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나이 먹는 것이 좋았던 적이 있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탱탱했고, 팔팔했으며, 쌩쌩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이를 먹는 건 줄 알았다.
손톱을 뜯는 습관이 있었다. 분명 맛있어서 뜯은 건 아니었을 거고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텐데 그때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심취해서 뜯으며 나의 불안을 표출했었다. 미래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꿈에도 모르고… 얼마나 심했냐 하면 빨간약 바르고 당연히 다녀봤고, 중고등학교 때 복장 검사를 하면 선생님이 나는 손톱을 제발 길러서 검사받으라고 하셨을 정도였다. 그렇게 학창 시절에 손톱으로 배를 채우고 나는 지금 턱관절 치료를 받는다. 태생적으로 턱관절이 뾰족하기도 한 데다가 십여 년을 가열차게 손톱을 뜯어서 더 안 좋아진 케이스. (입을 벌릴 때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안 벌어지는 상황에 이르렀다. )
인스턴트 음식을 사랑했다. 요리를 잘하시는 어머니는 우리의 건강을 위해 햄, 치킨너겟 같은 가공육이나 냉동식품으로 요리를 해주신 적이 없어서 몰래 먹는 MSG의 짜릿함과 중독성 때문이었는지 그때는 그렇게 햄버거, 피자, 라면, 떡볶이 등등 길거리 음식들이 좋았다. (아직도 좋긴 하다.) 그래서 친구들과 번갈아 가며 급식비를 몰래 빼돌려서 그 돈으로 친구들과 그렇게 군것질 비행을 저지르고 다녔었다. (엄마 미안~) 맛있는 밥상을 차려 주시는 걸 낙으로 여기시는 어머니를 두고, 지금은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화려한 진수성찬을 두고 말이다. 그래도 남들 다 사춘기 여드름으로 고생할 때 나는 피부가 까만 편 (이건 태어날 때부터) 이긴 했지만 엄청 좋았다. 그래서 나는 평생 이렇게 흑옥으로 살 운명인 줄 알고 성인 되어서도 정신 못 차리고 밖에서 먹는 음식을 즐기다가 진피층, 표피층의 대 반란으로 성인 여드름이 있는 힘을 다해 폭발했고 엄청 고생하다 지금 나는 활짝 만개한 모공을 얻었다.
암기를 잘했었다. 책을 좋아하시던 어머니 옆에서 어깨너머로 보고 그 자리에서 시를 외우기도 했었다. 그래서 중학교 때까지는 벼락치기가 잘 먹혔었다. 그리고 그 습관이 들어서 스스로 공부해야 할 양이 많아지는 고등학교 때까지도 정신 못 차리고 여전히 벼락치기로 승부를 내려다 추락하는 성적에 날개 다는 법을 찾지 못하고 점점 공부에 흥미를 잃고 펜을 놓았다. 무려 십여 년이 지나 다시 펜을 잡았을 때는 나는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나에게 맞는 학습능력이 자리 잡혀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공부를 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그것도 영어로… (너무 스트레스받을 때는 영어로 쓰인 내 이름도 보기 싫었다. )
그리고 무엇보다 집중이 왜 이렇게 안 되는 거야… 학창 시절 시험공부하다 말고 방 청소하던 것은 귀여운 수준이고, 이제는 책을 펼침과 동시에 난데없는 다음 학기 등록금 걱정부터, 생활비, 영주권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다 왜 나는 남들 다 할 때 안 하고 이제 와서 대학생질 하고 있나… 까지 오면 이미 공부할 마음은 지구 밖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다.
아… 차라리 책을 씹어 먹어서 되는 거였으면 좋겠다. 예전 같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매번 책이나 노트북을 열고 30여 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어김없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나이를 먹는 것이 좀 싫어졌다. 나이 들어가는 것에 적응하고, 주연보다 조연에 익숙해져야 할 때라고도 하던데 나는 나이 먹고 이제야 겨우 대학교를 졸업해서 그런지 이제 시작인 것 같은데 내 몸은, 내 주변 상황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어렸을 때 나를 반짝이게 했던 나의 장점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내가 변치 않을 거라 굳게 믿었던 그 모습들은 더 이상 나를 설명할 수가 없다.
나는 누구일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얘기는 한국을 떠나 살고 있고, 공부를 마저 했고, 일을 하고, 그리고 내 얘기를 한다.
다시 만들어 가는 중이다. 다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 나이 마흔에는 좀 더 겸허하게 나를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