭘까. 이를테면 편의점에서 똑같이 1000원 주고 껌을 한통 샀는데 남자들에게는 10개가 든 것을, 여자들에게는 8개가 든 것을 준다면 난리가 안 나겠는가.


물론 음식점 사장님들을 비난하고 싶진 않다. 장사를 해보니 남자들은 부족하다고 말하고, 여자들은 남긴다. 그렇다면 애초에 남자는 양을 많이 주고, 여자들은 적게 주는 식으로 하는게 이래저래 경제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목소리 큰' 남자 손님들의 포만감을 채워주면서, 잔반은 줄일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졸지에 '똑같은 돈 내고, 덜 받는' 여자들의 입장은 왜 생각 못했을까. 아마 그것은 '여자들은 어차피 조금 먹으니까 (남자들보다) 적게 줘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성차별적 편견이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부터 이곳을 이용하는 직장인들이 이에 대해 이상하다고 생각해왔다면, 당연히 유지되기도 어려운 행태다.


어떤 이들은 '별 것 아닌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차별 또한 가부장적이고 성차별적인 문화에 기반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쳐야 마땅하다. 게다가 '여자라고 별별 차별을 다 하더니 이제는 밥도 덜 주네'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일이 정말 사소한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든다.


주문할 때 미리 많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더 줘도 된다. 아니면 '양 많이', '양 보통을' 나눠서 500원 정도 차등을 주는 방법도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다. 꼭 성차별 하지 않아도 방법은 있다. 만약 성별에 따라 양이 달라지는 식당의 단골인 분이 계신다면, 꼭 한 번 사장님에게 '다른 방법'을 제안해봤으면 한다. 2018년에 '여자밥'을 따로 주는 게 웬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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