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 글은 읽지 마.
호주를 오기까지 고민이 참 많았지.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한국에서는 도저히 답을 찾지 못하고 뉴질랜드까지 갔다가 거기서 겨우 일자리를 잡고 스폰을 받고 일 하면서 좀 지내는가 싶더니 갑자기 또 호주래…
사실 뉴질랜드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았거든. 3년 동안 한 호텔에서 일을 하고 나니 호텔은 거의 내 집 같았고, 가족같이 챙겨주시는 성당 언니들도 만났으니까… 돈 벌고, 돈 모으고, 골프 치고, 스파 다니면서 그렇게 살면 좋지 않겠어?
근데 뭔가 발전하는 느낌이 없긴 했어. 뭐랄까… 그전엔 이도 저도 아닌 애 같았는데 뉴질랜드에서 지내면서 ‘이’ 나 ‘저’의 어디쯤에는 있는 느낌은 드는 정도였지. 잠시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었다고 할까?
잠시 숨을 고르고 나니 통장만이 아닌 본질적은 것들을 채워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지. 그래서 공부를 더 하고 영주권도 받을 겸 호주 행을 결심하게 된 거야. 사실 내심 이제 자리를 잡아간다고 안심하시는 가족들에게 ‘자다가 봉창’ 같은 소리가 될까 봐 염려되긴 했었는데 의외로 다들 너무 좋아하시는 거야. 아직 젊다고 해주시면서… 사실 그때부터 호주에서는 뭔가 다 잘 될 거 같았어.
그래서 학교 입학도 수월했고 고비는 있었지만 학교도 한 번에 다 졸업하고 학벌 세탁도 깨끗하게 하고 잘 지냈잖아. 뉴질랜드에서의 경력과 레퍼런스 덕분에 일자리도 '원샷 원킬'이었지 심지어 코로나 때, 일 못 구한 친구들이 자기네 나라에 다 돌아가게 될 때도 일하던 호텔이 격리 호텔로 선정되면서 2주만 딱 놀고 다시 일하게 되고 매니저가 처음부터 일해줘서 고맙다고 시간도 많이 주고 그랬다며.
그것뿐이 아니야. 착한 집주인 만나서 코로나 시작하고 3개월 동안은 렌트비도 반이나 깎아줬잖아. 다들 부러워했어. 다른 집주인들은 자기네 대출금 갚아야 한다고 거절도 많이 했고 해 줘도 기껏해야 50불 요렇게 깎아줬거든. 또 다른 학교들은 코로나 지원금 토끼 꼬리만큼 쥐어줄 때 우리 학교는 막 천불 씩 세 번 씩이나 주고 그랬잖아. (물론 자기 상황을 설명하는 란에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자기 PR을 적기도 했지…)
그리고 학교 졸업하고서 필요한 영어점수도 남들 비싼 돈 주고 여러 번 할 때 졸업생 할인받을 수 있을 때 한 번에 받고, 영주권 때문에 지역 이동해야 할 때에도 전에 일하던 호텔에서 오퍼 받아서 인터뷰 없이 바로 일 시작할 수 있었잖아. 이사하는 동네가 코로나 청정지역이라 요새 다들 그리로 이사 가는 통에 집 구하기도 힘든데 같이 일했던 동료가 때마침 집 짓고 위층 렌트 줘서 좀 비싸기는 해도 일단 몸 뉘울 곳 있었고.
영주권 때문에 경력 관련 서류 준비할 때도 호텔이 크고 이미 호텔 통해서 받은 사람들이 많아 따라 할 예시들도 많고 경력 쌓으면서 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거지 이제는…
호주에 와서 어긋나는 일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게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구먼.
행복하지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 왜 행복하지가 않다는 거야?
나는 모르지.. 아무도 그 마음을 모르겠지…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행복 그거 꼭 해야 해?
행복은 찰나라며… 그 찰나의 행복을 위해 나머지 시간을 견디는 거라며… 나머지 시간을 굳이 견디며 살아야 하냐고… 행복을 좇지 말고 그냥 살면 안 되나? 어차피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건 정해져 있잖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없어. 뭔가 하려고 하면 실망만 더 커질 수도 있어.
어차피 이제 가족들도 남들과 다른 모양새로 살아가는 애라는 거 받아들이셨잖아.
그냥 살아. 행복하지 마. 이왕 사는 거 행복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어차피 또 지나갈 거거든. 그 행복도… 이 영문 모를 답답함도…
그러니까 그냥 살자. 지금 가진 것에 집중하면서…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행복하지 않은 '나'에게…