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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훈 Dec 31. 2019

전현무, 김구라 그리고 박나래

박나래, 'When they go low, we go high'

1. 지상파 3사의 '연예대상'이 끝났다. 몇 가지 사건이  있었다. 먼저 21일 KBS 연예대상에서 전현무씨가 유튜버 박막례씨에게 무례한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됐다. 


박막례씨는 '핫이슈 예능인상' 수상자로 문세윤씨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는 2분 30초가량 문세윤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상자를 발표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멘트도 거칠었지만 금세 적응한듯 했다. 그리고 수상자 명단이 있는 삼성의 폴더블 폰을 펴면서 특유의 애드립을 한다 "뭔 핸드폰이 남대문 열어지듯 열어져요 이렇게?"


그런데 분위기가 루즈해졌다고 느꼈을까? 혹은 시간이 없어서였을까? 박막례씨가 수상자를 말하기 직전 갑자기 화면 바깥에서 음성이 들렸다. 전현무씨였다. "거의 뭐 개인방송 하듯이 하시네요 지금 박막례 선생님이, 신선합니다. 예"

박막례 유튜브 캡처

끝이 아니었다. 박막례씨가 휴대폰에 적힌 글씨가 작아서 수상자 발표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전현무씨는 마치 타박하는 사람처럼 "선생님"이라고 외친다. 방송 사정이 어떻든 간에, 손님으로 초대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태도였다. 다음 날 그는 '실수했다'며 사과 전화를 했다고 알려졌지만, '또 그랬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과거에 서울가요대상 진행을 함께 보던 EXID 멤버 하니에게도 무례한 말을 던졌다. "오늘 외모가 굉장히 준수하다, '준수하니'로 부르겠다"고 하거나, 상을 받고 난 뒤에도 "누구 생각나는 사람 더 없냐"고 물으며 그가 JYJ 준수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놀림거리인양 말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막말'로 논란이 된 적이 더러 있었음에도 전현무씨는 올해도 KBS 연예대상, MBC 연예대상, SBS 가요대전의 사회를 봤다. 여성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이렇게 종횡무진 방송사를 누빈 적이 있던가?


2. 김구라씨는 '사이다' 발언으로 찬사를 받았다. 그는 SBS 연예대상에서 '연예대상 후보'로서의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에 "연예대상도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후보에 오른 것에 대해서 “방송사에서 구색 맞추려고 (후보에) 넣었다"며 "연예대상도 물갈이를 해야 한다. 돌려먹기식으로 상 받고 있다"고 소위 ‘작심 발언’도 한다. 여기까지는 나 역시 어느정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그 이후 발언은 준비 안 된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말한다는 느낌이 역력했다. 


"쓰잘데기 없는 사람들 빼고 정말 양강으로 백종원 유재석 동엽이 정도만 넣어주고, 셋 정도 해서 그렇게 가는게 긴장감이 있는거지. 뭐 나하고 서장훈이하고 왜 앉아있냐고. 종국이도 방송 20년 한 사람인데 너스레 떨고 앉았고. 쟤도 40대 중반이야.


(...) 대상 후보 8명 뽑아놓고 아무런 콘텐츠 없이 사람 개인기로 1시간 2시간 이런거 때우는거 더 이상 이런거 안 됩니다. 정확하게 해서 방송 3사 본부장 만나서 돌아가면서... 광고 때문에 이런거 제가 압니다. 이러지 마세요. 이제 바뀔때 됐습니다. 내가 이 얘기 하고 빠질게요. (진행자 김성주씨에게) 너도 원하잖아. 방송 3사 본부장 만나서 번갈아가면서 이렇게 해야합니다. 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많은 시청자분들이 오랜만에 김구라가 옳은 소리 한다고 그럴거예요."



말을 곱씹어보면 병풍으로 있는게 싫다는 건지, 아니면 시상식 관행 자체를 비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나는 '~이'로 자신보다 나이 어린 연예인들에게 존칭을 붙이지 않고, 진행자에게 반말을 하는 행태에서 놀랐다. 격식 없고 직설적이지만, 할 말은 한다는 느낌을 주는 화법은 여전히 인기가 좋다. 그러나 이런 화법이 특정한 캐릭터를 부여받은 '남성'에게만 허용된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호감을 느끼기 힘들어졌다. 내게 그들은 '무례할 수 있는 권력'을 누리는 자들로 느껴진다.


한 차례 발언을 마친 김구라씨는 김성주씨가 김병만씨가 시상식에 참석 안 했다는 진행 멘트를 하자, 갑자기 마이크를 빼앗아 발언한다.


"거봐요 병만이 안 왔잖아요. 병만이 작년에도 안왔어요. 일부러 스케쥴 잡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알았어요?"


이날 진행자였던 박나래씨가 끼어들어 "자 김구라씨 진정하시고요"라고 말했지만, 김구라씨가 "병만이 프로그램 하나밖에 안하는데"라면서 말을 이어가자  박나래씨는 “아휴"라고 한숨을 쉰다. 


그런데 이 한숨을 또 몇몇 누리꾼들이 '무례하다'고 비판한 모양이다. 연예 매체들이 이 상황을 '논란'이라고 적었고, 실제  '논란'이 만들어졌다, 심지어 디씨인사이드 ‘박나래 갤러리'에서는 "박나래의 한숨이 바뀌지 않는 현실(시상식 관행)'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며 제멋대로 두둔을 한다. 여성 예능인에 대한 대중의 평가 기준이 엄격함을 아는만큼 팬들도 무서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구라씨도 다음날 MBC 연예대상에서 "박나래 한숨은 예능적 리액션"이라고 말하며 박나래씨를 감쌌다. 


촌극이다. 진행자 마이크를 빼앗고, 반말하고, 출연자에 대한 존칭을 포기한 사람은 '사이다' 이야기를 듣고, 그저 한숨을 쉰 진행자가 '무례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에 사이다 발언을 한 게 박나래였고, 그 반대가 김구라였어도 이런 논란이 있었을까?


3. 김구라씨의 발언 이외에는 별다른 이야깃거리도 없었던 SBS 연예대상과는 달리 MBC 연예대상은 큰 화제가 됐다.


김숙씨는 25년만에(최초), 장도연씨는 13년 만에(최초), 안영미씨는 10년 만에 지상파 연예대상에서 수상했다. 송은이는 2년 연속 최우수상을 받았고, 12년차 예능인인 홍현희는 신인상을 수상했다. 다른 방송사에서는 볼 수 없던 여성 예능인의 대약진이었다. (노컷뉴스, <박나래·송은이·김숙·안영미·장도연·홍현희…2019 빛난 그들> 참고)


"내가 방송용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많이 위축되고 방송을 많이 두려워했다. 그런 내게 손 내밀어주고, 사람 만들어준 송은이, 김숙 선배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안영미의 눈물 소감, “다섯 계단 올라오는 데 13년이 걸렸다"는 장도연의 명언은 시상식의 가치를 한껏 높였다.


무엇보다 이영자씨로부터 상을 건네받고 울던, 아니 이전부터 펑펑 울고 있던 박나래씨의 수상은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2010년대의 그 어떤 방송국의 어떤 시상식도, 이렇게 보는 사람까지 눈물나게 하는 수상과 수상소감은 없었다. 



"제가 키가 148이거든요? 많이 작죠? 근데 여기 위에서 보니까 처음으로 사람 정수리를 봐요. 저는 한 번도 제가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도 안했고 누군가의 위에 있다고 생각 안했습니다. 제가 볼 수 있는 시선은 여러분의 턱 아니면 콧구멍이에요. 그래서 항상여러분의 바닥에서 위를 우러러보는게 너무 행복했습니다. (...) 여러분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분이 하늘이 됐기 때문에 저희가 거길 날 수 있는 비행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하면요. 저는 착한 사람도 아닙니다. 선한 사람도 아니고. 하지만 예능인 박나래는 TV에 나오면 저의 말 한마디에 행동 하나가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박나래는 나빠도 예능인 박나래는 선한 웃음줄 수 있게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저 진짜 열심히 할테니까. 그리고 항상 거만하지 않고 낮은 자세에서 있겠습니다. 어차피 작아서 높이 못 가요.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김구라의 냉소는  MBC 연예대상에서 바로 반박됐다. '돌려먹기' '구색맞추기'는 '남성 8명만 대상 후보에 오른'  SBS 연예대상에만 국한되는 말이었다. 진짜 '물갈이'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 한동안 블로그에 글 쓰는 일이 뜸했습니다. <친절하게 웃어주면 결혼까지 생각하는 남자들>을 낸 이후에 조금 바빠졌고, 가벼운 글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연말이 되니 기력이 빠진 탓도 있고요. 새해를 맞아선 슬슬 다시 글을 쓸 예정입니다. 올 한 해 제 블로그를 좋아해주시고, 댓글을 남겨주시고, 기꺼이 책도 구입해주신 분들에게 정말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감사함을 느낍니다. 2020년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은 하루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언제나 꾸준히 하고 있으니, 찾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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