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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담 Jan 26. 2024

여행의 이유

나는 왜 떠났더라.  

여행을 떠나다고 함은, 단순히 "놀러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상의 공간이 아닌 다른 장소를  보고, 모든 감각을 통해 그곳을 느끼는 것. 특별한 방법으로 선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내 기억 속 첫 여행은, 어릴 때 부모님과 갔던 해수욕장도 아니고, 청소년기 학교에서 단체로 떠난 경주 수학여행도 아닌, 혼자 떠난 호주 여러 도시들이다. 살던 나라와는 습  향기도 다른 그 넓은 을 홀로 종횡단하며, 무엇을  느꼈더라. 그곳에서의 여행은, 어학학원에 다니면서 휴일을 무료하지 않게 보내기 위한 목적이 컸으므로, "뭘 보러 갈까"보다 "어디서 묵어야 나" 혹은 "무엇을 먹어야 까"가  더 컸던, 살아남기 위한 여행이었다. 넘치던 시간과는 달리 가벼웠던 주머니 사정 탓에, 교통비와 숙박비는 최소화하고 시간에만 기대어 "밟아본 땅"의 범위를 갔었다.


그래서 호주 한복판의 THE ROCK을 보기 위해, 남쪽 도시 아델레이드에서 기차로 48시간을 쉬지 않고 이동했으며, 돌아올 때는 시드니까지  무려 "72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여정을 선택했다. 꼬박 5일 동안 낮과 밤의 변함을 기차 안에서 경험하고, 옆 좌석의 바뀌는 승객들을 구경하였으며, 얼마나 많은 음악을 들었던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시간마다 색이 바뀌던 신비로운 Ululru가 아닌, 허기를 달래던 싸구려 Fruits Bread의 달고 쌉싸름한 맛과, 묵었던 유스호스텔에서 제공되던 조식용 시리얼의 눅눅함이다.


추웠던 멜버른에서는 피터섬의 귀엽던 펭귄보다 홀로 어두운 영화관에서 먹은 갓 튀겨낸 KFC 감자튀김의 기억이 더 강하고, 시드니를 떠올리면 연말의 화려했던 불꽃놀이보다, 더웠던 12월  내 갈증을 달래주던 초콜릿 우유의 달콤함이 더 선명히 기억난다.


20대에 유럽이며 일본이며 여러 곳을 홀로 여행하였지만, 유명한 광경이나 명소는 이나 영화를 통해 보는 것이 더 선명했으며, 외로웠던 기분이 더 강하게 남아있다. 런던에서 어마어마한 살인 물가를 경험하고, 편의점에서 고심 끝에 집어든 샌드위치를 호텔방에서 베어 물때의 그 묘함이란. 한여름 도쿄 뒷골목에서 너무 덥고 배가 고파 어디든 들어가고 싶은데, 결국 혼자 들어가서 허기를 달랜 곳은 뻔하디 뻔한 체인 카페의 구석자리였던 것. 게다가 카페 옆이 주유소라 뷰조차 엉망이었지만, 마치 노르웨이 숲의 미도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

 



결혼하고 세 가족이 떠나게 된 곳들은 사뭇 달랐다. 이의 웃음과 울음, 남편의 기대감이 혼합되어 외로움은커녕 활기만이 넘치던 시간. 어디를 가던 가족에 대한 배려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한 휴식이 주를 이루었다. 드디어 성공한 동유럽 여행에서는 남편과 아이의 눈에 더 많이 담기를 바라던 곳들로 행선지를 정했고 온 가족을 만족시키기 위한 식사메뉴를 골랐다. 아이와 함께한 단둘만의 파리에서는 초등 3학년이 가장 좋아할 발랄한 곳엘 가장 편안학 숙박시설을 전제로 다녔다. 그렇게 외로웠던 호주 대륙도, 가족과 함께하니 제 색깔을 찾을 수 있었다. 이제는  이 세계 어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씩씩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섭식장애와 강박으로 여행이 아직은 두려운 사춘기 아이가, 2박 3일 여행을 시도해 보고 싶다고 무심히 말했다. 제주도는 여러 번 가봤으니, 일본이 첫 번째 시도가 되었으면 한다고. 초등학교 3학년까지 열손가락이 모자라게 다양한 나라를 다녀본 아이가 지난가을 싱가포르 여행을 통해 주저앉는가 싶었는데, 다시 용기를 내보겠다고 하니 더 이상 기쁠 수가 없다. 엄마가 학창 시절 1년 이상을 보냈던 일본이란 나라에, 우리 딸을 어떤 두려움도 없이 안전하게 데려가고 싶은 마음 한가득이다.


나에게 여행이 외로움과 즐거움, 두려움과 기대의 복합적 마음이라면, 너에게 여행은 오직 따스함 뿐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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