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서류를 작성하며 1.
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이직이 아닌 '자진 퇴사'를 준비하며, 20년간 사회생활 마무리에 타당성을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라이프 사이클과 가정 지킴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선택이었지만. 마침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는 이나가키 에미코 작가의 '퇴사하겠습니다'라는 책을 마침 알게 되어, 무릎을 치며 읽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놀랄 만큼 똑같았습니다. 우선 다들 하는 말이 "아깝지 않아? "였습니다.
아까워?
대체, 뭐가?
대답은 가지각색이었지만 한마디로 그냥 회사에 남는 편이 '이득'이지 않겠냐는 말이었지요. 아닌 게 아니라, 내가 근무하던 아사히 신문사는 대기업입니다. 월급도 많고 인지도도 있고, 이른바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곳입니다. 게다가 당시 내가 담당하고 있던 칼럼이 고맙게도 독자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회사 내에서도 꽤 안락한 처지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혜택 받는 환경을 발로 차버리려는 건지, 아깝다. 뭐 그런 뜻이었겠지요.
럴수럴수 이럴 수가! 나도 내가 퇴직 예정이라고 하면, 10명 중 9명은 "아깝다!"라고 하는 반응을 보여, 내 눈빛이 흔들리고 만다. 이나가키 씨처럼, 우리 회사도 이른바 사회적 지위가 꽤나 높은 "대기업"이고, 내 업무 자체도 회사 내에서 꽤 안락한 처지였으므로, 그 혜택 받은 환경을 발로 차버리는 내가 아깝다는 의미인 것 같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이제 그 '이득'들로부터 도망쳐 나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득이 있다'는 것은 사실 무서운 겁니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 초밥이나 스테이크, 케이크 같은 걸 매일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건강을 해쳐 일찌감치 죽게 될 겁니다. 하지만 한번 이런 음식에 빠지면 웬만해선 헤어 나올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큰 행복은 자그마한 행복을 보이지 않게 하니까요. 자신도 모르는 새에 큰 행복이 아니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마니까요.
럴수럴수 이럴 수가! 이렇게 정리를 하면 되었던 것이구나. 나도 그랬었다. 남편과 나의 월급을 합치면 사실 세 식구 먹고 살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을 뿐 아니라, 저축해도 남는 돈이었다. 월별 카드갑은 매 월 앞자리가 변해, 곧 자릿수까지 바뀌겠구나.. 내 마음에 경고음 같은 것이 울리던 참이었다. 많이 씀에도 쓰면 쓸수록 허전함이 커져만 갔고, "버는 사람은 좀 써야 사회에 돈이 돌지!" 뭐 이런 식의 말을 호기롭게 해 가며(건방져라...) 소비지향적인 삶을 살았었다. 예전에는 돈의 많고 적음의 차이는 불편함과 덜 불편함의 차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편리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던 차였다.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높은 월급, 좋은 대우에 익숙해지면 거기서 벗어나는 게 점점 힘들어 집니다. "좀 더, 좀 더"라고 요구하게 되고 나아가 무섭게도 그 좋은 환경이 행여 나빠지지 않을까 하는 공포와 분노를 느끼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자유로운 정신은 점차 사라지고, 인생은 공포와 불안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나는 아직 이 정도까지는 가진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직급, 연봉이 올라가면 갈수록 이런 생각도 커져만 가겠지.
그리고 또 하나, 매번 반드시 되돌아오는 말이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뭐 할 건데?" 음.. 죄송합니다. 아무것도 안 할 거예요. 할 수만 있다면 정해진 직업 없이 살려고요.
아.. 이 질문마저 똑같다. "아깝다"라고 말하는 사람 중 대부분의 다음 질문이 "그럼 뭐 할 건데?"이다. "나 이제 좀 놀려고"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가 친구들이나 가족들 몇몇 빼고는 거의 없다는 게 답답한 노릇. 이나가키 씨와 차이가 있다면, 나는 다행히 한창 활발히 경제활동 중인 배우자가 있어, 경제적인 이유로 일을 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는 것. 만약 나 스스로를 부양해야 한다면, 회사 관둘 생각은 터무니없는 상상에 불과할 테니, 이나가키 씨의 배짱과 용기에 무한 박수와 응원이다.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돈에 인생을 지배당하는 것 아닌가요? 방금 전 "회사에서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라고 썼습니다. 이 말은 정말 진심입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분명, 사회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업주부나 일을 그만둔 고령자들, 사정이 있어서 일을 못하는 사람들, 아이들, 그들 모두가 이 사회를 지탱하고 있지 않나요?.. 꼭 돈이 매개가 되지 않더라도 서로 지탱해 줄 수만 있다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것들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매달 월급이 입금되는 데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덧, 저도 모르게, 일단 돈을 벌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믿어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월급을 많이 받는 사람이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버리게 됩니다.
아.. 이 부분은 따로 적어 붙어놔야겠다. 우리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도 수개월의 휴직기간 동안 모든 순간, 모든 장소에서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 역시 돈을 벌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지레 겁먹을 때도 있었단 걸 고백한다.
거기에 더해, 인생에서 다양한 일을 겪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다 보니, 그 영향 때문인지 어느덧 돈이 많이 않아도 인생에 만족할 수 있는 체질이 되어버렸습니다. '돈'보다는 '시간'과 '자유'를 더 원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은 반은 같고 반은 다르다. 돈이 부족하면 나는 인생에 만족할 것 같지는 않고 (물론 전보다 씀씀이를 줄이는 노력은 하고 있다.) 시간과 자유의 소중함을 엄청나게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일하기 싫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이란 자고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날마다 놀면서 지내다 보면, 틀림없이 인생은 무척 고독한 것이 되어버리겠지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인간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또 해보는 생각,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연대를 위해 일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왠지 꿈이 점점 부풀어가는 느낌입니다. 일한다는 건 무엇인가. 산다는 건 무엇인가. '회사'라는 강력한 자기장을 지닌 조직에서 떨어져 나와, 한 인간으로서 그런 거들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었습니다.
나랑 똑같은 생각 맞고요...**회사 ** 팀 ** 차장이라는 포장지에 싸여서 "진짜 나"를 잃어버리는 나에게, 너는 회사뿐 아니라 이 넓은 사회의 일원이라고,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아직 많은 기회와 배움이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다. 누구 엄마 누구 딸 누구 아내 어느 회사 소속이 아니라 인간 소담.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즐기고, 많은 것을 나누고, 가진 것을 베풀면서 살고 싶은 소담. 40여 년의 인생이 아직 미성숙하지만, 더욱더 무르익어 찬란히 빛나고 싶은 소담.
책의 본격적인 내용은 더 재밌다. 회사와 나의 관계, 일과 돈의 관계, 성공의 의미 등, 내가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던 내용들이 명쾌하게 풀린다. 미니멀 라이프, 절제하는 삶 등 당장 내가 추구하지 않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퇴직 후의 삶을 어렴풋이라도 생각 중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읽을만한 책. 번역책이 주는 한계도 분명히 있어, 원서로 읽으려면 일본어 공부를 다시 해 볼까? 생각해 보게 된 책.
책 내용 떠올리며 퇴직면담서를 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