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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Oct 22. 2019

그때 우리는 왜 설리의 편에 서지 못했나

'균열'을 내려는 그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못했다

- 설리씨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주일이 지났습니다. 부끄럽게도 페이스북에는 그가 떠난 당일에 짧은 추모글을 올렸지만, 브런치에까지 차마 옮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 이후엔 말을 아꼈습니다. 말을 더 보태는 게 미안했고, 그의 죽음을 다른 방식으로 재단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그럼에도 저는 제 자신에게, 또 여러분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기 이전에) '그때 우리가 왜 설리의 편에 서지 못했나'라고요. 특히 남성들은 '여성혐오적 시선'을 그대로 여성 연예인에게 투영해왔던 것에 대해서 되돌아보고,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떠나간 날에 쓴 글을 뒤늦게 여기 옮깁니다.


설리는 어느 누가 옆에 있어도 가장 큰 주목을 받는 '아이돌' 그 자체였다. 뛰어난 퍼포먼스 없이도 그는 빛이 났다. 하지만 그는 대중이 원하는 '아이돌' 이미지에 반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 곳곳에서 비난을 받았다. 2014년에는 3집 활동 중에 '악플과 루머'로 인해 활동을 중단할만큼 많이 지쳐있었고, 결국 2015년엔 f(x)를 탈퇴하고 연기자의 길을 걷기로 한다.


알다시피 이후 그는 인스타그램 게시물 하나하나가 화제가 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다들 비아냥대거나 훈수를 뒀다 . '미쳤다', '관종이다', '나중에 후회한다' 등등... 그래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산이 올리고 싶은 사진을 올렸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꾸준하게 '규정당하기'를 거부했고, '아이돌 출신 여성'에게 가해지는 남성중심적 시선에 대해 '무시' 해버렸다. 사회적 압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껴가고 균열을 내면서 그는 되물었다. "내가 왜 (문제야)?" 사실 그 말은 동시대의 젊은 여성들이 사회에 되묻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들이 그에 대해 환호하게 된 것은 단지 '특이한 행동'에 있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관습을 깨버리고, 누가 뭐라든 끝까지 그 관습을 따를 생각이 없어보이는 '일관성'에 있었다. 누가 뭐래도 그는 자신의 길을 계속 가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어떤 시선에도 포섭되지 않고 ‘제멋대로 하고 싶은 걸 하는 여자’는 그 자체로 얼마나 희귀하고 소중한 존재인가"(GQ 이예지 에디터)


많은 이들은 설리가 '논란'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작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그가 아니었다. 몇 년동안 설리 인스타그램을 염탐하다시피 하면서 계속 기사를 써대는 연예매체, 그리고 그 기사를 소비하며 꾸준하게  '만만한' 여자 연예인을 욕하는 사람들이 합심해 설리의 모든 것을 논란으로 만들었다. 남의 삶을 '논란거리'로 여기는 자들 앞에서 종종 설리는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래도 최근에는 잘 버티고 있다고 함부로 믿어왔던 터였다.


그가 왜 세상을 떠났는지 잘은 모른다. 다만 설리를 추모하는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 역시 그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지 않았음이 후회가 된다. 그는 존재 자체만으로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한국사회의 질서나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역할을 했다. 그것이 반가웠고 또 흥미로웠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나 또한 그의 행동이 내심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고,  '내가 아니더라도...'라고 여겼기에 분명하게 그의 편에 서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좀 비겁하게 느껴진다.


가면을 쓰고 사는것만으로도 이미 힘들텐데,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젊은 여성이 '주체'로 서는 것에 반감을 가지기까지 한다. 이런 상황을 버텨내는 여성 연예인들, 정말 괜찮은걸까? 현재의 질서에 서서히 균열을 내려는 여성들을 한번 환호해주는 수준에 그치진 않았는지, 그들의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과소평가하진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다만 오늘 밤은 그 물음이 참으로 무용하게 느껴진다. 그저 황망할 따름이다. 부디 그가 여기보다 좀 더 좋은 곳에서 행복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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