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희망의 단서'는 있다
'여자들이 더 살기 좋다', '남자들이 더 차별받는다'라는 말은 남성들의 착시를 통해 확산된다. 심지어 오래된 '착시'로 인해 확증편향에 빠진 이들은 객관적인 성차별 통계조차 '거짓'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느끼기에는 남성으로서 사는 이득이 전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남성들이 페미니즘을 경멸하고 비난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지만, 최근의 20대~30대 중반 남성들이 주도하는 안티 페미니즘 정서는 보다 적극적인 경향을 띄고 있다. 남초 커뮤니티를 보건대 '페미니즘 비난'은 남성 주류문화의 일부가 되어버린듯 하다.
유독 젊은 남성들에게 착시가 잘 일어나는 원인은 복합적이다. '군대'라는 억압적,폭력적 환경에 끌려가는 상황, 취업을 준비하는 불안정한 위치, 강요된 남성성, 유례없는 페미니즘 열풍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세대로서의 반발 심리 등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안티 페미니즘'을 공정성 이슈로 환원시켜서 공론화할 수 있는 명분을 얻는다. 젊은 남성들은 '남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있는데, 페미니즘 흐름이 사회전반적인 '여성 우대' 경향을 증가시키며 공정성을 해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의 시선이 주로 어디에 머무는지 살펴보면, 왜 착시를 믿게 되는지 추측할 수 있다.
혹자는 남성들이 일자리가 없어서, 거시경제의 어려움 때문에 페미니즘을 적으로 돌렸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반만 맞는 이야기다. 남성들이 '보고 싶은것만 본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취업 문제에 있어서 주로 화두가 되는 것은 '공무원'쪽이다. 요즘 한국에서 '공무원'은 '좋은 일자리'의 상징이며, 많은 이들이 공무원 수험생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남성 공시생'이 파편화되지 않고 단일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젊은 남성' 집단이라는 측면도 한 몫 한다. 그런데 공무원 시험에서는 여성들의 합격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9급에서는 여성이 남성 합격률을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밖에서는 '여성혐오'니 '성차별'이니 하는데, 자신이 딛고 있는 곳은 너무나 평평해보이니, 아니 오히려 군대 등으로 손해를 보고 있는 것 같으니 반발이 생길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은 상대적으로 낮은 여경의 체력검정 기준을 물고 늘어지는 등 '틈'을 노린다. 심지어 체력검정은 국가가 정한 기준임에도, 이들은 '꿀을 빤다'며 여경 지원자들 등 여성들을 비하하기에 바쁘다. 당연히 문재인 정부의 '여경 채용비율 확대'에도 큰 불만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경이 2017년 1차 시험만해도 117대 1(남성 35.5:1)의 경쟁율을 보였다는 사실은 무시한다. 이전까지는 계속 경쟁률이 남성에 비해서 꾸준히 3배 가량 높았다. 2018년 3차시험에서 여경 채용비율을 25%까지 늘리면서 처음으로 경쟁률이 뒤집혔다.
게다가 여경 채용비율 확대는 문재인 정부만의 정책은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초 7.6%에서 2017년 초 10.6%까지 여경 비율이 확대됐고, 문재인 정부는 이를 15%까지 확산하겠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여경 채용 확대가 남자들의 파이를 줄이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4번의 시험이 있었는데, 여경 채용 인원이 늘었을 때, 남경 채용 역시 늘었다.
남성들은 '틈'만 노리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음모론까지 펼친다. 노무사 2차 시험에서 2016년에 비해 2017~2018 여성 합격률이 증가하자 '여성할당제'를 적용한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근거는 단 하나였다. 여성가족부 게시판에 고용노동부가 주관하는 '공인노무사자격심의위원회'에 대한 설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공무원을 제외한 '좋은 일자리'의 채용과정에서 여성들이 여전히 심각하게 차별받는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2016년 30대 공기업 신규채용에서 여성 합격자의 비율은 21.76%에 불과하다. 금융권을 비롯한 사기업,공기업의 극심한 채용성차별은 익히 잘 알려져있다. 언론사를 예로 들자면, 필기합격까지는 여성인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최종합격자 성비는 1:1이거나 심지어 남자가 훨씬 많은 경우가 상당하다.
이러니 최근 9급 공무원 채용에서 양성평등채용목표제에 의한 남성 수혜자가 여성 수혜자보다 더 많아졌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젊은 남성들이 일자리만큼이나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문화적인 측면에 있다. 이들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혐오적 발언과 행동이 '제재'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세대다.
그런데 많은 남성들은 여성혐오를 규탄하는 분위기에 대해 대표적으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나는 아니야" 혹은 "여자들의 남혐은 더하다"다. 그중 "나는 아니야"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이유는 김현동 바른미래당 청년 대변인이 한겨레에 기고한 <20대 청년의 분노는 철없는 질투가 아니다>라는 글의 한 부분에서 엿볼 수 있다.
"가령 성폭행 사건이 있다고 했을 때 이것은 남성 권력에 의해 발생한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이해되는 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개인주의화되어 있는 남성들에게는 어불성설에 가깝다. 20대 남성에게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는 내가 비난할 대상일 뿐, 책임과 잘못을 분담해야 할 동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에서, 20대 남성에게 지난 남성중심주의 사회의 책임을 분담하라는 요구는 불공정함 그 자체로 받아들여진다."
이 글을 보면 젊은 남성들은 '여성혐오 하지마세요'라는 요구를 두 가지 방식으로 반박한다. 하나는 '일반화하지 말라'이며 다른 하나는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책임은 윗 세대에게 있다'이다.
그런데 젊은 남성들이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에 대해 '비난'은 제대로 해왔을까? 페미니스트들이 요구하는 것은 별 게 아니다. 피해자에게 '꽃뱀' 운운하지 말고, '이차피해'를 입히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젊은 남성들이 인터넷상으로 피해자를 '꽃뱀'으로 몰아가고 '무고죄' 운운한 적이 많지 않은가. 또한 물리적인 폭력이 없더라도, 디지털 성폭력 영상 시청, 단톡방 성희롱 등도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성폭력 문화의 일부분이다. 성폭력과 여성혐오를 만드는 구조에서 20대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남성중심주의 사회의 책임을 분담? 그저 여성을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하면 될 일인데, 무엇이 불공정한가.
또한 남성들은 메갈리아 이후에 상대적으로 사회의 젠더 감수성이 올라가면서, 남성들이 함부로 말을 못하게 되고 오히려 여성들이 '남혐 발언'을 한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자신이 여자 선배나 상사로부터 들은 성희롱성 발언, 여성들의 남자 외모나 몸매 평가등을 이야기하며 '역차별 사회'라고 말한다.
당연히 여성이 남성을 성희롱하거나 외모평가 하는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빈도와 강도에 있어서 여성들의 경험은 차원을 달리한다. 여성들은 성장과정에서부터 성희롱과 외모 평가에 노출되어왔다. 그것은 어떤 집단에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겪을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었으므로, 여성들은 예전엔 남성들처럼 '불쾌하다'고 말할 생각도 못했다. 심지어 외모는 공적 영역에서의 평가기준이 되기도 했으니까. 남성이면 성희롱이나 외모 평가를 참고 넘어가라는 게 아니라, 여성은 그런 상황에 더욱 자주 노출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정치적올바름'이 중시되는 분위기에서 "비웃어도 '안전한' 남성이 주로 비하적 농담 대상으로 등장하며, 20대 남성은 특권을 느끼지 못해 '농담의 불균형 상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한윤형)는 지적도 있다. 일리있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애초에 남성이 여성에 비해 약자거나, 특권을 누리지 못했다는 생각은 앞서말했듯 '착시'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그러므로 남성들의 이런 '억울한 심정'을 해결하는 방법은 '남성 우대'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성차별과 성폭력 구조, 그리고 이를 아우르는 페미니즘에 대해 더 많이 설명하고 설득해 페미니즘이 남성들에게 가닿게 하는 것이 맞는 해법이라 본다. 오히려 몇몇 정치인들처럼 20대 남성을 대변한답시고 페미니즘의 극단성과 일방적인 '남성들의 억울함'을 전달하는 것은, 20대 남성들을 계속 ‘억울충’에 머물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비록 남성 집단에서 안티 페미니즘이 과잉대표되고 있지만, 페미니즘 지지층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 남성도 상당수 존재한다. 얼마 전 발표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성평등 인식조사는 '20대 남성 열 명중 한 명이 페미니스트다'라는 식으로 주로 인용보도됐지만, 안의 내용을 보면 희망적인 부분도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20대 남성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에 대해 33.1% (7월 42.6%)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우리사회 여성혐오'에 대해 묻는 질문에 '심각하다'는 응답은 28.5%(7월 27.5%)를 차지했다.
'미투운동을 지지한다'는 43.6% (7월 56.5%), '안희정 1심판결 잘못했다'에는 44.6%가 동의했다. 7월과 11월의 차이가 꽤 나는데 여성들 역시 페미니즘 지지 비율이 이 기간에 상당히 떨어졌으므로, 남성들만의 문제는 아닌듯하다.
여성혐오와 사회적 성차별 등이 상당한 것에 공감하는 20대 남성이 대략 30%대다. 또 미투운동을 지지하며, (안희정 재판에 대한 의견을 고려하면) '동의없는 섹스는 성폭행'이라는 인식을 명확하게 갖고 있는 20대 남성이 45% 정도는 된다 (20대 여성은 69.8%). 분명 20대 남성의 주류적인 정서는 '안티 페미니즘'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결과를 보면 '남성집단 안의 샤이 페미니스트'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페미니즘=워마드로 치환되는 남성 집단이나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분명 '다른 의견'을 내놓기 어려웠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젠더갈등'을 줄이고, 페미니즘이 20대를 비롯한 젊은 남성들에게 닿기 위해서는 당연히 언론과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갈등을 불쏘시개로 이용하는 게 아니라, 갈등을 퇴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소하는 대책을 제시해야 될 집단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나서야 한다. 이들은 남성집단안에 균열을 내고, 적어도 '눈치'를 보게 만들 수 있다. 한편으로는 억울함에 대해 "나도 네 마음 알지만"이라고 말하면서 서서히 설득해나갈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물론 설득은 어렵고 종종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남성들은,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남성들을 비난하고 조롱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이제는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너는 그것도 모르냐"식의 선민의식으로는 주변을 변화시킬 수 없다. 같이 갈 수 있는 사람은, 맛집 데려가듯 끌고 가는 것이 남자들이 할 수 있는 페미니즘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인권을 지지하고 성차별과 성폭력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응답하지 못한 이들은 누구일까. 나는 이 남자들에게 희망을 건다. 어떻게든 그들과 같이 가고 싶다. 적어도 20대 남성의 40%~50%가 공개적으로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세상은 급격하게 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