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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Mar 25. 2019

친구를 '몸평'하는 비열한 남자들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평가하는 일, 그들에겐 '사회생활'의 일부였다

중3때였나, 안양역 근처에서 모인 친구들이 길 가던 여성들을 점수매기기 시작했다. '쟤는 A, 얘는 C' 그런 말을 내뱉으며 아마 "저 여자 죽인다" 같은 말들도 누군가 했던 것 같다. 설마 나도 말을 보탰을까? 잘 기억나진 않는다.


요즘들어 그때 그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아주 어릴때부터 또래 남성집단이 여성을 어떻게 대상화하고 평가했는지 보여주는 장면 같아서다. 여성을 오로지 '성애'의 대상으로 삼고, 그 '성애'를 공공화함으로써  남성들간의 유대감을 다지는 행태는 한국 남성들의 주류문화다. 이런 문화는 나이가 적든 많든, 돈과 권력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전면적으로 퍼져있다. 여전히 남성들은 여성을 동등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문화를 가지지 못했고, 그것이 정준영 불법촬영과 서울교대 집단 성희롱 사건으로 증명되고 있다.


서울교대에 붙은 대자보 ⓒ 트위터 펌


'단톡방 성희롱 고발'에 대해서 "사생활 침해" "얼굴이나 몸매 평가는 솔직히 할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런 이들을 보면 "왜 여성들은 '단톡방 성희롱'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라고 되묻고 싶다.  남자 얼굴이나 몸매 평가? 여자들도 할 수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양상이 남성들과는 사뭇 다르다.


적어도 대학이나 회사 동기 십여명이 있는 방에서 그런 '평가'가 이뤄지진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불법촬영 영상이나 사진을 뿌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남성을 성적으로 평가하거나, 성애의 대상으로 언급하는 것은 여성들에게는 굉장히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행위에 가깝다. 공적으로는 사실상 금기시되어있기도 하다. 


반면 남성들에게는 자신의 성욕을 드러내고, 여성을 성적으로 평가하고, 성 경험을 자랑하는 것이 매우 '공적'인 일이다. 즉, 사회생활의 일부다. 군대에서 만난 남자들의 절반 정도는 원나잇이나 성매매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말했고,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도 별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고참이 말해달라는데, 안 해주면 이상한 사람이 되므로, 사실상 강요받기 일쑤였다. 단순히 "성관계를 했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온갖 성희롱적 언사가 양념처럼 들어갔다.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 명 한 명의 주체가 아닌, '성애화된 몸'으로서 공유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던 순간들이었다. 심지어 군대에 있을때 한 소대원은 자신이 성매매를 해서 성병에 걸렸다는 것을 말하고 다녔다. 그런 행동들이 가능했다는 것이 지금도 끔찍하게 느껴진다.


남성집단에서 여성이 오로지 '성적대상'으로서 공유되며, 남성 집단 유지의 '도구'로 쓰이는 구조는 공적으로 승인되며 재생산된다. 서울교대 사건을 보자. 성희롱 고발 대자보에 따르면 해마다 일부 남자 졸업생들과 대부분 남자  재학생들의 '남자 대면식' 행사를 열린다. 재학생들은 새내기 여학생들의 얼굴과 나이 등이 들어간 책자를 졸업생들에게 제출하기 위해 만든다고 한다. 그러면 졸업생들은 그걸 보고, 재학생들에게 신입생 '평가'를 스케치북에 쓰게 하고, 마음에 드는 여학생들의 이름을 말하게 했다고 한다. 


여성 학우를 동기나 후배가 아닌 마음껏 평가할 수 있는 '몸'으로 규정하는 것, 이것은 그들끼리 '남성'임을 승인하는 절차다.  앞으로 남성들이 우정을 쌓기 위해 무엇을 주제로 이야기할지는 너무나 자명해보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관행이 서울교대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많은 남성집단에서 공인된 '남성됨'의 조건은 주변 여성을 성애화하거나, 자신의 성적 행위에 대해 공유하는 것이다. 또 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이들이 남성주류 사회에서 '사회생활' 잘하는 남자로 인정받는다. 요즘 트위터나 여초카페에서 "남자들 사이에서 '의리있는 놈', '진국' 이런 말 듣는 사람들 걸러라, '노잼' 소리 듣는 사람을 만나라"는 말이 돈다고 한다. 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잘 알것 같다.


장자연 사건- 김학의 성접대(성폭력)- 정준영 불법촬영은 모두 여성을 단지 '성애화된 몸'으로 여기며 평가하고 공유하던 남성문화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런데 평범한 남성들은 괜찮은 걸까? 중고등학교와 대학 군대를 거쳐, 여성을 대상화·도구화하는 것을 '남성됨'으로 여겨오던 이들은, 함께 룸살롱에 가고 성매매를 한다. 서로의 '성행위'를 공유하며 '밀어주고 당겨주는' 끈끈한 관계가 되는 것이다. 기존의 남성문화를 무너트리지 않는 이상, 앞서 세 사건처럼 권력과 유착된 사실상의 '집단 성폭력'도 사라지지 않을 것은 자명하다.


ⓒ 오마이뉴스


그동안 남자들만 있는 모임 또는 단톡방에서 행해지는 말과 행동이 불편하다고 느꼈던 남자들부터 움직였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들은 집단에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지금껏 '여성혐오' 문화에 적당히 타협하거나 순응해왔을 것이다. 그런데 정준영 불법촬영 사건이  '반론'의 기반을 만들었다. 적어도 소극적이지만 한 마디, "요즘 그런말 하면 큰일 나요" 정도의 말은 지나가듯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그럼에도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고 소극적 저항의 방식이라도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룰이 바뀌고 있다. 단톡방 성희롱을 방조한다거나, 소위 ‘2차'에 함께하는 것, 그런 행위에도 강력한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남성들의 변화를 위해 미디어도 힘을 모았으면 한다. 이번에도 몇몇 언론은 피해자 신상을 특정하는 등 2차피해를 입히는 성폭력 보도를 반복했다. 다만 이전과 달라진 것은 주요 방송사나 언론등에서 '우리는 피해자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운동을 보도하며, 이를 주요 의제로 삼았다는 점이다.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다. 주류남성성에 저항하는 목소리들이 굉장히 커졌다. 언론이 이를 수면위로 올리는 것만으로, 기존의 '남성문화'에 균열을 내는데 일조할 수 있다. 친구와 동료마저도 '성적 대상'으로만 여기는 남성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구조가 보도를 통해 낱낱이 밝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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