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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Jan 08. 2019

갈림길에 선 남자들, 이대로 도태되실 건가요?

누군가 나의 '젠더 감수성'을 지적할 때, 그때가 기회다

'빻았다'라는 속어가 있다. 원래는 사람의 외모를 비하하는 말로 쓰이다가, 메갈리아가 이 말을 사람의 언행이나 콘텐츠에 대해 평가하는 말로 바꿔 사용하며, 그 쓰임이 달라졌다. 성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유명인, 성적대상화가 들어간 예술작품 등에는 으레 '빻았다'는 평이 달렸다.


확실히 지난 몇년간 세상은 달라졌다. '빻았다'는 말의 변화는 이젠 외모가 아닌 '젠더 감수성'이 한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빻았다'는 말의 확산은 항상 여성을 '드세다', '싸보인다', '기 세다'라며 평가하기만 했던 남성들이, 이젠 반대로 자신이 '평가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여성들도 더 이상 '부당함'을 참고 있지만은 않았다. '미투'가 일어나고 <82년생 김지영>은 하나의 현상이 됐다. 성적대상화 콘텐츠는 인터넷 상에서 몰매를 맞았다. 아무리 백래시가 강하다고 하지만, 성폭력· 성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진전을 거듭했다. 남자들은 급격한 변화에 허둥지둥댔다. 눈치만 보고 있거나, 오히려 안티 페미니즘 세력에 가담하는 경우도 등장했다.


ⓒ오마이뉴스 이정민


반면 시대에 맞춰 여성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변화하는 남성들도 존재한다. 적어도 이들은 스스로를 '업데이트' 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돌 가수들의 성상품화 문제를 언급하며 "이런 시장에서 페미니즘을 운운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말했던 배우 겸 가수 김동완이 대표적인 경우다. 하지만 그는 불과 6년 전에는 자신의 블로그 '오레오 박스'에 아래와 같이 말한 적이 있다.


"3개월동안 하루도 안 빼놓고 눈사람마냥 패딩 껴입은 여자 스탭들과 진지한 여배우들 그리고 꼬마들만 봤는데... 그런데... 눈앞에 170짜리 여자들이 배꼽티를 입고 촐랑촐랑 춤을 추는데!! 어떻게 안 신나냐!?"


지금 나왔으면 꽤나 비판을 받았을 것 같은 글이다. 하지만 다행히 김동완은 2013년의 생각에서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이전부터 기부와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하던, 그는 현재의 페미니즘흐름에 발 맞추는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물론 혹자는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남성들의 과거 발언이나 행동을 문제삼으며, 진정성을 의심하거나 왜곡한다. 페미니즘 관련 영상을 만드는 데블스TV 크리에이터 김영빈에게도 유독 그런 비난이 잦다. "네 과거 발언을 봐라, 이중 잣대 아니냐"는 말들이 그를 향해 쏟아진다. 


그런데 김영빈은 스스로 "저도 여성혐오했다"고 밝힌다.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지금은 과거를 성찰하고, 인권을 고민하고 혐오없는 유머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평등을 지지하고 공감한다면 이전과 달라진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그때와 지금의 언행이 비슷하다면, 그게 더 큰 문제다.

반면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세월호 희생자를 화자로 등장시킨 소설 <언더 더 씨> 논란은 어떤 남성들은 분명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호밀밭 출판사


"내 젖가슴처럼 단단하고 탱탱한 과육에 앞니를 박아 넣으면 입속으로 흘러들던 새큼하고 달콤한 즙액". 희생자인 화자가 자두를 연상하는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표현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했지만, 희생자를 표현한다기엔 굉장히 성적인 표현들의 나열이다. 


작가는 화자가 살았을 때는 '생기 넘치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생기를 상징하는 것이 '(단단하고 탱탱한)가슴'이다. 지극히 남성중심적인 시각이다. 심지어 서두부터 저런 문장이 나오면서 한 명의 인격체가 아닌, '젊은 여성의 몸'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한다는 인상마저 받게 된다.

물론 작가는 세월호 참사를 안타까워하고, 추도하는 의미로 이 소설을 썼을 것이다. 그 진심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그 이 주제의식을 표현하는 방식을 지금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은연중에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묘사하는 표현들, 정작 여성들이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남성중심적 여성 묘사'를 지금의 독자들은 거부하고자 한다. 


사실 저 표현보다 더 실망스러웠던 것은 작가와 출판사의 대응이었다. 여전히 과거의 문학세계에 도취되어 있거나 혹은 '나 정도면' 하고 안도하고 살았다면 저게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가 누군가 자신의 글을 보고 불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글에 대해 의심할 수 있는 성찰 능력이 있다면, "극렬 페미니스트 카페 회원들이 나를 개저씨로 만든다" 식으로 해명을 하면 안되지 않을까. '극렬 페미니즘'이 문제가 아니라, 남성 작가들이 몇십년 동안 여성을 제멋대로 대상화해서 글을 써온 것의 문제가 이제야 터져나오고 있을뿐이다.


출판사의 해명은 더 황당하다. 1차 해명문에서 "대중파시즘"의 우려가 있다는 것은 물론 "문해력의 차이에 따라 수용의 수준이 달라질 수는 있지만"이라는 부분은 시대착오적이다. 민감해진 독자의 감수성은 생각을 못하고, '네가 감히'라고 외치는 느낌이었다. 


작가와 출판사는 이렇듯 적절한 해명과 반성을 담은 내용을 올리고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 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모두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과거의 시선이나 기준에 따라서 살아가면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 나를 지적했을 때, 그때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업데이트남'이 되느냐, '도태남'이 되느냐를 가른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배우 김윤석은 한 영화 행사에서 이벤트 공약으로 "여배우들의 무릎을 덮은 담요를 내려주겠다"는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 하지만 이후 몇 번에 걸친 공개 사과, 페미니즘 책 인증 등으로 오히려 대중의 호감을 샀다.


팬들로부터 받은 페미니즘 책을 인증한 배우 김윤석


또 고인이 된 가수 종현은 "모든 예술가들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고 사랑받는 존재가 여성이다"라는 라디오 멘트가  '(여성혐오와 연결되는) 여성숭배'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언뜻 보면 부당할수도 있던 지적에, 종현은 직접 자신을 비판하는 트위터 유저와 대화를 나누며 '소통'으로 논란을 풀었다. 지금 생각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앞으로 수많은 남성들이 갈림길 위에 서게 될 것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서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쪽으로, 세상이 조금 더 진보하는데 힘을 보태는 쪽으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그 반대엔 두루마리 입고 갓 쓴 채로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던 '유림' 같은 이들이 있을테니까.


호주제 폐지 반대 투쟁에 나선 유림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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