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의 평등한 관계맺기가 가능한, 새로운 남성성이 필요하다
회사 근처 뷔페식 식당에 갔다. 젊은 여자 사장님이 유난히 친절했다. 처음 온 손님들에게 "추우시죠" 하면서 따뜻하게 맞이하고, 음식들에 대해서도 하나하나 소개했다. 밥 먹으면서도 '접객이 좋다'고 내심 생각했던 터였다.
그런데 나는 이날 '친절'의 무용함을 느끼기도 했다. 반찬을 리필하러 갔다가, 한 중년남자가 여자 사장님에게 하는 말을 듣고서다.
"주말에 낚시나 같이 갈까 허허허"
둘은 적어도 스무살 이상 차이가 나보였다. 말을 한 남자와 옆에 동료로 보이는 남자는 껄껄 웃었고, 그 옆에 사장님도 그저 웃어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말로만 듣던, 친절을 악용하는 '치근덕거림'에 기겁했다.
사실 여성들이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면 그것을 자신에 대한 호감이라고 단정하는 남성들이 꽤 있다. 많은 여성들이 그런 경험을 공유한다. 미소 좀 지었다고, 눈 마주치며 대화 좀 했다고 저 혼자 '썸'탄다고 생각하는 남성들 때문에 곤란했던 경험기가 온라인상에 수두룩하다.
트위터에서 화제가 된 사례를 하나 소개하겠다. 한 20대 여성이 회사 시설관리 담당 50대 남성이 사무실로 오면 친절하게 인사를 하거나 차를 타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우리 사이가 무르익은 듯하니 밖에서 데이트 해도 되지 않겠냐"는 문자가 왔고, 정체는 역시 그 남자 직원. 정중히 요청을 거절하니 심지어 나중에는 "꼬리쳤다"는 소문까지 퍼졌다고 한다.
남초 커뮤니티에 남자들이 직접 쓴 글들은 더 놀랍다. 활달한 회사 동료가 신체적 약점 등 사적인 정보를 언급하며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오는 것을 보고, '썸'으로 생각하고 결혼까지 생각하며 고민한 회사원. 빽다방 알바의 친절을 보고 "분명히 저한테 관심 있으니까 생글생글 웃으며 귀염 떠는거겠죠? 출장 기간동안 아침은 여기서 먹어야겠다"며 글을 올린 남자. 데이트 거절도 '친절'하게 하는 20살 알바에게 반해 "들이대도 괜찮냐고" 인터넷에 묻는 37살 만두집 아들 등등.
이런 사례들은 흔히 "'찌질남이 김칫국 마셨다"처럼 웃음거리로 소비되고 한다. 그러나 단순하게 조롱하고 넘어갈 사안은 아니다. 사실상 추행이라고 볼 수 있는 무례한 플러팅에 의한 불쾌감 등 여성이 입는 피해가 상당할뿐더러, 남성들이 여성을 보는 시각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자라오면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끊임없이 상정한다. 또래 여성들과 친구로서 잘 지내고 우정을 쌓기보다는, 누가누가 더 예쁘고 몸매가 좋다는 음담패설을 일삼기 일쑤였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단톡방 성희롱은 평등한 관계를 맺기보다는, 평가하고 대상화하는 게 더 익숙한 남성문화를 증명한다. 여성과 맺는 관계의 궁극을 '섹스'로 놓는 문화 안에서는 '성애' 이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당한다.
그래서 어떤 남성들은 성격에 따른 혹은 일로서 행해지는 친절과 웃음에 대해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다. 이성과 '성애'와 무관한 관계를 맺어본 적이 드물기 때문에, 나를 향한 이성의 긍정적인 행동에서는 일단 성적인 함의를 찾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심지어 처음 본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더군다나 여성의 행동을 오독한 뒤에 저지르는 일방적인 관심 표현과 연락도 사회적으로 지양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앞서 낚시나 하러 가자는 중년남성의 동료가 같이 웃는 꼴을 보라. 너무나 찌질하거나, 나이차가 날 때 비난할뿐, 단순히 연락하고 들이대는 것은 그 행태가 얼마나 무례하냐를 떠나서 '상남자'로 칭송받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가 남성들의 '자기객관화'를 막는 가장 큰 방해요소다.
자기객관화 안 된 남자들이 타인에게 약간의 불쾌감만 주면 차라리 다행이다. 이들은 온갖 곳에서 사고를 친다. 특히 직장은 그들의 '착각'이 최대치로 커질 수 있는 곳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친절하고 고분고분한 신입~저연차 여성 직원들을 보며 또다시 '착각'을 하고, 이후 개인만남을 요구하면서 괴롭힌다. 만약 거절한다면 "꼬리쳤다"는 꼬리표가 붙는 것은 물론이다.
여성학자 권수현은 인권위 2차 미투 토론회에서 '권력형 성폭력의 주요 이슈'가 중년 남성들의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사적만남 요구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 관련기사: "신입에게 만남 요구하는 40~50대 유부남들... '로맨스'로 생각")
"사회 초년생이 들어오면 로맨스 대상으로 언급이 되며, '아저씨 문화' 안에서 사적 만남이 부추겨진다. 고용이나 승진 등 인사에 관련해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분들이 이런 행동을 하면 여성들에게는 치명적인데, 본인들은 로맨스로 생각한다. 40~50대 유부남들의 사적 만남 요구가 신입사원들의 조직 부적응을 초래하는 핵심적인 요인"
카페 알바가 귀엽게 웃었다며 "호감 있는 것 맞지?"라며 글을 올리는 남자와, 부하직원에게 "네가 꼬리쳤잖아"라면서 만나달라는 남자. 두 남자의 거리는 멀어보이지만, 사실 그들의 공유하는 정서는 동일하다. '여성은 일단 성적인 관계를 맺어야 하는 대상이다'라는 것.
'주류 남성성'이 변하지 않으면 이 문제는 해결이 요원하다. 가부장제 사회는 지금껏 자기중심적이고 여성들과 온전하게 관계 맺을 줄 모르는 남자들을 길러왔다. 그래도 괜찮다고 믿었다. 하지만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그런 남성들로 인해 여성들이 얼마나 불쾌했는지, 고통받았는지 낱낱이 밝혀졌다. 그러면 남성들은 행복했냐고? 아니, 그렇게 자란 남성들도 불행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여성들과의 소통에 끊임없이 실패만 하다가 끝내 외로워지는 삶이 괜찮을 리 없다.
페미니즘은 분명 여성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한 이론이자 운동이다. 그러나 동시에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비뚤어진 남성성을 바로잡기 위한 방법론이 될 수도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공감할 수 있는 남성들을 만들어가며, 기존의 남성성을 해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들을 '착각의 늪'에서 구해내고, 여성과 동등하게 관계를 맺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은 남성에게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