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십 수년 된 냉장고가 작동을 멈췄다. 더위를 잘 타지 않는 나조차 너무 더워서 찬물을 연신 벌컥거리던 삼복더위에, 냉장고마저 고장이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었다. 최대한 빨리 배달이 되는 모델을 찾느라, 성능이나 디자인은 뒷전으로 하고 부리나케 새것으로 교체했다.
몇 주 전에는 안방 티브이가 작별을 고했다. 신혼 때 거실 티브이로 산 P**V. 좀 더 큰집으로 이사한 후, 거실 티브이 자리를 더 큰 놈에게 내어주고 안방 벽에 옮겨져오랜 시간 내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었기에, 이번엔 고생했다 말하고 쿨하게 보내주었다.
오늘은 잘 되던 식기세척기에서 에러 메시지가 떴다. 퇴직 후 매일 두세 번씩 경쾌하게 돌아가던 녀석. 아직 채 3년이 되지 않았는데, 과부하가 걸렸구나. AS까지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가뿐히 고쳐서 다시 써줄게.
오래되었는데도 감사하게도 작동을 계속해주는 가전인 세탁기, 에어컨 등이 우리 집에서는 고장을 기다리고 있다. 세월과 함께 닳도록 사용되었으니, 때가 되면 당황하지 않고 다른 모델을 빨리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계도 이러할 진데, 사람도 어느 순간 지치지 않겠는가. 매일 쳇바퀴 돌듯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중간고사 앞두고 (공부는 썩 하진 않지만) 스트레스받으며 등교하는 딸의 무거운 가방을 보며, 당신들도 고장 나지 말고 오늘도 잘 버텨보자고 마음속으로 응원을 해본다. 사람은 고장 나도 고쳐 쓰면 되니, 힘겨운 신호가 보인다 싶으면 미리미리 의논해서 대비하자고도, 그 신호를 발견하기 위해 내가 좀 더 관찰을 해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해본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고장이 더 이상 두렵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