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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May 03. 2019

'트와이스' 사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심리

여자 아이돌이 만만한가


'사나 일본 연호 사건'은 조약한 민족주의와 기묘한 소비자운동이 결합된 현상처럼 느껴진다. '어쨌든 심기를 거스르지 말라'는 정서가 핵심이다.


지금 사나를 공격하는 논리는 단 하나다. '한국에서 돈 벌어가면, 한국인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 그런데 그 '한국인의 심기'라는 게 무엇이냐면, 발렌타인데이 대신 안중근 사형선고일을 기억하자는 수준의 조약한 민족주의의 발현에 가깝다. 이처럼 '반일'이나 '독립운동'이 갖고 있는 도덕적 명분을 집단적 자의식을 채우기 위해 오용하는 현상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헤이세이 출생으로 헤이세이가 끝나는건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 헤이세이 수고했어.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작 위해 헤이세이 마지막날인 오늘을 깔끔한 하루로 만들자. 헤이세이 고마워"


AOA 지민은 한 프로그램에서 안중근을 못 알아봤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을 받고 사과해야 했다. 가수 티파니는 2016년 광복절 전날 도쿄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일장기 이모지'를 첨부하고, 다음날엔 욱일기가 들어간 '도쿄필터'를 넣고 가방 사진을 올렸다는(심지어 이건 바로 삭제했다) 이유로 출연하던 방송에서 하차해야했다. 지난 3.1절에는 한 여행유튜버가 3.1절 전날 일본여행 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무릎꿇고 사과한 일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이 당한 일이다.


젊은 여성 방송인이 가장 정당한 위치(민족의 이름 등)에서 가장 손쉬운 방법(댓글)으로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일상적으로 남성들보다는 훨씬 끊임없이 외모나 행동등에 대해 '평가' 받아야하는 위치에 있다. 또 남성 제작자나 관리자에 의해 커리어가 좌우되는 것이 언론등을 통해 노출된다. 이러한 상황들을 보고 겪은 대중(성별을 불문하고)은 여성 방송인들을 비교적 힘을 행사해볼만한 상대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일단 윽박을 지르고 있는 상황에서는 실제로 잘못이 있는지 없는지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 여성 가수들의 페미니스트 논란(?)때도 그랬다. '돈을 쓰는 '나' 혹은 '(너를 지금의 위치에 있게 한)우리'가 기분이 나빴으니 사과하라'는 것인데 무슨 수로 반박을 하나.


앞서 유튜버의 경우도 있듯, 앞으로 여자 아이돌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마녀사냥'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연호 사건'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 특히 나는 이러한 현상을 언론이 부추겼다고 보기 때문에 쉽게 해결될 것 같지가 않다. 일부 연예 매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티파니 논란 당시, MBN 앵커는 올림픽에서 한국선수가 일본선수에게 진 소식을 전하며 "축하합니다 티파니씨"라고 말한적도 있다. 사실상 '매장'시키라고 부추긴 셈이다.


이번 논란에서는 그나마 사나를 비난하는 칼럼식(?)기사가 많이 안 보였지만, 사나가 부주의했다는 의견을 마치 '유의미한 의견'처럼 전하는 기사는 매우 많았다. 주요 매체가 관점없이 쓰는 '여론 추수용 기사' 또한 사실상 대중이 함부로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참고가 된다.


이렇듯 '연호 사건'은 민족주의, 여성혐오, 인터넷 문화, 관점없이 '여론'이랍시고 받아쓰는 언론들 등 여러 문제가 결합되어서 나타난 문제인 것 같다. 뚜렷한 해결책도 없어서 더 황당하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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